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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덮어놓고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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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30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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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싸울 때 보면 덮어놓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화를 내는지 이유도 안 가르쳐주고 소리부터 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보통은 소리부터 질러댑니다. 싸울 때 소리를 지르는 것은 하수(下手)의 일입니다. 동물도 센 동물은 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저음(低音)은 센 동물의 특징이자 특권입니다. 덮어놓고 소리를 지르면 안 됩니다.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어서 <덮어놓고>라는 말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덮어놓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서 이 표현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덮어놓고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덮어놓고 대들기도 하고, 덮어놓고 울기부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덮어놓고 칭찬이나 사과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덮어놓다>는 ‘옳고 그름이나 형편 따위를 헤아리지 아니하다.’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덮어놓고>라는 말은 무언가를 덮어놓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가려놓았다는 의미죠. 그래서인지 <무조건>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덮어놓고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덮는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은 상대방의 사정은 듣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남의 사정을 덮어버리고 무조건 화를 내고 있는 것이죠. 모든 일에는 전후 사정이 있기 때문에 덮어놓으면 안 됩니다.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덮어놓고 울거나 덮어놓고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잘못은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은 이 자리를 모면하자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나는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가 될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착각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데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운다고 해서 진심은 아닙니다. 눈물은 생각보다 쉽게 흐르기도 합니다. 눈물은 미안해서 흘리기도 하지만 억울해서 흐르기도 합니다. 덮어놓고 우는 게 좋은 건 아닙니다. 덮어놓고 칭찬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를 칭찬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는 칭찬은 아부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칭찬은 관심에서 비롯됩니다.

덮어놓고 믿는 것은 위험합니다. 사람의 말을 잘 믿는 게 순수한 측면도 있지만 위험한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믿는 게 나쁜 건 아니지요. 사람 간의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덮어놓고’에 있습니다. 우리가 덮어놓고 있는 것은 무얼까요? 맹목적인 믿음은 자신을 가둡니다. 아무리 다른 세상이 있다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어쩌면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세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맹신을 키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종교나 덮어놓고 믿는 것은 위험합니다. 의심이 문제가 아니고, 덮어놓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말 <덮어놓고>는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무언지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뭘 덮어놓고 믿는 걸까요? 뭘 덮어놓고 있는 걸까요?

한편 덮어놓는 게 좋은 의미일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때 우리는 덮어놓고 행동을 해야 할까요?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도울 때는 덮어놓고 해야 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절차를 고려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급박한 상황이니까요?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습니다. 내게 닥칠 해로움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냥 뛰어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미담(美談)은 <덮어놓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일이 따지고서는 이타적이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계산한 후에 한 행동이라면 진정한 이타주의(利他主義)는 아니겠지요.

‘덮어놓고’라는 말을 쓸 때마다 내가 지금 덮어놓은 것이 무언지, 이렇게 덮어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동안 제가 덮어놓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수많은 허물도 생각이 나네요. 저에게 유리하게 덮어놓고 살아온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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