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성공 스토리 (상)
상태바
[경제칼럼]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성공 스토리 (상)
  • 이동호 명예기자
  • 승인 2017.08.14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기업 ‘엔비디아(NVIDIA)

▲ 이동호 명예기자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기업 ‘엔비디아(NVIDIA)’.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전 세계 GPU 시장의 70~80%를 점한 글로벌 기업으로서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잘 나가는 기업 중 하나이다. 최근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영역을 확대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 - 병렬 GPU 관련 핵심 기술 보유

이 회사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54)은 금년 1월에 열린 ‘CES 2017’의 기조 연설자로 나서 2020년까지 아우디와 함께 완전자율주행차를 선보이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인공지능 개발 및 상용화에 속도를 붙인 인물로 반도체 제조사 LSI 로직과 AMD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관련 개발자를 역임한 그는 이미지 인식 등 딥러닝 기술 기반 기업들의 GPU 수요가 급증하면서 몸값이 치솟고 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을 위한 ‘병렬 GPU 관련 핵심 기술 (CUDA)’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인공지능 열풍과 맞물려 엔비디아의 주식은 5년 전과 비교해 9배 이상 상승했고, 이 덕분에 엔비디아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젠슨 황은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의 1인으로 선정됐다. 엔비디아의 강점은 확장성에 있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젠슨 황 은 학창시절 때나 회사를 경영하면서나 전력투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과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젠슨 황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만 이민자 출신 미국인의 꿈

젠슨 황은 대만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이다. 1963년 화학 응용 공학자였던 아버지와 영어를 가르쳤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만 타이베이 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젠슨 황은 10세가 되던 해에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대만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민 초기 시절 동양인이라는 인종차별 속에서 악바리처럼 학업에 매진해 오레곤 주립대를 거쳐 스탠포드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았다.

젠슨 황은 배움의 시절에 한 가지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사무용 기계로만 사용되는 PC가 언젠가는 게임, 동영상 등 모든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 있는 기기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젠슨 황은 이렇게 새롭게 열릴 시장을 주도하길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세계 최초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 전문업체 엔비디아(NVIDIA)다.

1993년, 작은 아파트에서 엔디비아 설립

1993년, 젠슨 황은 마이크로시스템에서 그래픽 칩셋을 설계하던 엔지니어인 커티스 프리엠, 전자 기술 전문가였던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손을 잡고 엔디비아를 설립한다. 그들의 시작은 고작 침대 2개만 있는 아파트였다. 여느 벤처들과 비슷한 시작이었다. 엔비디아는 설립 후 4년 동안 수익을 내지 못해 투자금이 거의 거덜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능성과 비전을 본 세쿼이야 캐피털 등 벤처투자사들은 엔디비아에 약 2,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셋은 이 투자를 바탕으로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사실 처음 젠슨 황과 엔디비아는 CPU를 만들고 싶어 했다. 멀티미디어 처리에 특화된 CPU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요즈음 개념으로 따지자면 바로 APU(CPU+GPU)다. 현재 시중의 CPU 대부분이 APU 형태로 만들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20년 이상 시대를 앞선 그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CPU 도전 포기, GPU 주력

하지만 젠슨 황의 이러한 꿈은 그때의 엔디비아에게는 무리였다. 당시 CPU 시장은 인텔 천하였다. 인텔이 모든 CPU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X86 시스템(386,486,펜티엄 등)을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결국 젠슨 황과 엔디비아는 CPU 개발의 꿈을 접고 자신들의 장기인 GPU 시장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엔디비아는 1995년 9월 ‘NV1’이라는 GPU를 세상에 선보인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 갔다. 3차원(3D)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2차원(2D)과 3D, 음성까지 모든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한 장의 카드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지만, 가격이 비쌌고 독자 기술을 고집하다 보니 호환성 면에서 뒤쳐졌다. 당연히 시장과 게임 개발사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실패의 쓴잔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NV1과 ,NV2 연이어 실패

NV1의 실패는 엔비디아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 게임 개발사 세가는 엔비디아의 기술을 높이 샀다. 세가 경영진은 차세대 게임기용 그래픽 칩셋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에게 수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엔비디아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NV1의 후속인 NV2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발의 어려움과 독자 규격이 향후 판매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내부적으로 판단돼 NV2는 빛을 보지 못하고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고 만다.

다시 어려움에 봉착한 엔디비아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NV3 개발을 시도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젠슨 황은 컴퓨터 공학 박사인 데이비드 커크를 엔비디아 수석 과학자로 영입했다.(하편에 계속)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