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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백제를 무너뜨린 김유신의 음모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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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7  14: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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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삼국시대 후기,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인물이라 하고, 부여성충을 백제의 대표인물이라 한다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인물이라 할 수 있다.

김유신의 족보

김유신은 <신가야> 국왕 구해의 증손으로, 다섯 가야국들이 신라와 혈전을 벌이다가 거의 다 망했으나, <신가야>는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나라를 양도했으므로 신라처럼 골품을 다투는 나라였지만 김구해에게 감사하여 그에게 식읍을 주고 준귀족으로 대우해 주었다.

김구해의 아들 김무력은 일찍이 신라군의 장수가 되어 ‘구천’싸움에서 백제 성왕을 쳐 죽인 전공이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귀골들은, 김무력이 외래의 김씨라고 하여, ‘박석김’ 삼성의 김씨와 차별하고 삼성들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무력의 아들 김서현이 일찍이 놀러 나갔다가 삼성 김씨인 숙흘종의 딸 만명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을 금치 못하여 추파로 뜻을 통하고 야합하여 유신을 배었다.

숙흘종이 이를 알고 크게 노하여 만명을 가두어 놓았는데, 만명이 도망가서 금물내(지금의 진천)에 사는 김서현의 집으로 찾아가서 부부의 예를 올리고 유신을 낳았다. 그러나 김서현이 일찍 죽었으므로 모친 만명이 유신을 길렀다.

김유신의 음모 - 부여성충을 몰락시켜라

이때에 백제는 성충, 윤충, 계백, 의직 등 어진 재상과 명장들이 숲처럼 많이 있었고, 병사들은 잘 훈련된 백전의 용사들이어서 도저히 신라의 적수가 아니었으니, 김유신이 백제를 상대로 몇 차례 작은 승리는 했겠으나 혁혁한 큰 승리는 거두기 어려웠다.

혁혁한 전공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김유신은 유명한 인물이 되었나? 김유신은 지략과 용기가 있는 명장이 아니라 음험하고 무서운 정치가였으며, 평생의 큰 공은 전쟁터에 있지 않고 음모로 적국을 혼란에 빠뜨린 데에 있었던 사람이다.

당시  김춘추가 연개소문을 설득해서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이 성취될 즈음에, 신라를 제끼고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으로 반전시킨 백제 부여성충의 외교전략은 신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장애물이 됐다. 신라로서는 도저히 꺾을 수 없는 강력한 백제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모략을 쓰는 김유신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의자왕의 총신, 좌평 임자를 회유하라

신라 부산현(지금의 송도 부근)의 현령 조미곤이 백제에 포로로 잡혀가서 백제 좌평 ‘임자’의 집 종이 되어 충성스럽고 부지런히 임자를 섬겨 출입의 자유를 얻기에 이르렀다.

조미곤이 이에 가만히 도망을 쳐서 신라로 돌아와 백제의 국내 정황을 보고하니, 김유신이 말했다. “임자는 백제왕이 총애하는 대신이라 하니, 나의 뜻을 그에게 전하여 신라가 그를 이용할 수 있게만 한다면 그대의 공이 누구보다 클 것이다.”

“생사를 돌보지 않고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김유신의 밀명을 받고 조미곤이 백제 임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휴가 중에 백제 여러 곳을 구경하고 돌아왔노라 보고하니, 임자가 곧이듣고 의심하지 않았다. 이에 조미곤이 자신을 얻고 임자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지난번에 사실은 고향 생각이 나서 신라에 갔다 왔습니다. 신라에 가서 김유신을 만나보았더니, 그가 말하기를, ‘백제와 신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전쟁이 그치지 않는데,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임자와 김유신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은 현재의 부귀를 잃고 남의 포로가 될 것이다. 원컨대 우리 두 사람이 미리 서로 약속하여, 신라가 망하거든 김유신이 공을 의지하여 백제에서 다시 벼슬하고, 백제가 망하거든 공이 김유신을 의지하여 신라에서 다시 벼슬을 하기로 하자. 그리하면 양국 중 어느 나라가 망하든 간에 우리 두 사람은 여전히 부귀를 유지할 것이 아니냐.’라고 김유신이 말하더이다.”

임자와 금화가 참소하여 성충을 축출하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나자 임자가 조미곤을 불러서 전에 한 말을 다시 묻기에, 조미곤이 다시 김유신의 말을 되풀이하고, 또 말하였다. 그 말을 확인한 임자는 원래 부귀에 얼이 빠진 천한 사내인지라, 이 말을 달게 여기고 조미곤을 신라에 보내어 김유신의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유신은 조미곤을 시켜 더욱 임자를 충동했다.

“백제에는 성충이 왕의 총애를 받아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다 시행되고 공은 겨우 그 밑에서 여유롭게 놀고 있다고 하는데, 이래서야 어찌 치욕이 아닌가.” 하면서 온갖 수단 방법으로 임자를 꼬여서 부여성충을 참소케 했다.

더하여 무녀 금화를 임자에게 천거하고 백제 왕궁에 들여보냈다. 의자왕의 총애를 차지한 무녀 금화는 신령님의 말씀을 전한다며 ‘충신 형제가 죽어야 백제의 국운이 영원하다’고 하여, 부여성충과 윤충 이하 유능한 신하들을 의자왕의 명령으로 살해 혹은 축출하게 했다. 김유신의 음모가 이윽고 백제로써 백제를 망하게 함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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