<인터뷰>37만 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레포르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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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7만 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레포르마 사회부 기자
  • 임용위
  • 승인 2004.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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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부 이상의 한국 일간지를 이해 못하는 David

이광석 한인회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한인회를 찾은 레포르마(REFORMA)지 사회부 소속(더 정확히는 전국 국내 소식부) 기자 David Vicenteno를 따로 만나기 위해 두 시간을 한인회 사무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 회장과의 인터뷰는 한달 전부터 추진하고 있었던 레포르마 현지언론사의 사회부 관심사였고, 이에 대응하는 한인회 입장에서는 각별하고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David의 질문을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멕시코 현지 구독자들에게 알리는 멕시코 한인사회의 참모습이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이고도 우호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를 바랬던 천 회장의 뜻이 표출되는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다소 형식에 얽매여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은 이미 각본으로 짜여져 있었던 서식을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만 두 시간을 소비했다. 동포신문의 취재부 역시 질문에 따른 답변을 이미 서식화 된 서류로 받아놓은 상태에서, 통역을 맡았던 나준호 한인회 부회장의 유창한 스페니쉬를 발판으로 겨우 Davia과 독대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을 보도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Davld 기자는 한국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가 모르는 것은 한국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10년 베터랑의 유력 일간지 기자답지 않게 세계 언론의 흐름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상식이 얄팍했고 멕시코 언론이 나아가야 할 비젼 제시를 묻는 질문에도 답답하다는 느낌을 줄곧 받아야 했을 만큼 궁색한 답변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집요하게 David의 생각을 대화 테이블에서 표현 언어로 끄집어냈다. 한국인을 오도하고 왜곡화시켰던 레포르마지의 기획의도가 궁금했고 적어도 멕시코 언론의 중심선 상에 서있는 그에게 한국과 한국인이 어떤 모습으로 멕시코에 다가서고 있는지를 이해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그를 소개하는 것이 레포르마지를 함께 소개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서두를 레포르마지의 간략한 안내로 시작한다. 다양한 섹션을 무기로 멕시코 언론지를 대표하는 레포르마지는 창간호가 나온 지 꼭 10년이 되어간다.

10년 전 혁명기념일(11월 20)에 창간호를 발매한 레포르마지는 창간 날짜의 의미와 함께 신문 제명도 혁명(REFORMA)이라는 것이 의미가 깊다. 서른 네 살의 David이 레포르마에 입사한 시기도 그의 나이 스물 네 살의 대학을 갓 졸업한 10년 전이다.

당시 그는 신문사에 기자로 취직하려면 "신문사에서 받는 봉급의 수개월 치 월급을 미리 편집부 상관에게 상납해야만 입사가 가능했다."고 말하고 레포르마지가 "그러한 신문사들의 관행을 깨뜨리고 실력 위주의 기자를 채용했던 점이 지금까지 레포르마에 남아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멕시코 신문사 내부의 비리를 밝히는 결정적인 대목이기도 했다. 상관에게 상납한 뇌물을 본전이라도 되찾기 위해 얼마나 현직 기자들은 비리의 악순환을 거듭해야 했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혁명 자체의 신문 REFORMA

레포르마지의 창간은 멕시코 언론시장에 가히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음을 David 기자의 그 당시를 회상하는 말들에서 엿볼 수 있었다. 배달(가판 시장 포함) 노조가 장악하는 배포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나와 신문사 직영의 배달 체계를 이룬 점이 그랬고 공휴일 신문 발행의 시초도 레포르마지가 그 포문을 열었다.(이 부분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지만 생략한다.)


신문이 고정독자를 빠르게 확보하면서 지금의 독보적인 과업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David에게 하루 몇 백만 부가 발행되어 배포되느냐고 물었다. 몇 백만(cien millon) 부냐고 물었던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신문사 두 곳이 2백만 부 이상을 발행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던진 질문이었다.

너무도 뜻밖의 답변은 37만부의 발행부수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David의 당당한 태도였다. 필자는 370만 부를 잘 못 들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준호 부회장에게 재차 묻기를 거듭했다. 한국 신문의 발행부수를 설명하자 결코 믿으려 하지 않는 David에게 인터넷을 열람해서까지 확인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국토와 인구수에 비해 언론에 도통 관심이 없는 멕시코 국민들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뜻밖의 멕시코 신문 전반을 깨달은 필자는 평소 궁금했던 점들도 쉽게 풀리는 과정을 체험했다. '왜 우리는 너희 나라에 특파원을 파견하는데 너희 언론은 한국에 특파원을 보내지 않느냐?' 이 질문 하나로 멕시코 유력 일간지의 영향력 있는 기자의 위상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파원의 재외 파견 실태도 모르고 있는 기자에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다수 나라의 뉴스가 중국 신화사 통신의 연합뉴스를 인용하고 있다.'는 필자의 설명에 "Serio?"하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음을 시인한다.

"Serio?"라는 말을 얼마나 David의 입에서 수도 없이 들었는지를 먼저 밝혀둔다. 멕시코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으면 멕시코 현지 사이트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제작된 사이트에서 더 많은 관련정보를 얻는다는 필자의 말에도 역시 "Serio?"였다.

'수 백가지 사이트에 망라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한국의 각계 전문가들이 멕시코를 체험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멕시코를 그래서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멕시코와 친하게 교류를 갖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래서 진심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자 "빈약한 멕시코 전반의 정보에는 현직기자로서 자신도 불만이 많다."고 실토하는 David 기자였다.

뗄레비사가 다루는 내용을 마다할 수 없었다.

이쯤해서 필자가 해 둬야 할 말이 분명해졌다. 그 동안 한인들을 '마피아!'라고 지목하며 마치 불법을 상습적으로 자행하는 외국인으로 취급하며 지면을 장식했던 근거가 어디에 있었느냐를 추궁해서 물었다.

David은 곧 바로 반문했다. "한인들이 도마 위에 올라있었던 시기를 기억한다. 당시 멕시코 대형 방송인 TELEVISA에서 연일 한국인들의 취재 대상으로 보도하고 있었고 빅 뉴스로 내보내는 내용을 신문이 인용해서 보도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불만이었다면, 또 사실 보도가 아니었다면 당신들은 왜 신문사에 항의해서 바로잡는 일을 하지 않았느냐?" 사실확인을 토대로 한 공정한 보도를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 게 신문 기자의 사명이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칫 둘 사이에 감정의 불씨라도 생긴다면 손해볼 것은 객의 입장인 한국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레포르마를 3년 가까이 매일 구독해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말한다. 다양한 분야의 섹션신문으로서 볼거리 알거리를 충족시켜주는 신문이 레포르마인 것만은 인정한다. 다만 신문이 할애하고자 하는 형평성에서는 많이 부족하다.

멕시코가 가지고 있는 다방면의 독창성을 신문이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 문화 예술, 교육 정보에서 너무 빈약하다. 사건 소식이 전 지면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고 상당수의 사건 기사가 흥미위주로 흐르고 있다. 뗄레비사에서 몰래카메라를 동원해 방송 보도국의 흥미본위대로 내용을 조작해나가는 것이나, 레포르마가 흥미위주의 사건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것이 뭐가 다르냐?"

그나마 David이 인간적인 견지에서 호감이 갔던 이유는 결코 명분 없이 주장을 꺾지 않는 보통의 멕시칸들과는 달리, 수긍하고 인정하고 반성하려고 하는 자세에서 진지해 보였기 때문이다.

멕시코 언론시장의 열악함과 견습체제나 교육 여건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점들을 설명하는 가운데 "10년 기자 경력 중에서 작년 처음 국제 언론 풍토를 파악하기 위해 유럽을 다녀왔던 것이 고작"이라고 말하며 국제부 기자 역시 같은 조건의 열악한 멕시코 언론계의 풍토를 시인하는 David이었다.

멕시코 언론환경의 열악함 인정

한국에 관한 많은 것을 물어오고, 멕시코에 대한 평소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답변해 주는 대화가 장시간 이어지면서 레포르마의 사회부 베터랑 기자와 친구사이로 발전해 가는 느낌을 가진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필자였다고 말해야 솔직한 표현이다.

멕시코에 어렵게 정착한 한인들이 현지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애쓰는 사례를, 한-멕 거리청소, 보리빵 운동, 찰꼬 수녀원 운영 등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동포들의 굳은 의지를 강조해서 설명했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몸소 체험하는 한인들이 뭔가를 바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원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근성의 소유자가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David이 "멕시코 한인들에게 어떤 내용의 보도를 해 주면 좋아할 것 같으냐?"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원한 대답은 못 주었지만 비로소 David이 모르고 지내왔던 정황을 인식하고 다가오고자 하는 자세로 변모했다는 게 그 날 그와 가진 대담의 수확이라면 수확일 수도 있었다.

서른 네 살 미혼의 David은 동거녀로 일본인 2세의 여성과 오랜 세월 교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동양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도 그녀를 통해 들은 게 전부라는 David에게, 비록 한인사회를 왜곡 보도해서 불이익을 당해왔던 경험을 극히 일부의 언론종사자에게 항변하는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를 통해 한인사회가 바른 시각으로 재조명되는 기회가 작으나마 이루어졌으면 하는 점에서 보람이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담 정리 임용위 취재부장.
통역 나준호 한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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