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르바초프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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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르바초프와 김정은
  • 이신욱 교수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8.05.0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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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욱 교수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월 27일 판문점에서는 한반도의 운명을 정하는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세기의 만남으로 평가할만한 이번 만남은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대면한 것으로 제3차 북핵위기와 한반도의 운명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첫 번째 대화의 장이라 할만하다.

2016년부터 한국은 대내적으로 촛불혁명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과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제3차 북핵위기로 인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의 11차례의 미사일 도발과 제6차 핵실험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외신에서는 제2차 한국전쟁을 기정사실화했으며, 미국의 북폭은 시간만 남겨둔 사실로 인식하여 각종 위기설을 퍼트리는 상황이었고 실제로도 많은 국민들이 불안에 떤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대내외적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했고 2013년 제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16년 제4차와 제5차 그리고 2017년 9월 제6차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왔다. 집착에 가까운 김정은 위원장의 핵에 대한 신념은 미국과 세계에 반발을 가져왔고 UN제재로 인해 북한은 더욱더 고립무원으로 빠져들며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였다.

위기 끝에는 반전이 있고, 반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1987년 고르바초프의 미국 방문이 그렇다. 당시 미국과 서방의 시각에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은둔의 지도자, 빨갱이, 사악한 공산왕조의 차르로 보았고 제재를 통한 공산 독재를 끝내는 길만이 유일한 대소련 정책으로 보았다.

그러나 반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1987년 12월 9일 백악관에서는 미소정상회담이 열렸고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소련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상상 이상의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역대 서기장들과는 달리 자신의 아내 라이사 여사를 대동하였고, 백악관 방문에 앞서 거리에서 미국 국민들과 악수하며 미소친선을 외쳤으며, 미소 미사일군축협정에 서명하며 군축과 미소협력을 통한 세계평화를 주창하였다. 고르바초프의 매력외교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처음 접한 소련 서기장의 모습에 많은 서구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그의 모습을 의심했고, 또 다른 적화음모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을 살리고자 하는 고르바초프의 진정성은 세계를 바꾸고야 말았다. 바로 냉전종식으로 말이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마치 1987년 미국을 방문한 고르바초프와 같다고 할 만하다. 역대 북한 지도자들과는 달리 부인 리설주 여사를 대동하였고, 직접 판문점 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수뇌부들에게 평양냉면을 직접 대접하였고 두 정상의 직접 독대를 통해 진정성을 보이려 노력했으며 정상국가 간의 만찬에도 참여하는 등 파격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판문점 선언은 8천만 겨레가 바라는 비핵화를 명문화했고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함으로서 강한 개혁개방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진정성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과 김정은 두 지도자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냉전 체제를 바꾸고 세계평화 실현에 근접할 수 있다면, 한민족 부흥과 함께 선진통일 한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식 매력외교가 시작되고 있다.
그의 매력외교에는 고르바초프의 모습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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