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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태평양주보 14호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⑪
박용운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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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31  10: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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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태평양주보 13호 (8월 25일 게재)에 실은 태평양주보 1931년 1월 3일자(13호) 「리박사에게 질문」이라는 글에 대해 이승만은 직접 대답하지 않고, ‘석산’이라는 필명을 가진 이승만 측의 인사가 대신 답변하는 기사(「리박사에 질문이란 글을 대답」, 이하 「대답」)가 태평양주보 14호(1931.1.10.일자)에 실려 있다.

석산이라는 필명 소유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그가 김현구의 질문에 대해 이승만을 대변하여 답하는 태도 등에서 매우 열렬한 이승만 지지자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앞 기사(이하 「질문」)에 대한 「대답」의 내용을 일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질문」 당신이 (임시정부) 대통령입니까? 「대답」 이것은 구태여 리박사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조선 아이 삼척동자에게 물어보시오. (다만) 물을 때 「아이야 지금 한 분이 조선의 독립을 돌리고 각국이 승인을 하겠다하니 너의 나라에 대통령이 있느냐」라고 물으시오. 그러면 아이가 서슴없이 대답할 것이오, (이승만이라고).

2. 「질문」 대통령이라면 한성정부 계통을 주장하십니까? 「대답」 이것도 리박사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국민보 사장 겸 주필인 즉 교민단 총단장 손덕인씨(에게 물을 것이)라. 총단장의 책임으로 어찌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한성정부 계통을 주장하고 아니하는 것을 알지 못하리요. 그런즉 질문서를 먼저 보인 총단장에게 물으시오.

   
▲ 태평양주보 14호에 실린 「리박사에 질문이란 글을 대답」(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4. 「질문」 위원부장이시면 어느 때 누가 무슨 수속으로 내었습니까? 「대답」 이것은 매우 알기 쉽습니다. 이상에도 말씀하였거니와 국민보 재무 겸 발송인 김현구씨는 내편으로 사장 겸 주필을 대신하였으니 질문서를 타인보다 선견인 것은 사실이라. 김씨인즉 구미위원부에 4년 동안이나 시무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동서양 학문이 구비한 문사요,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민중화를 주창하시는 지사이라. 그런즉 그대의 생각에는 문사요 지사이신 김씨가 어느 때에 누가 무슨 수속으로 내인 것도 알지 못하고 자소한 월급에 구복(口腹)이나 채우라고 위원부에 시무하신 줄 아시나요? 아니올시다. 김씨는 국가를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만약 누가 무순 수속으로 내인 것을 알지 못하고 또한 내인 것이 법리에 위반이요, 사리에 불합하면 결단코 비루한 돈에나 혹하여 시무하실 인물이 아니니 김현구씨에게 물으시오. (이하 생략)”

글은 위에서 본 것처럼 지난 기사(「질문」)의 작성자인 김현구와 교민단 총단장 손덕인을 비꼬면서 싸잡아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 글을 통해 교민단을 둘러싼 이승만파(동지회)와 반대파의 교민단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권력 암투가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교민단의 1931년도 의사회가 1월 12일 총회관에서 열렸는데, 의사회 참석 자격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과는 동지회측 지방 대표의사원들이 총회관을 점령하고, 동지회측 인사들을 임시의장 및 총무로 선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이른바 ‘교민총단관 점령사건’). 마치 1915년에 있었던 ‘국민회 분열사태’와 흡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승만파에 의해 촉발된 폭력적인 사태는 급기야 법정 분쟁으로 이어졌다. 1931년 4월 16일 순회재판소(고등법원)가 1930년에 선출된 교민단 임원이 정식 임원이라고 판결을 내림으로써 교민단 총회관 점령사건은 반이승만 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교민단은 1933년 1월 16일에 개최된 대의회에서 2월 1일부터 다시 그 이름을 ‘국민회’로 복구하기로 결정하고 이승만과의 관계를 끊었다. 이렇게 해서 1915년부터 19년 동안 지속해온 이승만과 그 측근의 하와이 국민회 지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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