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북정상회담과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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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북정상회담과 평양냉면
  • 이병우 코트라 전문위원/ 중국 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8.05.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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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스테이크, 온면, 우동 그리고 평양냉면

▲ 이병우 코트라 전문위원/ 중국 시장경제연구소장
몇 해 전 어느 여름날에 아들과 함께 송추의 평양냉면집을 찾은 적이 있다. 둘이서 물냉면 두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시켜 놓고 먹는데 처음 몇 젓갈을 먹던 아들이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했다. 이유인 즉, 냉면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평양냉면 특유의 메밀과 육수에서 나는 냄새가 그 애의 비위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꽤 오래전의 일이 생각났다. 잠시 알고 지내던 분이 의정부의 유명한 평양냉면집에서 밥을 먹자고 하여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비빔냉면을 시키고 동행한 두 분은 물냉면을 시켰다. 그러면서 한 분이 평안도 사투리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리 사장! 아직 냉면 맛을 모르는구만!” “냉면은 물냉면을 먹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라우!”

평안도가 고향인 그 분들은 정말로 냉면을 잘 드셨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와! 정말 맛있다!” 그 중의 한 분은 체면이고 뭐고 잊어버린 채 이런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냉면 사발을 들고 마셨다. 나도 냉면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얼마나 맛있으면 저렇게 표현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 냉면을 먹으러 갈 때면 그 분 생각이 난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냉면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듯하다.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냉면은 “렁미엔”이 되는데,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차가운(冷) 면(麵)”이 된다. 차가운 음식을 질색하는 중국인의 습성이기도 하다. 모든 음식이 일단은 끓는 기름통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음식 습관을 생각하면 나름 이해가 간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평양냉면집이 붐빈다는 소식이다. 그야말로 평양냉면이 정상회담 덕에 상종가를 기록하는 중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여름철이 되면 유명한 평양냉면집은 오후 2-3시조차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정상회담 전에도 사정이 이러했으니 지금은 오죽하랴! 20대 후반부터 가끔 찾았던 송추의 평양냉면집은 벌써 원 주인장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한 지가 꽤 되었을 것이다. 둘째 아들도 포천에서 분점을 하고 있다고 한다. 30년이 넘은 그 시절의 송추 평양냉면 집에는 이북 출신의 어르신들이 주로 단골이었다. 고향의 맛을 못 잊어 추억을 달랠 겸 오신 분들이었다. 이제 그 분들은 거의 대부분 돌아가시고 우리 세대들이 주 고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냉면을 사주신 분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6.25 전쟁 통에 남한으로 넘어와 갖은 고생을 하고 이제 좀 먹고 살만한 신세가 되니 나이가 70이 넘었다고 했다. 고향이 그립지만 통일은 요원하고, 그래서 그 허기진 그리움을 달래고 싶어서 냉면집을 찾는다고 했다. 이북의 고향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냉면이 꿈에서도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 또한 60에 접어들어 객지에 살다보니 그 분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경기도 북쪽(포천)이 고향인 나도 어머니가 즐겨 해 주셨던 김치만두가 생각이 나서 가끔은 고향에 사는 여동생에게 만두를 사서 보내라고 한다. 전주에는 설날에도 제사상에 만두를 놓지 않을 정도로 만두와는 별로 친하지가 않다. 예향이 넘쳐나는 전주이건만 내게는 이런 남모를 객고(客苦)가 있다.

동생이 보내 온 만두를 먹을 때면 나도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소리를 한다. 이 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많이 먹으면 속 쓰린 만두를 왜 저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이럴 때면 다시 ‘냉면을 먹으며 감탄을 연발했던’ 그 분들이 생각난다. 나도 이 정도인데 그 분들의 그리움은 어떠했을까? 그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신지는 모른다. 뵙지 못한 시간이 어언 십 수 년이 지났으니 살아 계시다는 보장이 없다. 이렇게 우리 앞에서 남과 북의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월남한 세대를 신세대가 이어 받은 지도 수 십 년의 시간이 갔다. 아들놈이 냉면 맛이 이상해서 먹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세대 간의 입맛도 차이가 난다. 우리가 느끼는 남북의 통일도 연령대별로 느낌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남북의 정상이 만났고, 북미정상회담이 곧 예정되어 있다. 들뜬 기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더운 날 마시는 평양냉면의 시원한 육수처럼 모든 일이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풀리면 좋으련만 우리에게는 아직 신중해야 하는 많은 요소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비록 냉면은 맛있게 먹더라도 우리 모두의 생각은 조금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냉면 대신 온면(溫麵)을 좋아하는 중국, 밥보다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미국, 그리고 잔치국수보다는 우동을 즐기는 일본이 모두 평양냉면에 박수를 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명민함이 필요하다. 부디 ‘평양냉면’이 끝까지 그 역할을 잘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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