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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 드라이브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dongponews@hanmail.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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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7  10: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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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신문 아랍어(현대 푸스하)와  대중 아랍어(암미야)는 다르다

아랍어는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의 언어이다. 아라비야 반도에는 여러 아랍어 방언들이 있었는데(사무드, 꾸라이쉬, 따이, 후다일, 사끼프 방언) 그 중에 무함마드가 속한 꾸라이쉬 방언이 ‘모호성이 없는 가장 명확한 언어’(푸스하)라고 했다. 의도한 말이 정확한 발음과 명백히 표현된 논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어가 모호성이 없는 가장 명확한 언어인가? 그렇지 않다. 무함마드가 속한 꾸라이쉬의 언어로 꾸란이 기록됐다고는 하나 그 말을 사용하는 원화자(native speaker)가 지금은 없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어느 나라에도 꾸란의 푸스하를 구사하는 원화자가 없다. 꾸란의 푸스하와 유사하지만 어휘, 문체 그리고 일부 문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현대 푸스하가 오늘날 아랍인들의 신문과 교과서 등에서 글로 사용된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아랍 국가에서 매일 사용하는 아랍인의 말은 푸스하가 아니고 암미야(대중아랍어)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치 이슬람의 악영향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가 ‘올바른 이슬람(쌀라흐 알이슬람)’을 대표하는가? 요르단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암자드 꾸르샤 이슬람학 교수는 “오늘날 무슬림들은 많은데 이슬람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아랍 무슬림들이 “오늘의 이슬람”을 정의하는 글(www.mawdoo3.com)을 보면 “오늘날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올바른 모습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이슬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 중에 무슬림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 중에는 무슬림이 잘못된 이슬람 개념을 그들의 생활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단적인 집단이 이슬람의 올바른 모습을 납치해 갔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무슬림 형제단”의 사상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육 제도에 오래 침투해 있었다고 CBS 뉴스에서 말했다.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무슬림 주하이만 알오타이비와 그의 추종세력들이 메카 대사원을 점거하고 “기다리는 알마흐디가 올 때(의 조건이)가 찼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주하이만은 살라피였다. 금년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살만 븐 압둘 아지즈는 8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순례에 참석한 각국 정상과 장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슬람에 대하여 달라진 생각을 하나로 모으자’(람무 알샤믈 알이슬라미)고 했다. 그 말은 오늘날 무슬림들이 서로 다른 이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타르에 살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 소속의 유수프 알까라다위는 이슬람 세계가 인정했던 이슬람 학자인데 그가 이슬람의 다섯 번째 기둥에 해당하는 메카 순례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파트와(법적 질문에 대한 법학자의 견해)를 발표했다가 모든 무슬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의 트위터에서 ‘메카 순례는 알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또 “무슬림은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환자에게 약을 주고 집이 없는 자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 메카 순례(핫즈)와 소순례(우므라)에서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알라께는 더 좋은 것이다”고 했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8월 23일자 2면 하단). 

무슬림에게 자살 허용한 '파트와' - 종교적 테러조직 발생

이집트인이었던 유수프 알까라다위는 카타르인으로 국적을 바꾼 정치적 이슬람 학자이다. 그런데 그가 이슬람 법을 전공하지 않은 아랍 무슬림들을 잘못된 길로 미혹하고 있다고 압둘라 알오타이비가 말한다. 유수프 알까라다위는 무슬림에게 자살을 허용하는 파트와를 발령했고, 그의 파트와로부터 종교적인 테러 조직이 시작되어 알카에다, 보코하람, IS조직이 생겨났다고 했고, 리비아의 무암마르 알까디피를 살해하라는 파트와를 발령했다고 한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8월 16일자 13면). 오늘날 이슬람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람이 무슬림이라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부 장관 압둘라띠프 아알 알쉐이크는 “유수프 알까라다위의 인생 역사를 보면 무슬림들 사이를 피트나(무슬림 간의 갈등과 싸움)를 일으키고, 무슬림들끼리 갈라놓는 일만 했다”고 평했다. 알까라다위가 정치적이고 정파적인 목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알 알쉐이크 장관은 알까라다위의 파트와 때문에 극단과 과격 집단이 생겨났다고 했고, 알까라다위가 말한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는 무함마드의 말과 유사하나 동일한 내용은 아니고 메카 순례를 삼가라는 특정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파트와라고 일축했다. 금년에 카타르가 자국민의 메카 순례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세자의 경제, 사회, 종교의 개혁이 성공할까?

무함마드 븐 살만은 2016년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사우디의 석유가스회사인 아람코의 주식 매각을 제안했으나 2018년 아람코의 주식 상장(이크티탑) 계획을 취소했다. 무함마드 븐 살만은 왕세자로 선임된 후에 몇 가지 개혁을 단행했는데 그 중에는 종교 경찰의 권한을 제한하고 여성 운전 금지를 철폐하고 여성 가수의 대중 공연을 허용하고 여성이 스포츠를 관람하도록 했다. 한 때 강한 목소리를 냈던 살라피가 왕세자의 개혁 드라이브에 침묵하고 있다.

왕가 밖에서 정치적 세력을 형성한 살라피 네트워크가 있는데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는 10만 명 또는 100만 명의 살라피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왕세자는 여성 인권 운동가를 구류하고 예멘에 군사 개입을 허락하고 외교적으로 카타르와 단교했다. 왕세자는“사우디 2030 비전”을 선언하여 경제 사회 종교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는 1979년 이후 이슬람을 대표한다는 극단주의 이슬람은 이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극단주의가 납치한 이슬람’을 지금 세계가 보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의 무프티는 사우디 왕국은 이슬람의 중도 노선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살만 왕세자의 현대화 계획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교과과정 개편에 참여했던 무슬림형제단의 악영향 차단은 가능할까

무함마드 븐 살만 왕세자는 무슬림 형제단의 사상이 사우디 왕국의 교육과정에 침투해 있었다고 말하고 사우디가 이런 사상에 속한 사람이나 동조하는 사람을 앞으로 근절하겠다고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이집트에서 도망 나온 무슬림형제단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육계와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무슬림 형제단의 사상이 퍼져갔다.

사우디 학생의 활동 지침과 교과과정 개편에 참여한 교육부 당국자, 장학사, 교사들이 무슬림 형제단의 교과과정을 따랐다. 이 시기에 무슬림 형제단과 수루리야와 그 밖의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집단들이 사우디 교육계에 관여하였다(알샤르끄 알아우시뜨, 4월 23일자 13면).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종교적인 박해로 사우디로 피했던 무슬림들이 사우디 교육계에서 일했고, 결국 오늘날까지 사우디 교육계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하거나 한국 국적을 가진 무슬림들 중에 이런 정치적 이슬람 사상을 갖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사우디아라비아는 2001년 와하비의 9.11 테러 이후 교과과정을 개편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에 가담한 사람은 소수의 개인이라고 치부하고 사회 전체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이것이 잘못된 진단이었다. “세계화 이전 단계”에 있었던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교과과정의 총체적인 개편과 사회적 개혁이 쉽지 않았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왈라와 바라’신조가 청소년들로 하여금 무슬림이 아닌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었다.“왈라와 바라”는 이슬람과 무슬림이 승리하고 비무슬림은 멸망하기를 바라는 무슬림의 신조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부 차관 타우피끄 알수다이리는 살라피는 사우디 건국과 같이 했고 사우디 종교기관과 울라마들과 가까운 운동(타이야르)이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적인 울라마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초기에는 살라피 사상과 함께 했으나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적인 울라마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살라피들의 여러 분파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싸흐와(정치적 이슬람) 운동이 끝났나?

수루리야는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시리아인 무함마드 수루르의 이름에서 따온 조직이다. 그가 시리아에서 박해를 피하여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당시 무슬림 형제단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러 지역에 지부(히자즈,동부 지역,리야드,주베일)를 두었고 유럽과 미국에도 국제적인 지부를 갖고 있어서, 수루리야는 1970년대 사우디에서 세력이 약했다. 점차 학생 회원을 모집하고 또 대학교까지 회원을 늘려서 1979년 메카 사건이 터진 때에는 사우디 사회에서 상당히 강력한 단체가 되었다.

그리고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학생들과 수루리야에 속한 학생들 간에 회원모집과 학생활동(연극, 방송)등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슬림 형제단에 속했던 사이드 꾸뜹의 동생인 무함마드 꾸뜹이 1970년대 말 사우디에 와서 무함마드 수루르를 도왔다. 수루리야의 교법사(이슬람으로 초대하고 가르치고 상담) 중에 아랍 세계에서 유명한 무슬림으로는 살만 알아우다, 아와드 알까르니, 사파르 알하왈리, 무함마드 알아리피 등이 있었다. 이들은 “살라피야 수루리야”라고 불리는데, 이 조직은 이븐 타미이야의 사상과 사이드 꾸뜹의 무슬림 형제단의 운동이 조합된 것이다.

사우디의 “싸흐와(사우디 정치 이슬람)”운동으로 알려진 일에 무함마드 수루르의 제자들이 대부분 참가하여 수루르 역시 싸흐와 설립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자 1991년 사우디를 떠나 쿠웨이트로 갔고, 결국 이런 운동에 참여한 대부분의 무슬림이 체포되었다. 현재 살라피야 수루리야는 아랍의 여러 나라에 퍼져서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쿠웨이트, 예멘, 수단, 알제리 등에 지부가 있고, 시리아에서는 밧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공격했다.

무슬림 형제단과 수루리야 혼합된  “싸흐와”의 30년 영향

무슬림형제단과 수루리야가 혼합된 “싸흐와” 운동은 지난 30년간 계속 사우디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우디의 전 내무장관 나이프 븐 압둘 아지즈가 무슬림형제단의 배신을 이야기하자 점차 공중파에서 그들이 사라져갔다. 싸흐와는 1990년초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2차 걸프전에서 사우디가 미군에 협력하지 말아야한다는 주장 때문에 사우디 정부와 충돌했다.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 30년간 사우디를 좌지우지했던 싸흐와 운동을 공박했다. 싸흐와로부터 사우디가 구조되는 것은 알라가 허용한 것을 싸흐와가 금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싸흐와에서 벗어나는 것이 “올바른 이슬람(이슬람 싸히흐)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리버럴한 이슬람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왕세자가 말한 2030 비전에는 관광과 레저가 포함되었고, 온건과 중도 이슬람을 강조하고,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여성 가수가 사우디 공영방송에 출연하고, 영화관과 오페라 극장 개관이 허용되었다. 사우디 교육부장관 아흐마드 븐 무함마드 알이싸는 교과과정을 개정하여 극단적인 사상을 몰아내고 교과서 개편을 통해 무슬림 형제단의 교과과정으로부터 학교가 벗어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2018년에 싸흐와를 발본색원하려고 할까? 싸흐와 역시 중도 온건이슬람을 지향하고 극단을 거부하며, 사우디 사회가 서구화되는 것을 막고 이슬람 교리를 지키자고 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테러단체인가?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단체로 분류했고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시리아도 테러단체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무슬림 형제단은 테러단체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랍 국가마다 다르다. 튀니지, 레바논, 쿠웨이트, 바레인, 요르단, 예멘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이 국회에 의석을 갖고 있다. 아랍혁명 이후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정치권의 리더가 되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때 이라크의 부통령은 무슬림형제단이었고, 모로코에서는 무슬림 형제단과 연루된 정당이 정부를 이끌었다. 그동안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해온 카타르와 터키를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처럼 우리도 테러 지원국가로 분류해야 하는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부 차관 타우피끄 알수다이리는 “싸흐와”에 대한 분석에서 많은 사상적 운동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는 무슬림 형제단과 수루리야, 주하이마니야(주하이만을 추종한 세력) 등이라고 했다. 싸흐와 이후에 등장한 살라피야 자미야는 에티오피아 출신 무함마드 아만 알자미의 이름을 따서 자미야라고 부르는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 미군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시킬지를 두고 이슬람학자들이 의견이 나뉘면서 압둘 아지즈 븐 바즈를 중심으로 하여 생긴 운동이다.

이들 집단이 걸프와 예멘 그리고 이집트, 요르단, 알제리에 퍼졌고 유럽에도 추종세력이 있다. 타우피끄 이슬람부 차관은 싸흐와에 대한 반동으로 자미야, 마드칼리야 등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 운동”이지 “조직”(탄짐)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수루리야, 자미야, 마드칼리야는 모두 살라피이다. 마드칼리야(분파나 종파로 나뉘는 것을 거부)의 영향을 받은 핫다디야는 이집트의 딴따에서 출생한 마흐무드 아흐마드 알핫다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타우피끄 이슬람부 차관은 대부분의 사우디 세대들은 학교나 모스크나 각종 종교 교육에서 수루리야, 자미야, 마드칼리야, 핫다디야 등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한마디로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살라피의 운동들(trends)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다만 무엇이 “올바른 살라피”냐가 관건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배격하는 정치적 살라피

타우피끄 이슬람부 차관은 1960년대 “살라피 단체”(자마아 살라피야)가 있었지만 1970년대 특히 1976-77년에 살라피 집단이 보여준 행색과 옷 입는 것 그리고 순나를 따르는 것과 극도의 문자적(하르피)인 면에서 다른 무슬림들과 구별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처음에 청년과 고등학생을 회원으로 모집했다. 그런데 1979년 라마단 달에 일어났던 주하이만의 메카 점거 사건은 살라피 집단이 주도했고, 이들은 메디나 모스크들에서도 그들의 주장을 격렬하게 외쳤다.

라마단 달이 지난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러 모스크에서는 ‘마흐디 문타다르’라는 말과 환상을 보았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사우디 기성 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했던 주하이만은 그의 친구 무함마드 알까흐따니가 “알마흐디 알문타다르(기다리는 마흐디)”라고 주장했고, 그가 아라비아 반도와 세계를 불의에서 구할 자라고 했다. 그런데 사우디 이슬람부 차관은 그의 이름이 무함마드 븐 압둘라 “알까흐따니”이고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아드나니”이므로 예언자의 자격 조건에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을 따르는 무슬림은 점차 사우디에서 사라져갔지만 아직도 전부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슬람부 차관은 이슬람의 “사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종교계, 교육계, 언론이 함께 노력해서 그들을 올바른 사상으로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50년간 사우디를 비롯한 모든 아랍 국가들이 이런 사상적 혼란을 겪어왔다. 여전히 무슬림 형제단이나 수루리야나 주하이마니야가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 예로 수루리야는 10년 단위로 전략을 바꾸어서 사우디에 잔존해왔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등장했다. 그는 이슬람 조직들이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하기 전에는 밖으로 모습을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살라피’이었다. 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왕세자가 극단적인 사상으로 분류한 “싸흐와”와 “무슬림형제단”이 사우디인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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