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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치우천왕과 황제 헌원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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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6  10: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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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배달의나라 제14세 자오지환웅

신시에 개천한 배달의나라 역대 임금에 관해 기록한 ‘신시역대기’가 있다. 이 책에 자오지환웅은 제14세 환웅인데, 치우천왕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4세 앞서서 갈고환웅은 제10세 환웅인데, 중국 3황의 둘째인 염제신농과 같은 시대 인물이라고 했다.

원동중이 ‘삼성기전 하편’에 치우천왕에 관해 자세히 기록했다.
“뒤에 갈고환웅이 나셔서 염제신농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했다.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慈烏支)환웅이 나셨는데, 귀신같은 용맹이 뛰어났으니 동두철액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 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이라고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크게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최초로 금속제 무기를 사용한 치우천왕

치우천왕은 기원전 2,747년에 태어나 기원전 2,706년 42세에 환웅으로 즉위한 후, 기원전 2,598년까지 109년 간 재위하면서 모든 전쟁에서 불패의 신화를 갖고 있다. 여러 역사서가 공통적으로 치우천왕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동두철액(銅頭鐵額)’으로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말한다. 치우천왕의 철갑투구를 처음 보는 동시대인들의 놀라움이 드러난다.

치우천왕은 광석을 캐고, 대장간에서 철을 주조하여 각종 병기를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에 이미 청동기와 철제 무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다. ‘전쟁 불패의 신화’는 당시로서 가공할 비대칭 무기 체계를 보유하고 구사한 결과이고, 귀신같은 용맹과 우레와 안개를 부려서 산과 강을 바꾼다는 기록은 그의 지모와 전략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의 표현이다. 지금껏 동북아시아 최고의 군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만주에서 산동으로, 중원 남쪽 회대지역으로 강역 확대

삼성기전 상편에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다."고 기록했는데, 청구는 산동지역이다. 배달의 나라 신시는 만주지역인데, 강성한 치우천왕이 산동지역으로 강역을 넓힌 것이다.

삼성기전 하편에 치우천왕에 관한 기록이 계속된다.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산동성 임치현 남쪽)로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의 사이(강소성, 안휘성 지역)에 웅거했다. 황제헌원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고신을 쳐서 공을 세우게 했다.”

삼성기에 치우천왕에 관한 사마천의 기록을 소개했다.
“사마천이 ‘사기’에 말하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가 지극히 횡포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을 때 헌원이 섭정했다. 치우의 형제가 81인이 있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 도극, 태노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라고 했다.”

중국의 시조 황제헌원이 치우천왕을 이겼다고 기록하는 이유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한 염제, 황제, 치우에 관한 내용이다.
“황제헌원은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천자와 판천의 들판에서 교전하여 세 번 싸워서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치우가 천하를 어지럽혀 황제헌원의 명을 듣지 않으므로 황제는 군사와 제후를 징집해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잡아 죽였다. 이리하여 제후들이 모두 헌원씨를 높여서 천자로 삼았고 그를 신농씨의 자손에 대신토록 했다. 이 사람이 황제(黃帝)다.”

그러나 북애자의 ‘규원사화’를 보면 이 전쟁에서 ‘치우비’라는 부장 한 사람이 진중에서 죽었는데 이를 중국사서가 왜곡한 것이며 사실은 치우가 이겼다고 했다.

치우천왕은 당대 유일의 철제 무기 소유자요, 150세까지 재위하면서 동북지방과 중국을 호령한 전쟁 불패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러한 치우천왕에게 돌도끼, 돌화살을 가진 황제헌원이 어떻게 도전하며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는가? 치우천왕이 기원전 2,598년에 150세로 붕어하신 후, 황제는 19년을 더 살면서 중국을 다스렸다.

사마천은 마땅히 ‘치우천왕의 사후에 황제는 중국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함이 자연스럽다. 황제헌원은 기원전 2,689년에 태어나 2,679년 11세에 즉위하고, 100년을 재위하여 111세인 기원전 2,579년에 사망했다.

중국 황제의 부끄러운 기록은 감춰야 하는 사관들

그러나 중국 역사는 원래 황제를 자신들의 시조로 받들고 시작한다. 중국의 도통(道統)은 ‘황제-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맹자’로 이어진다. ‘치우천왕이 살아있는 날들에는 황제는 치우천왕에게 패배하고 굴복했노라’고 기록하면 황제헌원과 중국역사에 치욕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마천이 ‘중국의 시조’ 황제와 중국을 높이려니 ‘치우천왕이 황제헌원에게 패배하고 죽었다’고 ‘사기’에 왜곡 기록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특별한 첨언 하나, 중국정부는 1997년 하남성 탁록현에 중화삼조당을 건립하고, 배달겨레의 조상인 '치우천왕'을 염제, 황제와 더불어 중국 최고의 조상 세분으로 모셨다. 황제의 자손이라던 중국이 '염제, 황제의 자손'으로 바뀌더니, 이윽고 염제, 황제, 치우의 자손으로 변신했다. 배달의나라 14대 환웅이신 치우천왕이 뒤늦게 중국의 높은 조상이 된 근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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