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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호머 헐버트 박사 서거 69주기 추모식김동진 기념사업회장 “우리가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할 때”
서정필 기자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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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0  16: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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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69주기 추모식이 8월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추모식 참석자들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69주기 추모식이 8월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노웅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마포갑),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관 차석대사, 임우철 애국지사(전 독립유공자협회장),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유동균 마포구청장, 김구환 광복회사무총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기념사업회 회원과 원근 각지에서 모인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 개회선언 ▲ 국민의례 ▲ 기도(원성웅 옥토교회 담임목사) ▲ 약력보고 ▲ 추모식사(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장) ▲ 추모사(문희상 국회의장,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박유철 광복회장) ▲ 영상시청 ▲ 인사말(노웅래 국회의원, 유동균 마포구청장) ▲ 헐버트 아리랑 합창(역사청소년합창단) ▲ 예사 ▲ 헌화 ▲ 폐회선언의 순서로 진행됐다. 

   
 ▲ 기념식사하는 김동진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은 기념식사에서 “우리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조선 땅을 밟아 63년을 한국의 교육과 문화발전, 그리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헐버트 박사 서거 69주기를 추모하고자 여기에 모였다”며 “오늘 우리는 외국인 독립운동가 36인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신했다. 그러나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이해가 아닌 정의감과 인간애의 발로로 한국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제라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한국을 위한 공헌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추모사를 대독하는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문희상 국회의장은 박수현 비서실장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는 23세 나이에 고종황제의 초청으로 왕립영어학교의 교사로 내한한 뒤 서거 직전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다. 사상 최초의 한글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했고, 최초로 한글 띄어쓰기를 제안해 한글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 이상설, 이위종 헤이그 특사3인과 함께 대한제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문 의장은 “헐버트 박사는 1909년 미국 포틀랜드 한 교회의 강연에서 ‘나는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한국인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1909년 뤼순 감옥에서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우리도 헐버트 박사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 추모사하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은 “헐버트 박사는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본격적으로 국권회복의 길을 걸으셨고, 고종황제에게 헤이그 특사 파견을 제안하며 특사 3인보다 먼저 네덜란드로 건너가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다”며  “하늘에 계신 헐버트 박사님의 안식과 명복을 빌며 추모식에 참석하는 모든 분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추모사를 대독하는 로버트 랩슨 차석대사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로버트 랩슨 차석대사가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유대관계를 기념하는데 있어서, 우정을 쌓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헐버트 박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아리랑 악보 채보나 한국어 교과서 집필 등 헐버트 박사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미국과 전 세계뿐 아니라 한국인 자신에게도 알렸다”고 강조했다.

   
▲ 추모 말씀하는 노웅래 국회의원

 노웅래 국회의원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박사를 추모하면서 새삼 나 자신의 한국 사랑을 되돌아본다. 김동진 회장이 제기한 36인의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깊이 논의하고 싶다. 그리고 헐버트 박사의 기념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 추모 말씀하는 유동균 마포구청장

헐버트 박사가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관할하고 있는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구청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10년 째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헐버트 박사의 말씀을 기억하며, 헐버트 박사 기념관이 세워지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헐버트 박사 추모 영상 상영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헐버트 박사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내한해 영어를 가르치는 한편, 외교 자문을 맡아 고종황제를 보좌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황제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해 을사늑약의 무효와 한국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고자 했다.

이듬해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을 폭로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1906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사건 이후 1907년 7월 일본 정부는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헐버트 박사를 강제 추방했다.

   
 ▲ 역사청소년합창단이 ‘헐버트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헐버트 박사는 1907년 미국 스프링필드로 돌아간 후 1945년까지 한국 독립을 위한 활동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40여년 만인 1949년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그 해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고자 7월 29일 그리운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미국 해군선박을 타고 긴 항해를 한 탓에 노령에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외국인 최초로  ‘사회장’으로 헐버트 박사의 장례를 모셨다. 생전에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던 그의 소망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으며, 한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5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호머 헐버트 박사가 잠들어있는 양화진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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