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호주 변하지 않는 한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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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호주 변하지 않는 한인사회
  • 호주동아
  • 승인 200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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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한인사회 변해야 한다] (6) 외부인의 시각
변하지 않는 호주 변하지 않는 한인사회
2004/05/28


글 = 신영식 / 방송작가, (주)학원사 <<주부생활 designtimesp=3205>> 편집부 기자, KBS, MBC, SBS 및 케이블 방송국 방송구성작가, 프리랜서 자유기고가, 홍보영상 시나리오 작가,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

경제는 '안정' 문화는 '척박' 변화에는 '두려움'

"편가르기... 과거 재현... 이것이 호주시스템?"

주말 저녁 무렵,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거리엔 제법 가을의 정취가 그득합니다. 오랜 이민생활로 ‘5월의 가을’이 몸에 밴 분들도 많겠지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게 바로 거꾸로 가는 계절의 순환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바스라져가는 낙엽이 뒹구는 스트라스필드 광장 벤치는 오늘도 훌륭한 만남의 광장입니다. 대개는 대학로 어디쯤이거나, 강남역 사거리에서 만남직한 표정과 옷차림의 아이들이 주인이지만, 그곳에선 몸을 부딪치는 사람들이 거의 한국인입니다. 각자 목표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한번은 살던 둥지를 떠나 보따리를 싼 비슷한 경험의 운명공동체...

계절 탓인지 싸~한 바람 한줄기 가슴을 훑고 지나갑니다. 타국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

느슨한 사회서 홀로서기

저는 작년 1월 말, 아이의 개학일에 맞춰 보따리를 싼 속칭 기러기 엄마입니다. 물론 10여년 전엔 저도 잠시 호주이민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 호주 생활이 완전 초보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생활의 뿌리를 이곳에 내리겠다는 각오로 비행기를 탔던 그때와, 양다리를 걸친 지금과는 마음의 자세나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는게 사실입니다.

우스개일지 모르지만 유학생이나 기러기 엄마들이 가장 열심히 들여다보는게 미화 대비 호주화의 등락 지수라고 합니다. 그만큼 가져다 쓰는 돈의 가치가 중요한게지요. 하지만 여기서 경제활동을 하고 사는 교민들의 경우,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입니다.

수치가 여럿이지만 대략 호주에 유학 온 학생의 숫자는 7천명에서 1만여명 정도라고 합니다. 요즘 한국의 경제 사정이 바닥을 헤매고 호주화까지 초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그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씀씀이도 덩달아 축소되고 있는게 현실이라더군요. 똑같은 생활비를 써도 환율에 따라 매일 손해와 이익을 번갈아가며 경험하는 느낌을 아마 교민들은 모르실겁니다.

언젠가 미국과 영국, 호주생활을 골고루 경험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똑같은 이민생활이고, 기러기 엄마들 생활일텐데,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더라구요. 미국은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일한만큼 댓가가 확실한 편이랍니다. 구멍가게 도너츠 숍을 운영해서도 아이들 사립학교 보내는 부모가 많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집에서 노는(?) 전업주부가 드물다고 하더군요. 기러기 엄마들도 파트타임 잡을 뛰어 반찬 값 정도는 조달하는게 미국이라면, 영국은 귀족생활이랍니다. 살인적인 런던의 물가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주부들이 많지않고, 박물관 순례나 장미가꾸기 등의 우아한 문화생활에 열중하는 분위기랍니다. 그런데 호주는요?

그는 호주생활이 별로 경제적이지도 않고 문화적으로도 척박하며, 아주 느슨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일자리도 없으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라구요.

저는 이말에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이민이나 유학을 결심하는 이들은 대부분 호주의 청정한 자연환경과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안전한 사회분위기, 전인교육 시스템에 매료돼 이곳을 선택합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지요.

10년전과 같은 모습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진리가 적어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는느낌을 지울 순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거리에 빌딩이 얼마나 생겨나고 풍경이 바뀌었나의 기준은 아닙니다.

10년 전의 한인촌 캠시가 스트라스필드나 이스트우드로 옮겨간 것은 변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주인만 바뀌었을뿐 아직도 같은 거리에 고만고만한 동종의 업소가 어깨를 맞대고 있거나, 크게 업종의 변화를 보이지 못한채 옹색한 교민 주머니만 바라보고 있는 면에선 별반 달라진게 없는 셈이지요.

물론 교민 역사가 발전하면서 전문직이나 정계 진출도 많아졌고, 한인타운의 범주를 벗어나 시티 곳곳에 비즈니스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민이나 유학지를 호주로 선택한 것에 대해 100% 만족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바다 건너를 서성이는 ‘주변인’들이 우리 주변엔 참으로 많습니다.

"원해서 왔지만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더라..."의 절박함이겠지만, 그것을 건너뛰어 넘어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지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심정입니다.

아무리 호주 경기가 좋아도, 한국의 경제가 침체되면 호주 한인경기는 덩달아 바닥이라고들 합니다. 얼마 안되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간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착잡합니다.

아직도 이민와서 맨처음 만난 사람의 직업에 의해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며,영주권과 불자와 기러기와 주재원 등으로 분류되는 편가르기로 쉽게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없는 현실.

카페와 음식점, 미장원, PC방과 식품점들만 즐비한 한인타운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한쪽에서는 몰려다니며 골프만 쳐댄다고 비난하고, 한편에서는 아직도 계모임이냐고 삐죽댑니다. 옷차림만 봐도 교민인지, 외부인인지 금방 구별된다는 철저한 편가르기는 정말 한국인의 고질병인 듯 나아지는게 없습니다. 교민 잡지에 한인회며 각종 이익을 대변한다는 단체는 많아도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이민이나 유학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구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책자나 데이터를 구할 수가 없어 무엇이든 발품을 팔아야만 합니다. 제각각, 끼리끼리는 뭉쳐도 큰 테두리에서 감싸안고 아우르는 진정한 공동체는 아직도 먼 것만 같습니다.

처음 아이를 데리고 왔을때,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을 다잡는 한국에 비해 호주는 아주 편안할거란 환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웬걸,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주어진 프로젝트와 과제, 에세이 등을 기한에 맞춰 내기 위해 우리 모자는 정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고군분투했습니다. 물론 안내도 그만이었겠지만, 어렵게 선택한 유학인데 값어치는 해야겠지요.

그냥 밥만 해주는 기러기 엄마보다는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에 참여하는게 서로를 위해 나은 방법이라는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영어가 서툴러도 담임을 만나 상담했고, 한국식 모정으로 출발해 서서히 호주시스템에 적응해갔습니다. 밤을 세워 아이의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것은 호주부모들도 마찬가지였고,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상을 주는 것도 똑 같았습니다.

고인 물 되지 않기를

비유가 틀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민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영어가 서툴다고 한인 커뮤니티에만 안주하다가는 평생 제살 깎아먹기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조금 잘된다 싶은 아이템이라고 너도나도 간판달다 보면 결국 갈 길은 뻔하지 않을까요? 서로 뜯고 싸우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정치,교육제도에 신물을 내고 떠나온 사람들이 많을텐데,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과거의 재연이어서는 안되겠지요.

이젠 글로벌 시대도 옛말입니다. 호주에 산다고 한국말을 잊는 2세들도 없으며, 언제든지 호주와 한국을 드나들며 자신의 꿈과 정체성을 펼쳐나갈 존재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작은 웅덩이에 고인 물은 금방 썩기 마련입니다.

바람직한 한인 공동체란, 좀 더 크고 넓은 가슴으로 시야를 넓히고 삶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우리들을 따스하게 품어줄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힘들고 낯선 타국생활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시원하게 뚫린 10차선 도로처럼 모국어가 통하고,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마늘냄새 풍겨도 흠이 되지 않는 곳, 서로를 다독이며 활기에 넘치는 진정한 우리들의 둥지에서 새는 비상을 꿈 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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