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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노영진 월드옥타 뉴델리지회장2000년 세운 까마인디아, 인도 무역 컨설팅 부문 1위로 성장
서정필 기자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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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8  09: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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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한인무역협회 뉴델리지회장을 맡고 있는 까마인디아 노영진 대표 (사진 까마인디아)

‘까마인디아’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 권평오)가 추천하는 인도 진출 컨설팅 기업이다.

2000년 뉴델리에서 창업한 이래 지금까지 진행한 무역 컨설팅 건수만 4,500여 개에 달하며, 한국 기업이 인도에 투자, 합작사업을 하거나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 시장조사에서부터 각종 인허가 취득과 법률, 세무 관련 대행까지 거의 모든 과정의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까마인디아’ 노영진 대표를 옥타대회가 열린 제주도에서 만났다. 서른 고개를 넘어설 무렵 유학 차 밟은 인도 땅,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이역만리 땅에서 버티던 순간들, 까마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등 지난 20여 년 간의 인도 생활 이야기와 청년들의 인도 진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노영진 대표는 2000년 설립한 까마인디아를 인도 무역 컨설팅 부문 실적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윤두섭 월드옥타 방콕지회장과 함께  (사진 까마인디아)

Q.  만나뵙게 돼 반갑습니다. 우선 처음 인도를 찾게 된 이유부터 듣고 싶습니다.

노영진 대표(이하 노) : 원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인도를 찾았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였어요. 당시 서른셋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저를 참 한심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명색이 장남인데 장남 구실 제대로 못하고 한 번 가본 적이 없는 나라로 공부하러 간다고 하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장남의 역할을 망각하고 단순히 지적 호기심 때문에 인도어도 못하면서 무작정 인도 땅 찾은 건 참 무모하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 그 때 더 깊게 생각했으면 부모님 속 안 썩이고 마음 편하시게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한국에서 살았겠지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무모함과 이기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Q. 처음엔 어떤 공부를 하기 위해 가셨던 건가요?
노 : 원래 계획은 현지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부 전공 중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뒤에 지중해 연안 국가에 정착해서 산다는 계획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내용과 인도 학교 강의 커리큘럼이 맞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또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일단 인도어부터 배워야 뭐든 먹고 살겠다는 생각에 인도어부터 배웠고요. 그 다음에 바로 까마인디아를 설립했습니다.

인도어 배우고 회사 세울 때까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실 인도로 떠날 때 100만원 들고 갔거든요. 인도어가 나름 능숙해진 후에는 여행오신 분들 통역해 드리면서 가이드를 하게 돼 약간 사정이 나아졌는데, 그 전에는 그냥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못 돌아갈 것 같아요.
 
   
▲ 지난 4월 제주에서 열린 세계한인무역협회 제20차 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서 최용재 월드옥타 방콕지회 상임이사와 함께 (사진 까마인디아)

Q. 언뜻 들으면 그렇게 힘든데 왜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버티고 있었을까, 귀국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히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데요.
노 : 뭐라고 할까요. 인도 땅을 밟을 때부터 저는 고통을 즐기기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고통은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30이 넘은 나이에 전혀 연고가 없는 인도 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결심했던 겁니다.

Q. 까마인디아에 대한 대체적인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노 : 인도는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매년 7%에 달하는 고성장을 이어가며 많은 사업가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사업 환경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까마인디아는 이런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막고 인도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시장에 정착하고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컨설팅을 담당하는 업체입니다.

최근에는 인도를 넘어 까마코리아, 까마타일랜드를 세워 아시아 전역에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컨설팅 업체로 커 나가고 있습니다.
 
   
▲ 노영진 대표가 이끄는 까마인디아 사무공간  (사진 까마인디아)

Q. 인도에서 사업을 일구면서 어려운 점이나 특히 염두에 둬야 할 점들이 있는지요?
노 : 제가 인도에 온지 20년 남짓인데 인도에서는 연차 20년이면 인도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한인 30명 안에 듭니다. 무더운 날씨와 적응하지 결코 쉽지 않은 문화적 특성 때문에 인도는 한인들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지요.

그래서 유학생까지 다 합쳐야 인도 전역에 15,000명 정도 교민이 거주하고 있고, 뉴델리에 사는 한인들은 4,500명에서 5,000명 사이 될 겁니다.
 
   
▲ 노영진 대표가 이끄는 까마인디아 사무공간  (사진 까마인디아)

사업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으로는 어떤 일이든 처리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고, 여름에는 기온이 40도에서 50도 사이를 오르내리기에 무더운 날씨가 일의 능률를 상당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현지와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인도 문화 특성상 짧은 시간에 이익만 얻고 떠난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도 사회에 뿌리내린다는 생각으로 멀리 보고 사업에 임해야 합니다.

Q. 인도 진출을 꿈꾸는 본국 청년들에게 하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노 : ‘한 번 경험해 본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회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4~5년 전부터 까마인디아도 한국 청년들을 인턴으로 쓰고 있는데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펙 한 줄 더 쓸 목적으로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경험 하나 추가할 목적으로 인턴 생활에 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하러 온 건지 여행하러 온 건지 분간이 안 되는 경우도 많고요.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해외 취업을 준비한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턴이라고 보조 업무만 시키지 않습니다. 기획부터 실무, 사후 평가까지 모든 과정에 정직원처럼 임하게 합니다. 물론 힘들지요. 하지만 준비 과정이 철저하지 않으면 기후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제대로 역량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1년의 인턴 과정을 제대로 거치면 어디 가서라도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리 회사 인턴 과정은 쉽지가 않거든요. (웃음)

   
▲ 노영진 대표가 이끄는 까마인디아 사무공간  (사진 까마인디아)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노 : 기자님, 제가 가장 바라는 직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혹시 아시나요?

Q.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 어떤 직원인지요?
노 : 저에게 일을 지시하고 똑바로 했는지 확인하는 직원, 또 저랑 농담 따먹기 하는 직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지시할 필요가 없는 직원이지요. (전화기를 보여주며) 여기 메시지 보이시지요? 우리 회사 온지 1년 남짓 된 직원인데 자기 일 완벽하게 처리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잘 했는지 확인도 하고 잘 못했을 경우 지적도 합니다. (웃음)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고 끄덕끄덕하고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회사 일은 개개인이 전문성과 함께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능력과 때에 맞춰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한국 청년들의 글로벌 감각과 새로운 것을 빨리 습득하는 습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표한테도 자신 있게 그때 그때 필요한 일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요.

이러한 자세로 해외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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