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재한 조선족 집중조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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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재한 조선족 집중조명 (5)
  • 흑룡강신문
  • 승인 200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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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수교10주년 기념 특별기획

왜 우리가 《봉》이 되야 하나 (5)

기자 진종호

고국이라고 하지만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너무나 오래 동안 헤여졌던 한국이란 필경 생소한 환경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조선족들이 불법 체류자이고 한국의 법이나 경제거래 상식과 같은 것에 익숙치 못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았다. 전문 조선족들의 이 같은 약점을 리용하는 한국의 사기군들도 등장하여 한국인과 조선족들간의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원인 제공을 하는 우리에게도 문제점은 있지만 도와는 못줄망정 자기보다 약한 조선족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는 좀팽이들 때문에 고국이란 이미지도 흐려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다녀온 조선족들중 거의 반수이상이 돈을 벌어갈지는 몰라도 고국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동족이라고 조선족들에게 동정을 보내고 뜨거운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선뜻 그들의 호의를 받아 들일수 없는 재한 중국조선족들의 실상이 또 하나의 비극을 설명해 주고 있다.

흑룡강성 상지시의 박모녀인(51세)은 남편과 사별하고 1996년 자식들의 뒤바라지 때문에 한국으로 왔다. 서울시 강남구의 한 일식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박모(60세)라는 한국녀인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동성동본이여서 그들은 금방 친해질수 있었다. 박모라는 한국 녀인은 중국교포가 한국에 와서 얼마나 고생이 많은 가며 잘 보살펴주었다. 자기의 옷이나 화장품을 가져다 주고 63빌딩이나 남산 타워같은 곳도 데리고 가 시내구경도 시켜주었다. 그리고 자기이름으로 예금통장을 만들어 주어 중국으로 송금 할수 있게 해주었고 먼저 사채부터 갚으라고 자기 돈 100만원까지 빌려주기도 했다. 정말 친언니 같은 관심에 박모녀인은 감격했다. 하여 계돈 들면 돈을 빨리 불릴수 있다는 한국녀인의 말을 믿고 자신의 봉급을 꼬박꼬박 계돈으로 부어넣었다. 처음 몇 달은 리자라고 은행 리자보다 배로 많은 돈을 가져다 주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돈이 긴장하여 먼저 돌려썼다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어느날 자취를 감추었다. 핸드폰을 해봐도 이미 취소해버렸고 살던 집도 이사하여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으며 주민등록증도 가짜였다. 피땀으로 번돈 1500만원을 눈을 펀히 뜨고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안 박모녀인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료녕성 봉성시의 김모씨(47세)는 지난해 4월 한국으로 와 경기도 포천군의 한 개인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일이였는데 일이 힘들고 봉급도 적었지만 불법체류신분이라 안전하다고 생각되여서 눌러앉았다. 사장이라는 자는 원래 고지식하고 착한 그의 성품을 리용하여 하루에 열몇시간씩 일을 시키고도 봉급은 쥐꼬리만큼 주었다. 그리고 자기명의로 중고핸드폰을 하나 사주고 매달 통화료라고 20만원씩(실제로 5만원 가량) 봉급에서 제하였다. 올 4월 넉달이나 봉급을 받지 못한 김씨는 사장에게 봉급을 달라고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봉급을 주지 않으면 물건이라도 가져가겠다고 강하게 나왔다. 그러자 사장부부는 둘이서 달려들어 그를 구타해 피투성이를 만들고도 성차지 않아 불법체류자라고 신고해 강제추방까지 시켰다.

길림성 통화시의 리씨(41세)아줌마는 서울시 영등포의 한 회집에서 일하다가 매너좋은 신씨(56세)라는 한국인 사업가를 만났다. 신씨는 이 식당의 단골 손님이였는데 무역회사를 경영한다고 하였다. 식당에 와서 교포라고 위안의 말도 많이 해주고 화장품이나 사 쓰라고 돈도 몇만원씩 주고 갔다. 어떤 손님들은 술을 마시고 그녀에게 치근대기도 했지만 신씨만은 종래로 점잖았고 말도 쓸 말만 골라하였다. 어느날 식당에 와서 신씨는 그녀에게 자기 친구가 미국수속을 전문 하고 있는데 해볼의향이 없는가고 물어왔다. 안그래도 고향사람이 미국가서 돈 잘 번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 있는데 이런 소리를 듣자 리씨아줌마는 혹 했다. 신씨라면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진심으로 도와줄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 둘 까지 소개해 선불금으로 1500만원을 신씨에게 주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이튿날이면 려권을 가져다 준다는 신씨가 종무소식이 될 줄이야? 여러 경로를 통하여 후에 신씨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상습 사기군이여서 아무런 받아낼 재산도 없었다.

길림성 연길시의 김모녀인(32세)은 2년전 남의 소개로 결혼하여 한국에 왔다.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에 사는 윤모(38세)라는 한국인에게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라는 자는 매일 술이나 마시고 도박을 업으로 삼는 백수였다. 잘 살려고 온 한국에서 이런 남편을 만나고 보니 기가 막혀 리혼을 제기했다. 그러자 남편이라는 자는 별거해도 좋으니 자기에게 1000만원만 주면 한국국적(현행 한국법상 2년을 동거해야만 국적취득이 가능함)을 올려주겠다고 유혹했다. 년로한 부모님도 계시고 형제들도 가난하여 김모녀인은 그의 요구를 수락, 리혼을 보류하고 식당을 전전하며 모은돈 1000만원을 건네주었지만 올해 초 기한이 되여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한달동안 동거해야만 수속을 해주겠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자의 요구를 따랐지만 윤모는 자신의 욕심을 다 채운후 위장결혼이라고 신고해버려 김모녀인은 불법체류자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료녕성 무순시의 김모씨(33세)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되는데 너무도 황당한 일을 당해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4월 그는 잘다니는 호프집 사장에게서 리모(34세)라는 한국녀인을 소개받았다. 리혼하고 혼자서 사는 녀인이라고 해서 그도 같은 처지라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큰 함정이였을 줄이야? 어느날, 그의 세집으로 리모녀인의 남편이라는 자가 사람을 여럿이 데리고 나타나 만약 돈 1000만원을 당장 내놓지 않으면 유부녀 간통죄로 신고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김모씨가 건축현장 철근오야지로 돈 잘 번다는 냄새를 맡은 호프집 사장일당이 꾸민 연극이였던 것이다. 법을 찾아 해결하자니 자신이 한일도 있고 또한 불법체류자라 하는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어서야 순순히 풀려날 수 있었다.

흑룡강성 철려시의 김모아저씨(56세)는 서울 모 병원의 병상에 누워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다. 김씨는 1994년 한국수속을 하려고 브로커에게 10만원 인민페(부부동반수속)를 주었다가 몽땅 떼우고 빚꾸러기 신세로 전락되였다. 1999년 갖은 고생을 다하며 밀입국에 성공해 서울 모 연마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올해 초 기계에 손가락이 뭉청 잘리워 나가는 산재를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김씨가 기계조작부당으로 생긴 사고라며 책임을 전가하려 들었고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회유와 협박을 하며 병원비 몇푼 주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들었다.

중국 천진시의 리모씨(41세)는 중국에서 잘나가는 사업가 였다. 초창기 중한 농산물무역의 물고를 틔운 조선족무역상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그는 천진에서 한국여러 무역회사와 신용장을 개설하고 거창하게 컨테이너무역을 벌려나갔다. 하지만 한국파트너에 대한 지나친 맹신으로 250만딸라의 농산물을 수출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해 파산을 하고 말았다. 하는수 없이 중국을 떠나 현재 한국에 7년간 체류하면서 검찰과 법원을 오가며 노력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묘연하다.

상기 실례와 류사한 사건들이 재한 조선족들에게서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불완전한 집계에 따르면 재한 외국인 임금체불, 사기피해는 1만8000여건에 450억원(한화)에 달한다는 수자만 보아도 불법체류자 첫자리를 차지하는 중국조선족의 피해를 가히 짐작할수 있다. 그리고 산재를 당해도 확실한 고용계약서가 없고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응분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물론 임금체불하는 악덕업주나 사기군으로 한국인 전체를 매도 할수는 없다. 한국의 실정에 눈이 어두운 우리 조선족들도 빨리 각성해 법률의 무기로 자신을 보호할줄 알아야 겠지만 신고만 하면 불문곡직하고 무조건 강제추방하는 한국관련당국의 처사도 사기군들이 악용하는 무기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조금 더 조선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이러한 악성순환의 고리는 끊을수 있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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