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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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
  • 서정필 기자
  • 승인 2019.01.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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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유엔인권위서 피해사실 최초 증언…이후 전 세계 돌며 성폭력 없는 세상 호소

▲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김복동 할머니가 1월 28일 밤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지난 2013년 7월 10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82차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김 할머니. (사진 정의기억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1월 28일 밤 10시 41분, 입원해 있던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이날 오전 역시 위안부 피해자로 한 많은 삶을 살아온 이 모 할머니가 세상과 이별한 데 이어 김복동 할머니도 생을 마감하면서 생존 일본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인물로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1992년 3월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며 이듬해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했다. 이어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행사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정의기억연대(대표 윤미향)에 따르면 1925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 중반인 1940년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피해를 당한 뒤 해방 이후 1947년에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으며 2012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각 지에서 해외캠페인을 진행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특히 김복동 할머니는 2015년 박근혜 정권 하의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합의로 인해 세워진 화해와 치유 재단의 해체를 외치며 수차례 거리에 섰으며 마침내 투병 중이던 지난해 11월 재단 해체가 결정되자 병상에서도 “늦었지만 정말 다행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김 할머니는 2017년 또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을 2017년에 제정하기도 했다. 김복동 평화상은 김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에 후원한 기금으로 만들어진 상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여성 인권 보장 운동에 활동한 단체·활동가에게 주는 상이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재일 조선인 학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실천했다. 2017년 재일 조선인 고등학생 2명에게 김복동 장학금을 전달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다시 5,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2일 공익사단법인 ‘정’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상금 500만원도 재일조선인학교를 위해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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