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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정은의 중국 방문을 바라보며
이병우 코트라 전문위원/ 중국 시장경제연구소장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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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9  13: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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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코트라 전문위원/ 중국 시장경제연구소장
북한의 김정은이 마침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단둥 역에서 출발한 특별 열차는 삼엄한 경비 속에 쉼 없이 베이징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나는 남과 북의 대치 국면을 잠시 접어두고, 잠시 그의 인간적인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아마도 어린 나이의 최고 지도자는 차창으로 보이는 새봄의 환희와 생동의 기운보다는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무거운 압박감과 책임감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을 것이고 불안한 현실이 주는 우울한 기분이 달리는 열차의 속도만큼이나 그의 얼굴 표정에서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갑자기 타계한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연민의 정도 솟았을지도 모른다. 그 연민의 정체는 무엇일까? 조금만 더 아버지가 살았더라면 자기가 짊어져야 할 지금의 고통이 조금은 덜 했을 수도 있을 거란 부질없는 원망일 수도 있고, 혼자서 지고 가야 하는 혼란과 압박의 무게가 너무나 버겁기에 오히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더 깊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지난 날 자기가 보낸 특사를 중국에서 그토록 냉대할 줄은 몰랐었기에 자기 또한 시진핑이 보낸 특사를 만나주지도 않고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한번 부려본 객기일 수도 있겠지만 냉엄한 국제질서의 전쟁터에서 한낱 패기와 객기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남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배짱이 좋다는 등의 별 소리를 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다. 죽으나 사나 나라의 운명을 약관의 나이에 떠맡고 보니 모든 것이 서툴고 힘이 들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가야 하는 길이고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길이다. 과연 중국의 속내는 무엇이고, 우리의 의도대로 협조 해 줄 것인가? 그들의 조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젊은 지도자는 이런 상념에 젖어 북경으로 갔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일찍이 김정일은 북한을 방문한 남한의 정치인들에게 “나는 중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정은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 동안 직간접적으로 중국을 겪어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누굴 믿고 누굴 의지한단 말인가? 혼자서 이런 한탄의 중얼거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을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혈맹의 흔적이라도 움켜쥐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옛 “꽌시”를 이용해서라도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힘도 없고 돈도 없다. 대미(對美) 협상에서 핵무기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이 안 되는 것을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지금쯤이면 김정은은 3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중국에서의 3일 밤은 길고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마하게 커져버린 베이징의 야경과 천안문 광장의 수많은 인파와 자금성의 규모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젊은 그에게 반신반의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하물며 독재정권을 유지해야 하는 그의 본능은 더 예민할 수도 있다. 어느 중국의 작가는 중국인의 특징을 한 마디로 ‘노회함(老獪)’이라 했다. 경험이 많고 교활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이 든 중국인의 ‘노회함’은 수가 더 깊고 높다. 3일 간 이런 정치 9단들을 상대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옛말도 있다. 그러나 다시 평양으로 돌아온 김정은의 불면의 밤은 어쩌면 더 깊어지고 길어질 수도 있다.

국가 간의 대화와 협상은 반드시 원만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약자의 논리는 늘 무시당하고, 약자의 입장은 항상 양보해야 하는 법이 현실이다. 김정은이 아무리 과거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강조해도 세상은 변했고, 중국이 옛날의 중국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합의와 협조는 현실의 바탕 위에서 강자의 논리대로 진행되는 것이지 과거의 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왕 내친김에 상상의 날개를 조금 더 펼쳐보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하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고 하자. 그래서 결국은 답을 찾았다고 해 보자.

그런데 그 답이 바로 “믿을 것은 그래도 우리 민족”이라면, 그래도 동질의 문화와 언어를 가진 남한과의 교류와 협조와 교역과 허심탄회한 대화와 그리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장차 떳떳하게 미국과 중국을 당당하게 가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는다면, 이번에 중국행 열차에 몸을 실은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을 해 본다. 괜한 믿음이고 상상일까? 아직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대동강 물도 봄이 되어 다시 얼음을 깨고 흘러가고 모란봉의 진달래도 며칠 후면 개화가 될 것이다.

남쪽에는 벌써 매화가 만발하고 목련이 고귀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고 있다. 한반도에 바야흐로 봄이 오는 중이다. 시절이 좋으니 이 땅에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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