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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백제 의병의 ‘다물’ 전쟁백제 중흥을 망친 두 죄인 - 부여풍, 흑치상지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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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5  16: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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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세 지역 의병들의 「다물」전쟁

백제의 도성 「솝울」이 이미 적병에게 함락되고 의자왕이 붙잡히자, 고관과 귀인들은 모두 그들이 지키던 성읍을 들어 적국에 항복했다. 그러나 성충의 잔당으로 몰려 관직에서 쫓겨났던 구신들과 초야의 의사들은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각처에서 봉기했다.

이같이 열렬한 「다물」 운동의 의사들은, 신라의 사가들이 이를 잔적이라고 배척하여 그 사적을 삭제해버리고 성명을 매몰시켜 버렸으니, 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백제의 의병이 일어나던 지방은 대략 세 곳이니, (1)은 백제 남부의 동북(전라도)의 금산 내지 진안 등지이며, (2)는 백제 서부의 서반(충청도 서반)의 대흥‧홍주 내지 임천 등지이며, (3)은 백제 중부(충청남도 끝)의 연기 등지이니, 백제 말년의 혈전의 역사를 살펴보자.

서부 의병장 부여복신

서부 의병장 부여복신은 무왕의 조카로서, 일찍이 고구려와 당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계의 인재로 이름이 났었다. 후에 서부 은솔이 되어 임존성을 견고하게 수리하며, 성 안의 창고에 양곡과 사료를 비축하는 외에 통주(통대나무 기둥)를 세워 그 속에 싸라기를 감추어 놓아 후일에 있을지도 모를 의외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간신 임자의 참소를 당하여 그 직책에서 쫓겨났다.

그 후 당나라 군사들이 「솝울」과 「곰나루」 두 도성을 함락시켜 왕이 붙들리자, 성 안의 군사들이 다시 그 자리에 있던 현직 은솔을 쫓아내고 복신을 추대하여 은솔을 삼고 버티고 지켰다. 좌평 자진(중부)와 좌평 정무(남부)가 군사를 합쳐 「곰나루」를 공격하자고 부여복신에게 요청했다.

지금은 당의 10만 대군이 물러가기를 기다릴 때

복신이 말하였다. “이제 적의 대병이 우리의 두 도성과 각 요해처를 빼앗아 차지하고 우리의 군수물자와 무기를 몰수했는데, 흩어진 병졸들과 양민들을 불러 모아 죽창과 몽둥이로 저 활과 창검을 가진 자들을 쳐들어가려 한다면 이는 틀림없이 패배할 일이다. 우리 의병이 패하여 망하면 백제의 운명은 그만이다. 이제 당이 10여 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바다를 건너오는데, 그들의 양식은 신라로부터의 공급과, 백제 백성에게서 약탈한 것에 의존할 뿐이다. 민간의 약탈로는 수많은 군사들의 식량을 충분히 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우리 백성들의 반감을 쌓아서 의병의 수를 늘릴 뿐이다. 당나라 사람들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불과 며칠 안에 반드시 1, 2만의 수비병만 남겨두고 그 대병은 돌아갈 것이니, 우리가 다만 험준한 요해지의 성읍을 굳게 지키고 있다가 그때를 틈타 저들의 수비병을 격파하고 조상 전래의 왕업을 되찾을 터이니, 어찌 요행한 승리를 바라겠는가.”

얼마 후 당이 「곰나루」를 웅진도독부라 칭하고 당의 장수 유인원을 웅진도독으로 명하여 병사 1만으로, 신라왕자 인태는 병사 7천으로 공동 방수케 하고, 각지의 의병은 신라 태종에게 토평 책임을 맡기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9월 3일에 돌아갔다.

상좌평 부여복신의 연전연승

중부의 자진과 남부의 정무가 여러차례 무모한 도전으로 패하고, 부여복신의 서부 의병만 임존성에 남았다. 다음해 2월에 부여복신이 강서의 흩어진 사졸들을 모집하여 강을 건너가서 진현성을 회복하였더니, 당의 장수 웅진도독 유인원이 정예병 1천 명을 보내어 싸우러 달려왔다. 복신이 중간에서 저들을 불의에 습격하여 그 1천명 중에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유인원이 자꾸 사자를 신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자, 신라 태종이 품일‧문충‧ 의복‧욱천‧문품‧의광 등을 장군으로 삼아 구원병을 보냈다.

3월 5일에 그 선봉대가 두량윤성(지금의 정산)에 이르러 진지를 시찰할 때, 복신이 저들의 대오가 정돈되어 있지 못함을 보고 갑자기 나가서 급히 공격하여 이들을 전멸시키고, 그 군사 무기를 탈취하여 목봉을 대신하고 성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후에 신라의 대군이 이르러 성을 포위하여 공격한 지 36일에 사상자만 많이 나고 성을 빼앗지 못하여 돌아갔다.

의자왕의 아들 풍을 왕으로 세우다

이때에 복신이 돌아가신 의자왕의 아들 풍을 맞이해 왕을 삼고, 「곰나루」성을 포위해 신라로부터의 당군 양식 운반 길을 끊으니, 복신의 위명이 천하에 진동했다.
 
고구려의 남생은 구원병을 보내어 신라 북한산성을 쳐서 멀리서 부여복신을 성원했으며, 일본은 화살 10만 여 개를 보내서 군수물자를 도와주었다.

부여복신을 처형하는 풍왕

부여복신이 신라와 당 양국의 군사를 대파하고 곰나루 성을 포위 공격하자 당의 장수 유인궤가 감히 대적하지 못했다. 또 소정방 등이 평양에서 패하여 달아나니, 당 고종이 낭패하여 “웅진(곰나루 성)을 지키기 곤란하니 전군을 해로로 철군하라”고 유인궤에게 조서를 보냈다. 복신이 이를 탐지하고 당병의 퇴로를 요격하여 유인궤를 사로잡으려 했다.

영군대장군 자진이 복신의 재능과 성망을 시샘하다가, 복신을 실패케 하려고 유인궤에게 복신의 계책을 밀고했다. 복신의 부장 ‘사수원’이 밀모의 증거를 잡아 복신에게 보고하니, 연회를 연다는 핑계로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풍왕에게 그 죄를 고한 후 자진을 참형에 처했다.

자진을 처형하고 전국의 병권이 복신에게 돌아가자, 풍왕의 좌우 사람들이 왕에게 복신을 참소했다. 복신의 권력이 두려워진 풍왕이 대신들과 밀모해 복신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병을 치료하는 복신을 방문해서 체포하고 죽였다. 백제 백성들이 부여복신의 죽음을 듣고 백제의 종말을 예감하며 모두 눈물을 뿌렸다.

백제 중흥을 망친 두 죄인

복신의 죽음을 전해 듣고 당 고종이 장군 손인사에게 2만 7천명의 군사와 함께 의자왕의 아들 ‘륭’을 백제왕이라 칭하여 보냈다. 이에 백제 군사가 양분되어, 서부달솔 지수신이 관할하는 서부는 풍왕에게 속하여 ‘서백제’가 되고, 남부달솔 흑치상지가 관할하는 남부는 륭에게 속하여 ‘남백제’가 됐다. 남백제는 당의 노예가 되어 서백제를 쳤다.

백제 중흥의 대업을 망친 자는 상좌평 부여복신을 죽인 부여풍으로 제1의 죄인이다. 풍왕이 비록 복신을 죽인 죄인이기는 하나 풍왕의 백제를 배반하고 당의 노예가 된 흑치상지는 백제를 멸망시킨 제2의 죄인이다. 백제는 중흥의 결정적 순간에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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