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입양아의 대부' 김원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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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입양아의 대부' 김원보씨
  • 전영식
  • 승인 200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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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원보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보람찬 삶을 사는 사람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 중에 한사람, 김원보(65)씨.

미국 남가주지역에서 ‘한인 입양아의 대부’란 타칭 별명을 얻긴 했지만 아직도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질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인타운에 그렇게도 흔한 단체장 같은 자리엔 전혀 연연치 않고 관심도 없기 때문.

그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한인 입양아와 입양 부모들의 위로행사에 보람을 느껴 20여년이 넘도록 줄기찬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을 뿐이다.

김씨가 한인 입양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온 한인 입양아의 딱한 상황을 접하면서 부터다.

“옆집에 4살 된 한인 입양아가 왔더라구요. 그런데 이 아이는 영어를 전혀 못하고 양부모는 당연히 한국어를 못하는 겁니다. 아이가 완전 기가 죽어 사는 거예요. 다행히 아이가 한국어를 조금 할수 있어서 조금씩 도와 준것이 입양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지요.”

기죽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활기를 넣어주고자 시작한 입양아 및 입양부모를 위한 위로 행사가 마련 된 것은 1981년.

옆집 가정을 중심으로 몇몇 입양가족을 수소문해 마련한 위안 행사에 무려 70여가정이 모이게 됐다. 그저 열댓 가정 정도 모일것으로 예상했던 김씨 부부는 당황했다. 순간, 이 일들이 자신들의 몫임을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는 20여년이 넘도록 이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

말 안통하고 얼굴색 다른 이들 입양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과 똑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활기를 되찾게 되고, 양부모 역시 자식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간접이나마 경험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위로행사의 내용도 한국 고급문화의 소개에서부터 태권도에 이르기까지 향상되는가 하면 참가인원도 8백여명에 이르는 등 김씨 부부의 헌신적인 봉사는 이제 제 궤도에 이르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입양아 및 양부모 위로행사는 이제 주류 남가주 입양아 사회에선 빼놓을수 없는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65년 맨손으로 이민왔다는 김씨.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이 입양아 행사를 통해 주류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수 없다는 것이 김씨는 “미국 사회에 정착하고 자리잡게 된것도 감사한데 이런 입양아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더욱 감사한 일”이라며 “간혹 아이들의 친 부모를 찾게 되거나 아이들에게 긍지를 갖게 해줄때 정말 보람을 찾게 된다” 고 소감을 밝힌다.

이런 입양아 행사가 20년이 넘도록 지속될수 있었던 것은 김씨의 부인 킴벌리 김(59)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없이 엄청난 일을 해낼수 있었기 때문. 그 많은 편지의 왕래, 이 일을 위해 가설한 3대 라인의 전화를 통한 통역과 봉사, 친 부모와를 찾는 아이들과 부모와의 가교 역할 등 아무나 할수 없는 일을 도맡아 왔다.

김씨 부부는 금년도 어김없이 오는 10월2일 벤추라 카운티 카말리오 커뮤니티 센터에서 ‘입양아 및 양부모 위안의 밤’ 행사를 갖는다.

전영식 해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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