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명할 과거사 해외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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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명할 과거사 해외에도 있다.
  • 이은희
  • 승인 200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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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누군가가 K를 비방한 게 틀림없다." 카프카 소설 중 하나는 그렇게 시작했다. 누가 언제 그를 비방하였는지 K는 모른다. 세상에는 K처럼 산 사람, K처럼 사는 집단이 있는 것같다. 재독교포사회를 둘러볼 때, 국내에 알려진 조작사건과 연루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국내에 알려진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70년대에 이곳에서 영문 모르게 이웃으로부터 거리두기를 당하신 분들도 계신다.

국내에서 과거사 정리를 위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세월 국가기관의 잘못된 권력 행사가 빚은 일들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법은 지난 세월 국가기관의 잘못된 권력행사에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이 되겠다. 또 그 법이 영문 모르게 거리두기 당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될 만한 조항들이 있다면 그 법은 과거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지지만 미래를 위한 법이기도 하겠다.

괜스레 불안한 것은 이러한 법안에 재외동포사회의 과거 역사가 적절하게 고려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면 예의 피해 상황에 국내와는 다른 사회구조가 충분히 파악, 반영되어야 할 터인데, 또 그 피해 상황은 재외공관이 잘 알 터인데, 재외공관이 만약 가해자의 수뇌였다면, 이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 인정, 대우가 가능할까?

특히 재독교포사회는 '산업 역군'이라 불리는 광원 노동자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교포사회 1세대를 꾸몄기 때문에 다른 어느 동포사회보다 고향 나라에 대한 향수 혹은 충의가 강하다. 그래서 이 분들은 '화합'이란 말 아래 뭉치고자 했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이 국내상황에 대해 비판적일 때면 `분열`이라 했다. 당시 사정들을 듣노라면 '분열'이란 말이 뜨면 토론 그 자체가 거부되며, '친북'이란 단어가 뜨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거부되었다.

그러한 가상의 '화합'의 이데올로기는 재독교포사회의 문화적 힘도 박탈한 듯하다. 1958년 윤이상 선생은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백남준씨와 존 케이지와 나란히 섰다.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윤이상 선생의 빛남이 수십년 국내 사회에서나 교포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된 사실은 재독교포사 불행한 역사의 극적인 표본이다. 70년대 초, 아직 재독교포사회가 안정되지 않았을 때, 3년 계약 기간이 끝나고 귀국하여야 하는 광부들이 일부 체류연장을 고민할 때 나서서 일을 보아준 유학생이나 목사가 어느 날, 철저히 외면당하는 과정에는 '간첩'이나 '친북'이란 딱지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60년대 70년대 초반까지 곳곳에서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던 한인회는 재외공관과 긴밀한 관계에 들어섰다.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피해의 역사 이전에 ,K처럼 자신도 모르게 비방 당하고 유린당한 이들이 정작 초기 교포사회 형성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하는 역사 또한 참조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이 정치만 추구한 엘리트들이 아니라, 이웃이 어려울 때 도우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봉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재외공관의 역할에 대한 반성들이 두루 행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재외공관원이 동포사회 구성원의 사상이나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을 '소양교육'을 통해 금지해야 한다. 정부 포상 혹은 감사장 같은 것도 한인회 중심으로만 나눌 것이 아니라, 60년대 70년대의 봉사자들에게도 뒤늦게나마 전달하면 좋겠다.

지난 세월을 정리한다는 것은 퇴행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이들에게 무릎꿇고 용서 비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좋은 정기 나누고 살자는 마음의 지평이 넓어지고, 지난 세월 인정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받고 소외받은 이 모두에게 노년의 기쁨이 피어날 수 있으면 한다.

이은희 yi@ginfoc.d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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