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재일동포] (上) 정체성의 위기
상태바
[기로에 선 재일동포] (上) 정체성의 위기
  • 부산일보
  • 승인 2004.09.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계 미국인,한국계 중국인은 너그럽게 봐주면서 왜 귀화한 한 국계 일본인에 대해선 마치 변절차 처럼 색안경을 쓰고 보는 거죠 ?' 일본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데 여러 제약이 많아 지난해 말 고심 끝에 일본으로 귀화한 박모(36·사업)씨.

앞으로 자손 대대로 일본 땅에서 살아갈건데 자식들에게까지 주류 사회에도 진입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머물게 할 수 없어 귀화를 결정했다는 그는 '하지만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만큼 국적은 바뀌 어도 한국계 일본인으로 당당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동포사회가 급속한 세대교체로 최근 민단(재일본 대한민국민 단)과 총련 가릴 것 없이 합해서 매년 1만명씩 일본으로 귀화하면 서 뿌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일본 법무성 출입국관리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 및 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는 모두 61만3천800명(총련 소속은 약 10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 91년 69만3천명에 비해 약 8만명이 감소했다.

동시에 이 기간 일본국적을 취득한 재일 동포는 91년 5천600명에 서 지난 한해 동안에는 역대 최다인 1만1천800명으로 폭증했다.

이처럼 최근 일본으로 귀화하는 재일동포가 급증하는 가장 큰 원 인은 무엇보다 일본에서 태어난 2~4세가 전체의 95%를 차지하면서 민족의식이 크게 약해지고 있기 때문.

여기다 지난해까지 근 10년동안 계속된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로 수적으로는 동포 경제계의 절반을,매출면에서는 80%를 차지하는 야키니쿠야(燒肉屋),파친코,건설업 등 3대 업종이 직접적인 타격 을 받으면서 도산업체가 늘어 재정난으로 동포사회의 구심력과 결 속력이 떨어진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민단의 경우,지난 2001년 동포 신용조합의 파산과 연이은 지도부의 파벌 대립과 내분으로 인한 동포 통합은행의 좌절 이후 구심력이 많이 떨어져 조직 이탈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 본인 납치사건을 전면 인정하고 사죄한 뒤 일본사회의 북한과 재 일조선인에 대한 적대감정이 높아지면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 디지 못한 총련 소속 일부 동포들의 북한 국적포기를 부채질 했다 .

따라서 3,4세 재일동포의 절반 가량이 한국말을 못하고,한국의 역 사 등 모국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같은 현상이 몇년 동안 지속될 경우,동포사회가 심각한 존폐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단 후쿠오카현 지방본부 최봉규 사무국장은 '재일동포사회의 민 족의식이 점차 희박해져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과는 역사적 반감과 사연이 있기 때문에 다른 해외동포들처럼 현지사회에 동화 되기가 쉽지 않으며,이들에게 현지화를 요구하는 자체도 무리다' 고 말했다.

그는 '간혹 이 곳에 온 한국 유학생들로부터 '민단 사람들은 대부 분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굳이 한국 국적을 유지할 필요가 있 나요'라는 말을 들을 땐 서글프진다'며 '1965년 한·일협정 체결 후 한국정부가 재일동포에 대해 취해온 사실상의 기민(棄民)정책 으로 인해 제대로 된 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민단 사가현 지방본부 박홍정 사무국장은 '동포들의 귀화 급증은 곧 정체성 상실을 뜻하며 이는 우리말과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 문'이라며 '3세 이하 세대가 우리말을 알고,민족의식을 갖고 일본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 갈 수 있도록 그동안 무관심했던 한국 정부 가 이제부터라도 나서서 이들을 위한 교육 지원책을 시급히 마련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후쿠오카=박찬주기자 chanp@busanilbo.com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