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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무대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고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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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무대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고현아
  •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 승인 2018.04.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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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가수에서 ‘노래하는 사람, 찬양하는 사람’으로 거듭났어요.”

▲ 소프라노 고현아
“아, 반가워요. 한국가세요?  우리 잠시 얘기 나눠요.”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해 온 소프라노 고현아는 4월 6일과 7일 양일간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오페라단 첫 정기공연 오페라 ‘아이다’에서 주인공 아이다 역을 맡아 열연했다.

비엔나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였던 그녀가 공연 준비를 위해 광주로 떠나던 2월 20일 비엔나 중앙역에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다.

“고현아가 오페라가수에서 ‘노래하는 사람, 찬양하는 사람’으로 거듭났어요.”
공연일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써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전해들은 이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사랑 받는 한 오페라 가수의 대변신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라노 고현아는 그동안 오페라가수로서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 음악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그녀는 독일 아이제나흐 주립극장 등에서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 파우스트의 마르궤리터, 박쉬의 로사린데 역을 맡았다.

이어 2013년에는 유럽 최고의 오페라 전당인 비엔나 국립오페라단에 입단해 아시아 출신 여성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전속 솔리스트로 발탁됐다. 2014년 3월엔 프란체스코 칠레아의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 쿠브뢰르’의 주역을 맡았던 세계적인 스타 소프라노 안겔라 교올규가 병으로 무대에 서지 못하자 고현아가 대타로 나서 주인공 아드리아나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일약 세계적인 디바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 오페라 ‘영리한 작은 암여우’에서 아버지 여우 역할을 맡아 열연하는 소프라노 고현아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계속해서 그녀는 이어서 풋치니의 마담 버터플라이의 나비부인, 야나첵의 오페라 ‘영리한 작은 암여우’의 아버지 여우, ‘예누파’의 이사롤카,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시팔’의 꽃녀, ‘발퀴레’의 오르틴데, 그리고 ‘발퀴레’ 콘서트에선 지그린데 역으로 레네 콜로와의 협연 등을 해냈다.

비엔나 폴크스오퍼의 오페라 ‘일 타발로’의 주인공 교르겟타,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의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 쿠브뢰르’의 주인공 아드리아나, 독일 슈베린 국립극장과 두이스부르크 메카토르할레에서의 오페라 ‘발퀴레’ 콘서트의 지그린데 출연 등, 빈 국립오페라단 밖의 공연도 진행했다. 2016년엔 빈 국립오페라단이 바리톤 마뉴엘 발저와 함께하는 듀오 콘서트를 열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뒤 오히려 정신적인 갈등과 방황이 찾아 왔다.

“빈 국립오페라단에서의 4년 생활은 최고의 오페라단의 비즈니스, 세계 오페라 스타들, 기라성 같은 지휘자, 연출가, 그 넷트 워크, 그 전체와 깊이를 알게 해 준 교육장이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오페라 스타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더욱이나 유색인종에게는 아직도 극복하기 어려운 많은 난관이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어요. 스타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다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여성가수의 황금기가 시작된다는 나이 40을 맞아 이제는 결심해야 하겠다고 각오했지요.”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소프라노 고현아는 비엔나 순복음교회의 아파트에 9개월 있으면서 거의 날마다 새벽기도에 나갔던 것이 찬양하는 가수로서 결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뜨거운 신앙경험을 했다고 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에서 대학에 다닐 때 여러 교회의 성가봉헌 독창자를 맡으며 자라난 신앙이 새벽기도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빈 국립오페라단에 보내져 최고의 훈련과 경험을 가지게 한 것은 나를 위한 더 높고 더 가치가 있는 큰 봉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2017년 9월 빈 국립오페라단에서 나와 자유함을 알렸어요. 프리랜서로 선언했지요. 자유스럽게 오페라, 가곡등을 노래하며, 하나님 찬양하는 찬양사역에 힘차게 참여하기로 했어요.”
 
▲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가 주최한 ‘신년음악회’에서 노래하는 소프라노 고현아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사실상 이 같은 결심의 단초는 2016년 11월 빈 국립오페라단에서 함께 일하던 바리톤 김정호가 뉴질랜드 오크랜드 한인회의 초청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조직할 때 함께 가서 공연하는 순간 찾아 온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세상 죄를 지고 인류를 구원하신 메시아 출현의 의미가 가슴을 쳤다. 노래로 찬양으로 메시아의 은혜에 봉사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찾아왔다고 했다.

2015년 한국 국립오페라단에서 올린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세니예’의 주역 맏달레나를 비롯 여러 차례 국내 공연출장도 한 소프라노 고현아는 사실상 빈 국립오페라단에서 카버역으로 많은 오페라를 익혔다. 마농 레스코의 마농, 토스카의 토스카, 서부기병대의 딸 미니, 예누파의 카롤카, 발퀴레의 지그린데, 마크로포우로스의 카파 카바노바. 하이든의 천지창조, 브람스의 ‘독일레퀴엠’을 비롯한 오라토리오 칸타타도 7개 곡이나 연습했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여성가수의 최고전성기는 40-50이라고 해요. 최고전성기 10년을 스타 대망보다는 하나님 찬양으로 돌렸어요. 큰 내기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기뻐하실 거예요. 불러 주세요. 하나님 찬양하는 곳으로... 물론 오페라를 통해서 제 스스로도 만들어 갈 것이에요.”

그녀가 기차를 타고 비엔나 국제공항으로 떠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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