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문틴루파 형무소에서 들려온 슬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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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문틴루파 형무소에서 들려온 슬픈 소식
  • 장익진
  • 승인 200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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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세요 함 영감님“

우리는 이 분을 늘 함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나이가 칠순이 넘은 분이라 이름을 다 부르기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거기에 8여년 동안이나 갇혀 살고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다만 연로한 분이라 만일의 사태를 생각해서 가족 상황에 대해 몇 마디를 물었을 뿐, 고향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옛날 베트남에서 돈을 많이 벌어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과 아들이 괜찮은 직장을 잡고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얼마 전에는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가 보기도 했다. 한국의 가족에게 알리도록 영사관에 이 일을 알렸고, 영사관은 출소 수속과 신병인도를 위해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가족들이 생전의 신병인도를 난감해 하므로 이 일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그만 이 분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말았다.
지난 수년 동안 만 날 때마다 쏟아내는 한과 분노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 등 그 분의 많은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데 졸지에 그 분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지난 번 방문 때에 본 그 분의 건강은 이렇게 쉽게 가실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이미 고인이 되어 다행이도 한국의 가족들이 와서 유골을 수습해 가게 되었다니 안심이 되지만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씁쓰레하다.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시며 고국의 아내와 자식들을 용서한다며 기도하셨는데 한 번이라도 더 뵐걸 하는 회한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그 분이 살아 계신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더 잘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다만 위로와 복음에 대한 내세의 소망 그리고 기도, 이 일 외에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병원도 마땅치 않고, 따뜻하게 맞이할 공간도 없으니 우리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영사관의 도움으로 한국의 가족의 품에 안기길 바랬을 뿐이다. 이게 솔직한 우리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생전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국 타향 한 감옥의 구석진 곳에서 일생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누가 이 죽음에 가타부타 할 자격이 있겠냐마는 다만 이 분의 최후를 통해 많은 교훈을 우리는 배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나의 무덤의 묘비는 다른 사람이 새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전에 인생의 계급을 부지런히 올려야 한다. 군대에서 제대하면 계급이 더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의 죽음은 인생의 계급장이다. 따라서 성실과 정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잘 죽는다.
이런 교훈과 안타까운 그 분의 인생의 사연을 아픔으로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겨 놓고 그 분은 감옥의 담장을 넘어 영원한 하늘 나라 가족을 향해 훨훨 떠났다.
우리는 함 영감님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며, 생전에 더욱 잘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그를 필리핀의 어둑한 감옥의 방 한 칸에서 훤히 열린 영원한 세계로 전송하고자 한다.
'함 영감님 부디 잘 가십시오! 가시는 그 곳은 싸움도 없고, 속이고 빼앗는 쟁탈전이 없으며, 병들어 고생하는 고통도 없는 곳일 겁니다.
그 곳에서 편하게 쉬세요. 우리는 여기서 함 영감님 같은 분이 또 있다면 더 사랑하고 더 잘 돌보아 드릴 수 있는 한인사회를 만들어 놓고 님의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함영감님 가시는 길에 조의를 표합니다.

코리아 포스트 필리핀 장익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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