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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명 표기와 민족 정체성 회복민족 정체성과 배치되는 지명표기 : 도로 명 표기는 ‘동’으로 환원 필요
조명진 유럽연합(EU) 집행이사회 안보전문보좌관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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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3  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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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진 유럽연합(EU) 집행이사회 안보전문보좌관

일제의 지명 바꾸기는 정체성 말살 의도

1910년 한일병탄에서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34년 11개월 동안 이어진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내선일체 (內鮮一體)’라는 미명하에 민족말살정책을 자행했다. 일제는 우리의 주권을 강탈했고, 민족 정체성마저 빼앗으려 했다. 민족 정체성을 강탈하려는 일제의 교묘한 방법은 1897년 건국된 대한제국의 수도 황성(지금의 서울)을 경성으로 개명한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꿈으로써 민족혼을 짓밟아 버리려고 했다.

지명 문제는 정체성과 직결되기에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인데 광복 7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상존하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지명 표기와 민족 정체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을사조약이나 한일합방은 침략국인 일본의 입장에서 쓴 표현이다. 이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 노예’인 것을 가해자 입장에서 ‘일본종군위안부’로 칭함과 같다.)

정체성과 문화 그리고 제도

정체성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필자는 정체성이란 ‘특정 집단에 속해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라고 재정의한다.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집단적 정체성을 토대로 민족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고유한 문화의 틀을 형성하며, 그 문화를 바탕으로 제도가 확립되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대한민국이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바뀌어 온 제도에 주목해 본다. 광복 이후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이 경과한 오늘날에도, 한국의 교육제도와 정치제도는 여전히 미완성인 채 수정을 계속하고 있다. 정당의 명칭은 선거 때마다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입시 제도를 내놓는다. 이로 인하여 전후 세대, X세대 같은 구분이 한국에서는 86세대와 입시 제도에 따라 예비고사 세대, 학력고사 세대, 수능 세대라는 신조어로 나뉘어 불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세대별로 제각기 다른 정체성이 부여되고, 이러한 특성이 각 세대에 속하는 개개인을 정형화된 이미지로 고착시키고 있다.

이처럼 개혁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수립 이후의 교육과 정치 제도가 본질적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광복 이후 일제의 관행과 서구식 전통을 그대로 모방하였기에 우리 문화에 맞지 않아서 수정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이 같은 제도 개혁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년인 2048년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물론 앞으로 30년을 그저 기다리면 정체성에 부합하는 제도를 자동적으로 갖게 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5년간의 단기 계획이 아닌 30년 후를 목표로 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전 정부가 세운 제도를 차기 정부가 건설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전제 하에서다.

도로명 주소 표기는 제국주의 발상

서구화가 반드시 선진화를 의미하지 않고, 동시에 세계화가 선진화와 동의어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명목 하에 2007년부터 주소 표기 방식 동(洞)기준에서 도로 명으로 전면 전환했다. 냉소적으로 풍자하면, 동에서 도로로 주소를 표기함에 따라 동네에 살던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길가에 나앉은 느낌을 주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로마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영제국 그리고 1868년 시작된 명치유신(明治維新) 당시 영국 제도를 모방한 일본제국은 주소 표기를 도로명으로 표시했다. 중요한 사실은1840년대에 김정호가 제작한 한양일대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를 보면 동만 나오지 길(路)표시는 없다. 사실 종로와 종로구 같은 지명과 행정구역은 일제강점기인 194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도입된 것이었다.

침략과 정복을 위한 팽창 주의자들에게는 전투 병력 투입 시 진입 경로가 우선시 되므로 작전 지도상에 길을 찾고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다른 국가를 무자비하게 침략한 적이 없고, 농경문화에 바탕을 두고 살아온 한민족에게는 동네가 삶의 터전이며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왔다. 따라서 도로명 주소 표기 방식은 침략적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민족 정체성과 배치된다.

 정체성 회복 위한 지명 복원

러시아의 경우 1703년 짜르 페테르 대제(Peter The Great)의 이름을 따 지은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는, 볼세비키 혁명 성공 이후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의 이름을 따서1924년 레닌그라드(Leningrad)로 개명된 바 있다. 그러나 소련 공산체제 붕괴 이후 1991년 본래의 도시명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환원되었다. 러시아인들에게 도시 명칭의 환원은 단순히 시대 변화의 반영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체성의 회복을 뜻한다.

우리가 정체성 회복을 위해서 다시 찾아야 하는 명칭들은 광복 7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많다. 예를 들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바꿔놓은 ‘남산’을 ‘목멱산’으로,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바뀐 충청남도의 홍성은 고려 때 지어진 본래 지명인 ‘홍주’로 다시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사실은 올해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처럼 일제시대 이전의 지명으로의 환원이 지방자치 단체의 사안이라면, 읍, 면, 동식 주소표기법으로의 환원은 중앙정부의 범국가적 사안이다. 지명은 작명한 사람의 사상과 혼이 담겨 있으므로, 정신 가치의 언어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새해 벽두에, 우리식 주소 표기법으로의 환원은 한국에 걸맞은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정체성 회복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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