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위로가 필요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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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위로가 필요한 세상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9.01.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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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현대는 위로의 시대입니다. 지금이 예전보다 더 힘들거나 예전에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이제는 견디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슬픈 일이 훨씬 많았겠지만 그래도 잘 견뎌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괴롭고 외롭고 서러워합니다. 우울증(憂鬱症)이 늘어나고, 자살이 늘어납니다.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견디기 힘든 일들을 정녕 못 견뎌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농경사회에서는 주로 친지를 비롯해서 친구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한번 만나서 살게 되면 몇 십 년을 같이 하거나 평생을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서로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당연히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위로 받는 일이 익숙했을 겁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함께 울고 웃습니다. 위로는 다른 게 아니라 함께 울고 웃는 것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만큼 큰 위로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족은 늘 힘이 됩니다. 특히 부모님은 존재 자체로만도 위로가 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왠지 아무데도 기댈 것 없는 허전함이 생기죠. 나의 그 무엇도 믿어주고 응원하는 분이 없어졌으니 허전할 수밖에요. 하지만 부모님은 이 세상에 안 계셔도 안 계시는 건 아닙니다. 늘 우리를 지켜주기에 우리가 이만큼 덜 외롭게 살아가는 겁니다. 어쩌면 위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를 지켜주는 분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향하면서 외로움은 배(倍)가 되었습니다. 직장은 전쟁터가 되었고, 스트레스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고,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위로의 존재가 아니라 경쟁의 존재고 스트레스의 존재입니다. 사람이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직장의 상사가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아래 직원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직장에서 위로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웃도, 친구도, 친척도 위로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니 위로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슬픈 게 힘든 것은 외로워서입니다. 힘들 때 힘이 되어줄 사람이 없는 것만큼 서럽고 두려운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우리는 위로받을 일은 적어졌을지 모르나 나를 위로해 줄 사람 역시 적습니다. 요즘 우리는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요? 내가 힘들 때 누구에게 달려가 눈물을 쏟을 수 있을까요? 내 감정을 텅 비우며 서럽게 울 수 있나요? 눈물은 내 감정도 씻고, 상대의 감정도 따뜻하게 하는 명약입니다. 하지만 이제 눈물을 흘리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병은 있는데 약이 듣지가 않습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슬픔이 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편안함이나 기쁨은 고통과 슬픔이 있었기에 깨닫는 것이겠죠. 전헌 선생님은 인생의 선물은 포장 없이 숨겨진 보물찾기라 말씀하시면서 어려움만큼 값진 선물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포장 없는 선물>은 어떤 걸까요? 선물은 선물인데 포장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선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겠죠. 포장 없는 선물은 우리 주변 여기저기에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포장이 없기는 한데 숨겨진 보물입니다. 보물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위로는 고통과 슬픔을 견디게 하는 힘이고 따뜻한 어루만짐입니다. 위로는 어쩌면 말이 필요 없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말보다 눈물이 앞서고, 말보다 몸이 먼저 털썩 주저앉습니다. 맥이 풀려 버리기도 하죠. 말하기 전에 감정의 떨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위로는 그런 겁니다. 함께 느끼는 감정에서 위로가 힘을 발휘합니다. 물론 그래도 말은 위로에서 귀한 역할을 합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살아갈 힘을 줍니다. 나를 믿어주는 한 마디, 나보다 나를 더 귀하게 여기는 한 마디가 이 세상을 살고 싶게 만듭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넨 위로로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아집니다. 저는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덜 외로워졌으면 합니다. 힘을 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기쁜 일을 더 맞이하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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