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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 열사기념관’ 확대 재개관한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열사 떠난 건물에 기념관 개관해 20년 넘게 암스텔담과 헤이그 오가며 지켜
서정필 기자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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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7  17: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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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 18일 이준 열사 기념관 확대 재개관 행사를 치른 이기항 이준아카데미원장. 지난 1995년 개관 후 20년 넘게 거주지 암스텔담에서 기념관이 있는 헤이그까지 매일 왕복하며 이준 열사가 떠난 곳을 지키고 있다.

1907년 고종황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명을 밀사로 파견해 을사조약의 무효를 선언하여 대한제국의 자주적 외교권을 설명하고, 일제의 무도한 침략을 고발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 측의 방해와 열강들의 냉담한 태도로 본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한제국의 외교적 자주권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이에 분개한 이준 열사는 7월 14일 당시 여장을 풀던 이역만리 헤이그 드 용 호텔에서 한 맺힌 48년의 생을 마감한다.

1992년 이준 열사가 생을 마감한 네덜란드에 환갑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1936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이기항이었다. 1972년 한국수출진흥주식회사 로테르담 지사 주재원으로 처음 네덜란드 땅을 밟은 지 20년, 당시 그는 자신과 아내의 성을 딴 무역회사 ‘리·송 트레이딩’을 운영 중이었다.

   
 ▲ 본지 사무실을 찾은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이 2015년 펴낸 ‘이준 열사 기념관 20년’ 책자를 펴고 지난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92년 7월 14일 네덜란드 유력일간지 NRC에는 ‘한 한국인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85년 전 이준 열사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짚으며 그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드 용 호텔이 재개발로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기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 해 전인 1991년 7월 처음으로 이준 열사 추념식을 앞장서서 준비했던 이기항 선생은 그 기사를 ‘역사의식을 깨우쳐 준 자명종’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열사가 떠난 현장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바로 다음날인 15일 호텔을 찾아갔는데 폐가 직전이더군요. 2,3층은 무주택자의 임시 거처였고 1층에는 100평 규모의 당구장이 영업 중이었습니다. 그대로 방치해두면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가 그대로 사라져버릴 위기더라고요.”

이후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그 건물을 매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그리고 또 한 명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난다.

“그 건물은 헤이그 시 소유여서 매각을 하게 되면 규정상 ‘공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제가 아닌 입주자에게 우선 매입권이 주어지게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하버만스 헤이그 시장이 우리 뜻을 이해하고, 시장 재량으로 우리가 매입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면서 건물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1995년 8월 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도움을 받아 호텔 앞건물의 2,3 층에 이준 열사의 삶을 기억하는 기념관의 문을 열었다. (드 용 호텔은 앞, 뒤 두 건물로 이뤄져 있다.)

이후 이기항 원장과 부인 송창주씨는 이준 열사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계속 수집했다.  따라서 기념관의 내용물도 하나씩 늘어났다.

기념관은 유럽 유일의 항일 유적지이자 역사교육의 장이 됐으며 매년 관련 기념행사를 치르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헤이그 밀사 파견 100주년을 맞이한 2007년엔 서영훈 평화제전위원장, 김수환 추기경, 김재순 전 국회의장, 반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 등 국내외 인사 7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럽 한민족 평화제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 11월 18일 열린 이준 열사 기념관 확대 재개관 행사 (사진 이준 열사 기념관)

그리고 지난 11월 18일, 어느새 여든을 넘긴 이기항 선생은 ‘자명종이 맺어 준 인연’인 드 용 호텔 앞에서 다시 한 번 손님들을 맞았다. 기념관 건물의 나머지 공간에 오래 머물던 입주자들을 시청의 협력으로 모두 내보내고, 개관 22년만에 앞건물 1층과 뒷 건물까지 이준 열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확대 재개관 행사를 연 것이다.

역사의식의 자명종 소리를 들은 지 4반세기, 그동안 결코 쉽지 않았을 그 시간동안 묵묵히 그 곳을 지켜온 그에게 소감과 향후 계획을 묻자 2015년 펴낸 20주년 기념 도서 ‘이준 열사 기념관 20년’의 맺음말로 대신했다.

“이 집을 지키기 위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주일을 제외한 매일매일 암스테르담에서 헤이그로 60킬로미터 길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하루에 세 시간에 소요되는 이 노고를 고희의 나이를 훌쩍 넘겨 이제 80 고갯길에 선 우리가 매일 감당하기에는 매우 고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꺼이 이 일을 감내하는 이유는 이준 열사의 한국혼이 날마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또한 내방객들의 따뜻한 가슴들이 우리를 계속 격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인생의 연한이 허락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걸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이준 열사 기념관 20년, 맺음말 ‘고뇌와 보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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