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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신라와 당 연합군, 백제 침입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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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1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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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김춘추, 신라 29대 왕이 되다

기원 654년, 진덕여왕이 죽고 김춘추가 왕위를 계승하니 태종무열왕이다. 태종의 부친 김용춘 때부터 벌써 대왕의 실권은 가졌으나 다만 동서인 백제 무왕과의 왕위 다툼에서 무왕의 악화된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진평왕은 왕의 명의를 제1차는 선덕, 제2차는 진덕으로 출가여승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태종이 즉위하자 백제의 침입이 전보다 더욱 심해졌으므로, 태자 법민을 당나라에 보내어 원병을 청하였다. 당은 이때 당 태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여 고구려에 대한 자기 아버지 당 태종의 원수를 갚으려고 누차 고구려를 쳤으나 다 실패했다. 이에 먼저 신라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쳐 없앤 뒤에 다시 고구려를 같이 치기로 하고, 태종무열왕의 청을 들어주었다.

신라와 당 연합군, 백제 침입

기원 660년 3월에 신라 왕자 김인문이 당의 행군대총관 소정방과 함께 군사 13만 명을 거느리고 중국 래주로부터 바다를 건너 6월에 덕물도(남양 덕물도)에 진을 치고 머무르면서 태자 법민과 대각간 김유신과 장군 진주 천존 등으로 하여금 병선 1백 척으로 당군을 영접하게 하였다. 법민과 김유신 등이 금돌성으로부터 돌아와서 김품일, 김흠순 등 여러 장수들과 함께 정예병 5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로 향하였다.

백제 의자왕의 오락가락 대응

의자왕이 이때 와서야 밤늦게 연회를 파하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싸우고 지키는 문제를 상의하였는데, 좌평 의직이 말하였다.

 “당나라 병사들은 물에 익숙하지 못한데, 저들이 바다를 건너 멀리 오느라 반드시 지쳐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처음 물에 내릴 때를 틈타서 돌격하면 깨뜨리기 쉬울 것이며, 당나라 병사들을 깨뜨리고 나면 신라는 스스로 겁을 먹고 싸울 것도 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의자왕이 전에는 평시나 전시를 막론하고 용단을 잘 내리더니, 이때에 와서는 요망한 무녀와 소인배 무리들에 둘러싸여서 의외로 흐리멍텅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일찍 성충을 따르는 무리로 지목되어 고마미지(장흥)에 귀양 가 있는 좌평 부여흥수를 생각하고, 사자를 보내어 계책을 물어보게 하였다.

부여 흥수의 전략 - 간신 임자의 훼방

흥수가 대답하였다. “탄현과 기벌포는 국가의 요충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칼을 들고 막고 있으면 1만 명이 덤비지 못할 곳이므로, 수륙군의 용감한 정예병들을 뽑아서 당나라 군사들은 기벌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라 군사들은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대왕은 왕성을 지키고 있다가 양국의 적들이 양식이 다 떨어지고 군사들이 지친 후에 힘껏 들이친다면 백전백승할 것입니다.”

성충의 부하들이 다시 중용될까 두려워 좌평 임자가 반대했다. “흥수가 오랫동안 귀양 가서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그릇되게 하려고 하니, 그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의자왕은 좌평 임자의 말을 듣고 부여흥수의 전략을 버렸다.

김유신과 계백 장군의 대결

7월 9일에 신라대장 김유신, 김품일 등이 5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현을 지나 황등야군(논산과 연산 사이)에 이르니, 의자왕이 장군 부여계백을 보내어 신라 군사들을 막으라고 하였다.

“아아, 탄현의 천험 요새를 지키지 않고 5천의 군사로써 그 10배의 적을 막으라 하니, 나의 운명을 내가 알겠다. 남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내 손에 죽어라.” 탄현을 넘어온 신라의 대군을 보고 백제의 국운이 다 했음을 직감한 계백 장군은 출진에 앞서 직접 가족의 목숨을 끊었다. 

계백의 5천 군사와 대결한 김유신 등이 네 번 쳐들어 왔다가 네 번 패하여 사상자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김유신이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고, 당군과 10일에 만나기로 한 약속에 맞춰 가기에 급하여, 품일과 흠순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 이기지 못하면 약속에 맞춰 갈 수 없으니, 만약 당나라 군사가 이긴다면 비록 남의 힘으로 복수는 하였다고 할지라도, 전쟁 후에 신라가 당의 모멸을 견디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화랑 관창과 반굴의 용맹

흠춘과 품일이 말했다.  “오늘 10배나 되는 군사로써 백제를 이기지 못한다면 신라인들은 다시는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먼저 나의 자제를 죽여서 남의 자제들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도록 격려하여 혈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겠다.” 흠춘은 자기 아들 반굴을 부르고, 품일은 자기 아들 관창을 불러서 말했다. “위기를 당하여 목숨을 바쳐야 충과 효를 다했다고 할 것이다. 충효를 다하고 공명을 세우는 것이 오늘의 일이 아니냐?”

반굴이 곧 자기 무리들과 함께 백제의 진영을 좌충우돌하여 다 전사했다. 관창은 그때 겨우 16세로 화랑 중에서도 가장 어렸는데, 반굴의 뒤를 이어 말 타고 창만 하나 들고 백제의 진영으로 곧바로 쳐들어가 여러 명을 베고 사로잡혔다. 계백 장군이 나이 어린 관창의 용맹을 가상히 여겨 살려 보냈다.

관창이 살아 돌아온 것을 부끄러워하며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백제 진영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계백이 이를 쳐서 목을 벤 후 그 머리를 말 꼬리에 달아 보냈다. 품일이 이를 보고 “내 아들 얼굴이 마치 산 사람 같으니,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부르짖으니, 신라의 모든 병사들이 다 감격하여 용기백배 하였다.

김유신이 다시 총공격을 명하여 수만 명이 일제히 돌진하니 계백이 직접 북을 치며 맞붙어 양국 병사가 육박전을 벌였다. 계백과 백제 병사들이 비록 용감했으나 숫자가 너무 달려 모두 전사하니 신라의 병사들은 개가를 부르며 백제 왕도로 향해 갔다. 

당나라 수군의 상륙을 방치한 백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백강 입구의 기벌포에 도착하여 몇 리나 뻗은 바다 갯펄에서 행군을 할 수 없어서 초목을 베어다가 바닥에 깔고 간신히 들어오는데, 백제왕은 임자의 말과 같이 항아리 속에서 자라를 잡으려고 그곳을 지키지 않았고, 수군은 백강(지금의 백마강)을 지키고, 육군은 그 언덕 위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당나라 군사들이 이미 개펄을 지난 후에는 후퇴를 할 수는 없고 전진만 할 뿐이므로 용기가 배나 올라 백제의 수군을 깨뜨리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의직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격전을 벌이다가 죽으니, 의직은 비록 지략은 계백만 못하였으나 용감하기로는 서로 비슷하여 일시에 당나라 군사들의 간담이 떨어지게 하였기 때문에, 신라 사람들은 의직이 죽은 곳을 <조룡대>라고 불렀다. 용감한 백제 병사들이 전장에서 모두 스러지니 백제 역사도 종말에 이르렀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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