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암 아닌 암’ 선고받고 다시 우뚝 서는 김창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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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암 아닌 암’ 선고받고 다시 우뚝 서는 김창남씨
  • 임용위
  • 승인 2004.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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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딱지 달고 찾아온 멕시코. “동포 여러분 건강하세요!”
지난 금요일 오후, 암부르고 길을 가로질러 가는 필자에게 낯익은 모습 하나가 시야로 들어왔다. 겔러리아 호텔의 대형 유리벽 너머 커피숍에 앉아 신문을 펼쳐들고 있는 그를 금방 알아보기는 했으나, 그가 왜 이 멕시코 땅에 와있는지 궁금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더욱이 펼쳐들고 있는 신문이 동포신문 韓Diario이고 보니 필자의 호기심은 결국 호텔 안으로 발걸음을 돌려놓도록 유도한다.
‘혹시, 김창남씨 아니세요?’
몇 마디 주고받는 인사말로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 마냥 필자는 자연스레(사실은 뻔뻔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했고, 한때 잘 나가던 가수 김창남씨도 기꺼이 필자와의 대담에 응해주었다. 필자보다 한 살 위(46세)인 김씨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국내 TV 방송의 오락프로에 심심지 않게 등장해서 예의 그 익살스러운 재담으로 시청자들의 배꼽을 쥐게 하곤 했는데,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질 무렵에 멕시코에서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된 필자였다.
김창남씨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동포들 중엔 ‘도시의 아이들’하면 금방 알 수 있는 8~90년 대 듀엣 가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달빛 창가에서’라는 데뷔곡으로 두 사람이 통키타를 들고 나와 발놀림이 흥겨운 댄스곡을 부르던 당시(80년대 초반)에 ‘도시의 아이들’과 견주던 그룹이 바로 ‘소방차’였다. 국내 가요 판도가 댄스뮤직으로 한창 절정기를 겪고 있는 지금, 댄스가요의 시발점이 바로 김창남씨가 소속한 ‘도시의 아이들’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신곡을 곧 또 낼 계획입니다. ‘선녀와 나무꾼’이 사랑을 받은 뒤로 가수로서 너무 많은 공백기간을 보내왔죠.” 공백기간 동안 김창남씨에게는 좀 특이한 과정의 아픔이 있었다. 바로 간암 선고를 작년 초에 국내 유명 병원(H그룹의 A병원) 전문의에게 받았는데, 초기의 간암선고를 받고나서 모든 방송활동을 접고 바야흐로 병 치유를 위한 집념의 생활로 들어서면서 팬들의 기억에서 차츰차츰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인생에도 영화처럼 반전이 있어서 ‘내일 일은 아무도 장담하지 못 한다’는 말이 생긴 것일까? 두 차례 수술을 감행하고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김 씨는 근본 치유를 위한 정밀검사를 병원측에 요청했고, 정밀검사 후의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처음부터 ‘암’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전문의의 오진 덕에 한창 활동할 시기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두 차례의 수술로 인해서 몸은 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보다 암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더 충격적이었다.”는 김창남씨는 작년 말 1년을 끌어오던 괜한(?)투병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지가 있는 미국으로 쉬러 왔다가 멕시코에 들렀다고.
“A병원측의 오진 인정을 마음을 비우고 이해하고 나니 이제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는 김씨는 시티에서 제화제품 무역을 하는 후배 신 모씨의 권유로 8박9일 예정의 멕시코 방문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깐꾼 휴양지를 둘러보고 난 뒤, 토요일 다시 LA로 돌아가기에 앞서 동포 사업가 신씨와의 점심약속을 기다리다 필자에게 눈에 띤 것이다.
현지인 한 명이 배달용 신문을 한 아름 안고 가는 걸보고 한 부 구입해 호텔 커피숍에서 읽고 있는 중이었다는 김창남씨는 ‘한 주에 한번 발행하는 신문이냐?’고 묻는 대답에 ‘일간지’라고 답하자 ‘어떻게 매일 이렇게 신문을 만들 수 있느냐?’며, 세 사람이 만드는 신문이라는 필자의 말에 더 눈이 휘둥그러진다.
“한국에서도 익히 들어온 바와 달리, 한인동포들이 현지사회로부터 많은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는 김창남씨는 “일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티에서 기방무역을 하고 있는 후배도 그렇고, 몇몇 만나본 동포사업가들이 대체적으로 활발하고 순조롭게 사업을 펼치고 있거니와, 현지인들과의 교감도 상당히 친밀하고 두터웠다”면서, 눈에 띄게 두드러져만 가는 악순환 상태의 한국 경제를 생각해서 “멕시코 전체의 한인동포들이 이 힘든 시기에 두루두루 돌파구를 찾아가며, ‘성공’을 향한 희망을 잃지 말고 매진해 갈 것으로 믿는다.”는 확신에 찬 소신을 밝히기도.
한때의 황금기의 무대는 펄펄 나는 후배가수들이 온통 장악하고 있는 국내 가요시장에서 “그나마 가수는 노래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작업에 들어갈 ‘신곡 발표’가 제2의 가수인생 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공백기에 경험했던 고난과 상처를 통해 얻은 듯 “건강을 늘 생각하며 지내는 동포 여러분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드시 지면으로 전달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도시의 아이들’ 전성기 시절의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댄스 가요는 아닐 것으로 어림 짐작해보는 필자는 이번 김창남씨의 신곡발표가 공백기에 겪었던 아픔의 좌절을 딛고 비로소 ‘음악’으로 깊게 승화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한결 남다른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진정한 중견가수의 앨범으로 소개돼, 그를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김창남씨를 기억하는 많은 한인동포들이 다시 팬으로 만나는, 그의 새로운 음악에 설레임의 기대를 걸어본다.
임용위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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