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재한 조선족 집중조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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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재한 조선족 집중조명 (2)
  • 흑룡강신문
  • 승인 200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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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수교10주년기념 특별기획

  
행복찾는 사람들 꿈을 향한 사람들 (2)

기자 진종호

경제의 페허우에 세인을 놀래운 "한강의 기적"을 창조하여 당당히 OECD국가에 진입하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전 지구촌에 널리 알려진 한국은 중국조선족들의 "산업대학"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시장경제와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아오던 중국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시장경제를 배우고 새 기술을 배워 성공의 대문을 열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믿어 의심할바 없다. 초창기 부동한 체제하에서 부동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중국 조선족은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 및 회사문화와 같은 것을 배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적응이 빠른 민족이여서 인지는 몰라도 금방 한국사회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끈질긴 노력으로 "코리안드림"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선두주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길림성 교하시의 최창남씨(34세)는 1997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 충청북도 충주시교외의 의료위생품생산회사로 왔다. 기계를 보는 일이였는데 초봉은 30만원(한화)이고 야근을 해야 겨우 50만원가량 받을 수 있어 함께 간 4명의 조선족들은 로임이 적고 일이 힘들다며 모두 짐을 챙겨 야간 도주했다. 하지만 그만은 선뜻 그들을 따라나설수가 없어 머저리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회사에 눌러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족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아 색안경을 끼고 보는 마당에 자신마저 떠날 수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창남씨는 뒤에서 손가락질 하든 말든 자신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워낙 기계수리에 흥취가 많은 특기를 살려 회사의 설비개선에 힘을 기울였다. 언젠가 그도 다른 조선족들처럼 훌쩍 떠날것이란 마음에서 별로 신임을 주지 않던 사장도 그의 태도에 감동되여 창남씨를 적극지지, 한국 명문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사장은 그의 연구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 창남씨는 약솜절단 반자동화기계를 자동화기계로 개진하고 이외에도 가제천포장기계를 비롯한 5가지 항목의 기계설비를 개진해 한화 1억원상당의 리윤을 창출해 내였다. 이런 성과로 그는 회사의 보배로 간주되여 한국인을 포함해 회사내 최고의 로임을 받는 동시에 회사에서 돈을 대고 야간대학 기계공학과를 다니며 자신의 못다한 학업꿈을 키워가고 있다.

료녕성 심양시에서 온 김기남(31세)씨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심양시 모 공장에서 기술원으로 일하다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한국행을 시도한 케이스다.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경기도 포천군의 한 섬유회사에 온 김기남씨는 원단생산직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 회사의 주제품은 일본, 미국, 유럽등지에 수출하는 고급원단으로서 품질에 대한 요구가 무척 까다로웠다. 처음으로 접촉하는 분야인것만큼 일도 서투르고 실수도 많아 욕을 뒤에다 달고 다녔고 심지어는 퇴사경고까지 받았다. 자존심이 엄청 상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꾹 참고 견디였다. 그는 틈만 나면 기술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았고 원단에 관한 서적들을 뒤지며 각종 원단의 품질기준과 촉감을 익혔다. "고진감래"라고 마침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원단도사가 되어 여러 섬유회사들에서 높은 로임으로 그를 데려가려 했지만 기남씨는 일일이 사절하고 사장과의 신의를 지키며 자신을 양성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였다. "믿음은 믿음을 가져오는 법"이라고 사장은 그에게 분회사를 도급주었으며 중국수출 총판이라는 중책을 맡기였다. 현재 기남씨는 한국처녀와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아 행복한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흑룡강성 할빈시의 설성태(48세)씨는 5년전 안해와 함께 친척방문으로 한국에 왔다. 당시 한국에 한창 IMF경제위기가 터진 때라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근 반년 중국에서 간 친척집에서 눈치밥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가 남의 소개로 서울 강남구의 모 사우나에 때밀이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부자동네라고는 하지만 IMF로 경기가 좋지 않아 주인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업소의 위치와 류동인원, 한국경제의 회생을 감안할 때 최적의 시기라고 인정한 그는 출근 닷새만에 주인에게 도급계약을 제안했다. 장사가 되지 않아 속이타는 상황이고 계약조건도 자신에게 무척 유리하자 주인은 두말없이 2천5백만원의 보증금을 받고 계약에 사인을 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꾸고 안해와 친척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 크게 일을 벌려놓기는 했지만 장사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는 타업소를 다니며 그들의 서비스를 배우고 관리방법을 익히며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우선 그는 일반서민들의 소비수준에 맞게 가격을 낮추고 중의안마사 두명을 고임금으로 초빙해 경락마사지를 신설했으며 피부질환과 피로회복에 좋은 약물욕도 추가했다. 하여 중국교포가 한다고 생트집을 잡고 영업을 방해하던 손님들도 단골손님이 되었으며 일당 매출액도 점차 늘어나 한국의 경기회복과 함께 호황을 이루었다. 모종의 원인으로 가게를 원주인에게 넘겼지만 여기에서 자금도 마련하고 사우나 경영신심도 얻은 성태씨는 충청북도의 한 온천에 있는 목욕탕을 도맡아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연길시의 리광철(28세)씨는 1997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류학으로 한국에 건너왔다. 원래 컴퓨터에 남다른 흥취를 가지고 있던 그는 IT왕국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에 오자 금방 컴퓨터에 매료되였다. 낮에는 학교수업을 들어야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힘든 류학생활이였지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비를 절약해 컴퓨터관련서적을 구입하여 탐독하였고 가난한 류학생활에 엄청난 등록금을 내면서도 유명한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의 실력을 제고시켰다. 그리고 중고컴퓨터를 사서 얼마나 해체하고 조립하고 하였던지 잠결에서도 컴퓨터 부속품을 외울정도 였다. 하여 그는 컴퓨터정비사, 웹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등 컴퓨터에 관한 여러 가지 자격증을 소지하게 되었다.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모 벤처기업 인터넷관리팀 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리광철씨는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도메인만 해도 400여개에 달해 엄청난 무형자산을 소유, 한국에서 실천경험을 많이 쌓아 귀국후 벤처기업을 창업하겠다는 야망을 지니고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흑룡강성 방정현의 김덕룡(41세)씨는 천진에서 대한국 농산물무역에 종사하다가 더욱 크게 해볼 의향으로 1997년 한국에 외국인투자기업을 설립했다. 인천항 부근에 농산물저장창고를 설립하고 고사리, 도토리, 참깨등 대량의 농산물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여 한국시장에 공급, 초창기 경기가 무척 좋아 수입이 가관이였지만 한국바이어의 계약파기로 파산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시련과 좌절앞에 물러서지 않고 신용으로 쌓아온 바탕으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 현재 년간 무역액이 수천만원(인민페)에 달해 한국내 중국조선족 무역거두로 성장하였으며 2000년에는 이같은 무역실적으로 대통령표창장까지 획득하였다.

이외에도 서울시 가리봉동의 "은하수"노래방, 연길산적점, , 대림동의 동북물만두성(東北餃子城), 황학루(黃鶴樓), 도이치호프집등 가게의 주인들도 모두 중국조선족들로서 경기가 호황이고 일당 매출액도 비교적 높아 차이나 코리아타운의 자수성가한 성공모델로 불리우고 있다. 중국조선족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는 건축업에서도 형틀목수, 철근, 설비, 창호, 드라이비트, 실내인테리어, 대리석, 페인트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군 몇 명에서 수십명씩 거느리는 조선족하청업자들이 속출해 많게는 월 천만원이상, 적게는 400만∼500만원(한화)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중국조선족 "심마니"들은 대부분 생소한 분야나 직종에 종사할지라도 특유의 총명함과 진취성으로 금방 적응이 가능해 생존능력을 인정 받고 있다. 한 조선족 소식통의 말을 빈다면 중국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삽자루나 낫자루를 만지던 사람이 한국에 온지 두달만이면 신기하게 형틀목수, 철근 기능공, 다이마루(천 짜는 로동자), 중국집 주방장등으로 탈바꿈 한다고 한다. 지하철이 시작되는 이른 새벽 가리봉역이나 구로공단역, 대림역에서 승차하는 승객중 반수이상이 중국조선족이라는 사실은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조선족들의 한국생활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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