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국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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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국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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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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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행사 22일 마쳐...한국영화의 다채로운 색깔 선보여
  노광우(nkw88) 기자   
▲ 목요일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기위해 극장앞에 늘어선 관객들 ⓒ2004 노광우
뉴욕한국영화제2004는 8월 22일(아래 현지시간) 미국 뉴욕 뱀 로즈 시네마에서 <와일드카드> 상영을 마지막으로 10일간의 행사를 마쳤다.

2001년부터 매년 8월 중순에 열리는 뉴욕한국영화제는 뉴욕 극장가가 비교적 한산해지는 시기에 개최해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어 뉴욕지역 예술극장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8월에 뉴욕지역에 다른 영화관련 큰 행사가 없고 할리우드 흥행작들이 5월에 개봉되어 여름 흥행의 말미에 접어든다는 점, 9월에 흥행작들이 줄어들고 좀더 다채로운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7월에 개관한 아시아 전용관 '이매진아시안 극장(The Imaginasian)'으로 영화제 장소를 옮기긴 했지만, 이전에 행사를 개최했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스나 쿼드시네마 같은 극장측은 영화제 개최에 대해 무척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예술상영관들은 각각 일정한 특성이 있어서 그 특성에 맞는 고정관객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극장에서 영화제를 개최할 경우 영화제의 고정관객과 극장의 고정관객층이 모두 영화제를 찾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영화제 관객이 극장의 특성을 파악하고 자기와 맞는 성격이면 다시 그 극장을 다시 찾게 되고, 반대로 극장 관객은 영화제에 와서 상영작을 본 후에 다른 한국영화를 찾게 될 수 있다. 그 극장이 복합상영관인 경우, 극장의 관객은 극장 내 다른 상영관 영화를 보러왔다가 영화제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제 주최측으로서는 '이매진아시안'로 장소를 옮기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이매진아시안은 7월에 개관했고 아직 홍보가 많이 되지 않은 상태라 극장 관객이 덜 형성되었다.

또한 이매진아시안은 300석 규모의 단관 상영관이라 복합상영관에서 영화제를 개최했을 경우에 생길 이점이 발생하지 않았다. 극장의 관객이 영화제를 발견한 경우라기보다는, 영화제 관객이 극장을 발견한 경우이다.

따라서 영화제 관객들은 예고편을 통해 이 극장에서 9월 3일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와 9월 중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2:이노센스>가 각각 개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극장 로비의 한쪽면을 상영작들의 포스터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2004 노광우
뉴욕한국영화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국영화를 선보이는 자리인 동시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영화를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올해의 경우 <살인의 추억>과 <바람난 가족>이 전자였면, <여섯개의 시선> <어린 신부> <클래식>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 <4인용 식탁> <원더풀 데이즈>가 후자이다.

<살인의 추억>이나 <바람난 가족>은 뉴욕 평단에서도 이미 알려진 영화였기 때문에 신문잡지에 영화제 기사가 나갈 때 자주 언급되기 마련이고 그만큼 관객의 주목을 받는다.

반면 후자는 미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영화제 직전에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경우도 있고, 영화제 중에 관객들이 직접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여섯개의 시선>은 영화제 직전에 평론가들이 발견한 경우고, <영매>와 <어린 신부>는 영화제에서 관객이 발견한 경우이다.

즉, 관객은 <살인의 추억>을 보러왔다가 프로그램북을 살펴본 다음에 흥미로운 다른 영화를 선택한 후에 그 영화를 보러 다시 극장을 찾는다. <영매> 상영시에는 장내의 백인 관객들도 진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영화가 마친 후에는 '환상적인 영화(Fantastic)'이라는 탄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 뉴욕한국영화제의 자원봉사자들과 관객들이 즉석에서 영화에 대해 토론한다. ⓒ2004 노광우
<여섯개의 시선>은 상영 후에 관객들의 열띤 토론을 자아냈는데, 장애인 삶의 불편함을 다룬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편은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고,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편은 영어 때문에 혀 절개 수술을 한다는 발상과 영화 속 모니터에 나오는 혀 절개수술 장면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손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한 네팔 노동자가 한국에서 겪은 일을 다룬 박찬욱 감독의 'N.E.P.A.L'편은 주간지 <타임아웃 뉴욕>의 평론에서 뉴욕한국영화제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뉴욕한국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2000명에서 3000명이다. 뉴욕한국영화제는 단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영화적으로는 뉴욕한국영화제를 통해 다채로운 영화가 뉴욕 평단과 예술영화, 외국영화를 찾는 이들의 지속적인 주목을 끌게 한다.

올해의 경우 <빌리지보이스> <타임아웃 뉴욕> <뉴욕 포스트>와 같은 주요 신문잡지와 <메트로> <브루클린 페이퍼> <차이나 익스프레스>와 같은 지역 신문에 리뷰가 실리고, '뉴욕1'과 'TKC' 같은 지역 케이블 방송에도 영화제 예고편을 내보내는 등 한국영화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한국 영화의 고정 팬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예술영화의 극장주들과 뉴욕 외화 배급업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문화적으로는 영화제를 통해 한국 영화를 접한 이들 중에는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주관하는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는 사람도 있고, 부산영화제에 가고 싶어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업을 하는 이들도 생기는 등, 영화 이외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2004 노광우
영화제를 찾는 이들 중 한 사람은 뉴욕 한국문화원에 등록해서 한국영화 DVD나 한국을 소개하는 영어책자를 빌려보는 이들이 생기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한국의 '스크린 쿼터'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뉴욕한국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뉴욕에 확보한 진지이다. 물론 행사를 치르다보면 자잘한 실수와 진행상 미숙한 점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지속적으로 한국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장은 마련된 셈이다. 무엇보다도 영화제 행사뿐만 아니라 영화제를 치르면서 뉴욕의 영화업계와 한국영화계를 연결해줄 수 있는 인재들이 형성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노광우 기자는 뉴욕대학 시네마 스터디스에서 영화사와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뉴욕한국영화제 일을 도왔습니다. 현재 미국 일리노이스주 카본데일의 서던 일리노이스 대학 매스커뮤니케이션 앤 미디어 아트 프로그램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2004/08/25 오전 1:03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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