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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백제의 패망과 낙화암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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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7  11: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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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신라와 당군의 합류

김유신이 황산벌에서 계백을 격파하고 기원 660년 7월 11일에 백강에 이르니, 소정방이 약속한 기일을 어겼다고 신라 독군 김문영을 베려 하였다. 이를 보고 김유신이 당나라가 신라를 속국으로 대하는 것에 분개하여 어느덧 보검을 빼어들고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백제는 그만두고 당과 싸우자.”고 말했다. 당나라 장수들 중에 이를 탐지한 자가 소정방에게 보고하니 김문영을 즉시 풀어주고 양국 군사들이 합하여 ‘솝울’을 쳤다.

지리멸렬한 백제 어전회의

의자왕에게는 태자 이외에도 왕자들이 40여 명이나 되었는데, 왕은 평소에 그들 모두에게 좌평의 관직을 주어 국가 대계를 논의하는 자리에 다 참여시키고 심지어 실권도 행사하게 했다. 마지막 남은 백제의 두 서울 ‘솝울’과 ‘곰나루성’을 지키는 어전회의가 열렸다.

태자 효는 곰나루성(웅진)을 지키면서 전국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불러 모으자고 했으며, 둘째 아들인 태는 ‘솝울’을 부자와 군신들이 힘껏 싸움으로써 각지의 의병을 기다리자고 했으며, 왕자 륭 등은 소와 술과 폐백을 적병에게 올려 바치고 군사를 물려주기를 애걸하자고 했다.

왕이 누구의 말을 좇아야 할지 몰라서 왕자들의 말을 다 허락하여 왕자 륭에게는 강화의 권한을 맡기고, 왕자 태에게는 싸우면서 ‘솝울’을 지킬 권한을 맡기고, 그 자신은 몸소 태자와 함께 곰나루성으로 도망쳤다.

솝울과 곰나루성의 항복 그리고 낙화암

솝울을 지키는 둘째왕자 태가 전권을 행사하자, 태자의 아들 ‘문사’가 반발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달아나니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왕자 륭은 적들과 화의가 성립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하니, 신라 병사들과 당나라 군사들이 이에 성첩을 받들고 성 위로 올랐다.

왕후와 왕의 희첩들과 태자의 비빈들은 모두 적병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대왕포로 달아나 암석 위에서 강을 향해 몸을 던져서 ‘낙화암’이란 바위 이름이 지금까지 그 유적을 전하고 있다.

여러 왕자들은 자살하거나 도망했고 의자왕은 ‘곰나루성’으로 달려가 지켰는데, 성을 지키는 대장이 곧 좌평 임자의 무리들인지라, 그들이 왕을 잡아 항복하려고 하자 왕이 스스로 칼로 목을 찔렀다. 그러나 동맥이 끊어지지 않아 태자 효와 어린 아들 연과 함께 당의 포로가 되어 묶여서 당나라 진영으로 끌려갔다.

당 고종의 밀지

소정방이 “일찍 백제를 쳐 없애거든 기회를 보아 신라를 쳐서 빼앗으라.”고 하는 당 고종의 밀지를 받았기 때문에 신라의 빈틈을 엿보았다. 김유신이 이를 알고 태종에게 보고하여 어전회의를 열고 대항책을 강구했는데, 김다미(金多美)가 말했다.

“우리 신라 병사들에게 백제 병사의 옷을 입혀 당나라 진영을 치게 하면, 당나라 병사들이 나가서 싸우면서 또 우리 군영에 구원을 요청해올 것입니다. 그때에 불의를 틈타 습격한다면 당나라 군사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니, 그러고서 백제 전토를 수복하고, 북으로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서쪽으로 당과 대항하며, 군사들을 훈련시켜 대비한다면 누가 우리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태종무열왕의 졸렬한 대응

태종이 말했다. “이미 당의 은혜를 입어서 적국을 멸망시키고, 다시 당을 친다면 하늘이 어찌 우리를 도와주겠느냐.”
김유신이 말했다. “개의 꼬리를 밟으면 주인이라도 뭅니다. 지금 당은 우리의 주인도 아니면서 우리의 꼬리를 밟을 뿐 아니라 곧 우리의 머리까지 깨려고 하니, 어찌 그 은혜를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당을 치기를 한사코 권했으나 태종이 결국 듣지 않고 군중에 명령을 내려 다만 방비만 엄히 하도록 할 뿐이었다. 소정방이 신라에서 대비하고 있음을 알고는 음모를 중지했다.

백제 멸망 유감

백제는 백전의 나라인지라, 나라 사람들이 싸움에 익숙하고 의에 용감했다. 그러나 유교를 수입한 이래 사회 전반이 명분의 굴레에 목을 매었다. 성충과 흥수는 비록 외적을 탕평할 만한 재략은 가졌으나, 고구려의 명림답부와 같이 폭군의 목을 베어버릴 기백이 없었다. 계백과 의직은 비록 자기 몸과 가족들을 희생하는 충렬은 있었으나,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같이 적폐세력을 숙청할 수완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친 의자왕을 처치하지 못하고 좌평 임자 같은 간신배 소인들로 하여금 수십 년 동안 정치의 중심세력이 되어 나라를 망치도록 방임했다. 만일 저들이 유교의 명분설에 속지 않고 혁명의 의지를 가졌더라면 어찌 저 용렬한 간신배들에게 나라가 망하도록 맡겨 두었겠는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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