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당신들의 엘리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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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당신들의 엘리트주의
  • 김제완기자
  • 승인 2004.08.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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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2층 대회의실에서 '김선일씨사건 무엇을 남겼나-한국외교의 교훈과 과제'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무려 네시간에 걸쳐 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외교부 관리들의 뼈를 깎는 자성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김선일사건과 이라크 파병을 구별못하는 "무식한 시민단체"라는 말이 외교부 관계자의 입에서 나와 뜻있는 청중을 아연하게 했다.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은 8월20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외교부 혁신워크숍에서 "외교부의 관행이나 문화에 대해서 타부처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말을 여러번 들었다"며 "외교부는 여론조사를 해서 한번쯤 충격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기왕에 매를 맞는 김에 한번 여론조사를 해보라"고 말했다.

2주일 사이에 같은 장소에서 외교부의 문제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외교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이미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시민단체나 언론의 비판을 꿋꿋이 버티어내다가 정부고위인사의 충고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엘리트주의로 포장된 그들의 오만함의 뿌리가 어디인지 이 마당에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특권이었고 일반적으로 후진국에서는 외국인들을 접촉하는 역할은 엘리트만이 할 수 있었다. 또한 외국에 다니다 보니 남들보다 먼저 선진문물을 보아와서 눈높이가 높아졌을 만하다. 게다가 외무고시의 정원이 20명 정도로 워낙 소수인 점도 엘리트의식을 갖게 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또한 외교 국방 교육등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용인되는 부서였다. 이같은 조건에서 그들은 엘리트주의에 안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외교부는 천적이 별로 없다. 외교업무 감시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도 찾기 어렵거니와 국내에서는 외교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과거에는 여권 발급시에나 한번 찾는 곳이 외교부였으나 지금은 구청으로 이관돼 이같은 기회도 없어졌다.

이같이 국민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속에서 그들은 편안하게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었다. 이같이 견제없는 엘리트주의는 견제없는 권력이 부패하듯이 자연스럽게 파벌주의로 나아갔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외교부는 정부 부처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게 세분화된 파벌을 가지고 있다.

외교부내의 그룹을 힘이 센쪽부터 나열하면 이렇다. A그룹은 S대학 외교학과, B그룹은 S대학 법대, C그룹은 S대학 여타학과, D그룹은 비S대학 출신이다. 7급이나 특채출신들은 육두품이어서 등급에 오르지도 못한다.

대외적으로는 폐쇄적 배타적 엘리트주의, 대내적으로는 세분화된 파벌주의가 외교부의 현재 모습이다. 이 지경이 되도록 견제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유학생 해외여행자 동포등 재외국민들로부터 원성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기자가 보기에 난마와 같은 외교부 문제를 풀어낼 주체중 하나는 해외동포사회이다. 국내에서는 외교부관리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반해 해외동포들은 대한민국 관리라면 주로 외교부 공무원들을 상대한다. 이때문에 외교부의 문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동포사회가 받게 마련이다. 외교부 개혁에 동포사회가 나서야하는 근거이다.

본지에서 지난달 보도한 설문조사 응답자의 발언중에 이런 말이 가슴을 친다. "엘리트 영사보다 발로 뛰는 영사를 원한다." 이제는 더이상 엘리트를 '모시며'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겨있는 듯하다. 동포들을 위해 봉사하는 영사를 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엿보인다. 이제 이 소박한 바람을 지렛대 삼아 외교부를 바꿔야 한다. 7백만 동포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거뜬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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