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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왕젠린 회장의 선제적 독점 전략아시아 최고 부자 - 다롄 완다그룹 창업자 왕젠린 회장
이동호 명예기자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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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4  09: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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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호 명예기자

중국 최고 부자 - 완다그룹 왕젠린

중국의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알리바바의 마윈? 틀렸다. 왕젠린(王建林·63),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로 알려진 다롄 완다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왕젠린은 금년 4월 기준 314억달러(35조6264억원·포브스) 자산을 일궈냈다. 중국 수도 베이징 중심가에 엄청난 넓이와 높이로 우뚝 서 있는 완다스퀘어의 주인답게 그의 부(富)도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18위 규모다. 웬만한 중국의 어느 도시에도 그 도시의 중심부에 완다광장이 존재한다. 그의 성공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가했던 홍군의 아들로 태어나 당연히 군인이 됐다. 1970년 16세 소년병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뒤 16년간 군생활을 하다가 전역한 그는 1년 남짓한 공무원 생활을 접고 기업가로 변신했다. 1988년 자본금 50만위안(8,200만원)으로 설립된 완다는 현재 최고 규모의 민간기업으로 성장했다.

부동산 사업, 첫번째 혁신 - 큰 거실있는 아파트

당시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급변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보고 부동산 개발에서 기회를 찾았다. 집값이 비싸지 않았던 시절이라 주택사업은 모험이었지만 경제발전과 도시화가 가속화하면 주택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그는 확신했다. 국영기업이 모두 꺼리던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때 완다는 아무도 하지 않던 혁신을 시도했다. 주택을 당시 평균보다 훨씬 큰 평수로 설계했고, 거실이라는 개념이 없던 중국에 창이 큰 쾌적한 거실 공간을 만들었다. 이 예상은 맞아 떨어져 왕 회장은 다롄시의 낙후한 구도심의 주택 재개발에 뛰어들어 대박을 냈다. 성공 요인에는 신개념 주택을 선보인 것도 있었지만 리스크가 큰 사업이라 경쟁자가 없었던 독점 시장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부동산 사업, 두번째 혁신 - 대규모 복합쇼핑몰

1990년 후반 주택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바뀌자 그는 완다플라자 같은 대규모 복합 쇼핑몰 등 상업용 부동산 개발에 눈을 돌렸다. 복합 상업공간이 생겨나기 전, 계약이 복잡하고 임대료가 연체될 위험이 높은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진 부호는 많지 않았다. 이것 역시 독점 전략에 따른 것으로 새로운 영역이라는 점에서 위험은 있었으나 한 발 앞서 진출해 시장을 독식하며 곧 수 년 사이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남들이 꺼리는 시장에 길이 있다. 성공의 열쇠는 경쟁이 아니라 독점에 있다” 왕 회장이 강조하는 말이다. 즉 모두가 알고 있는 사업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전략으로 성공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부동산 재벌 왕젠린이 모습이 갖춰지는 시기였다.

중국에서 기회는 여전히 '도시화 & 산업화' 

왕젠린은 여전히 중국에서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2014년에 “앞으로 중국은 15~20년간 최소한 6% 이상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중국의 도시화율이 51%에 불과하며, 중국의 전략계획에 따라 매년 1,000만~1,300만명이 도시로 유입되고 있다고 전망하면서 중국은 현재 산업화의 중반에 놓여 있다는 판단 하에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2015년 당시 왕젠린의 사업은 두 가지 측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힘써온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중국의 ‘아마존’이 되겠다는 ‘전자상거래’라는 새 영역에 도전했다. 그때로부터 2년 가량의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 두 시도의 ‘성패’는 뚜렷이 갈리고 있다.

새 영역 도전 - 해외 영화산업 돌풍

문화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세계 영화산업에서 돌풍을 일으킨 인물을 꼽으라면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번에는 북유럽을 겨냥했다. 완다그룹 산하 미국 영화관 기업 AMC가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을 보유한 노르딕시네마를 9억3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지난 1월 밝힌 것이다.

지난해 유럽 최대 영화관 체인인 오데온앤드유시아이를 사들였으니 유럽 전체 영화시장 석권은 시간문제가 됐다. 북미시장에서도 2012년 AMC를 매입했고 작년에는 AMC의 경쟁사인 카마이크까지 품은터라 노르딕시네마 인수가 끝나면 왕 회장이 이끄는 완다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1,500개에 육박하는 상영관과 15,000개의 스크린을 보유하며, 박스오피스 점유율도 2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월에는 영화제작사인 레젠더리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고, 유서 깊은 제작사 파라마운트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이는 영화산업의 제작과 배급, 상영관까지 장악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왕젠린은 이를 통해 헐리우드의 가장 왕성한 포식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왕젠린의 일관된 경영철학 '선제적 독점전략'

왕 회장은 금년 1월 개최된 다보스 포럼에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분야에 매년 50억~1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완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또한 왕젠린은 부동산사업과 문화사업이 결합된 형태의 초대형 테마파크인 ‘완다시티’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문화·관광·비즈니스 복합 프로젝트를 진행해 가겠다는 3세대 부동산 개발 형태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꿈을 이뤄줄 것으로 기대됐던 울리 슈틸리케 축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최근에 경질됐다. 경질 이유는 한국 팀에는 전술과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한국이 대전하는 월드컵 예선 경기를 보면서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13척의 배로 일본 군함 130척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명랑해전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신출귀몰의 전술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었다. 더 나아가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완전무결한 전쟁승리는 완벽한 전술 전략에서 나왔다. 왕젠린이 왕성하게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배경에는 1988년 완다를 창업할 때부터 견지했던 경영철학 독점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머뭇거리고 나서지를 않을 때 먼저 나서서 시장을 만들어 가며 진출해 독식하는 독점 전략이 빛을 발했다.

전자상거래 투자에서 왕젠린의 패착

그러나 이러한 경영철학에도 왕첸린 회장은 패착을 두게 된다. 2014년 완다는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독주에 대항하기 위해 바이두, 텐센트와 함께 새로운 플랫폼 ‘페이판 왕’을 설립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출발했던 ‘페이판 왕’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면서 텐센트와 바이두가 투자 철회 의사를 밝히고 발을 뺐다.

‘페이판 왕’은 “경쟁이 아니라 독점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왕젠린 회장의 경영철학과도 상치되는 모순을 드러내고 알리바바의 독주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자기 경영철학을 벗어날 때는 가차 없이 벌을 내린다는 교훈을 왕젠린의 ‘페이판 왕’ 전자상거래 사업 실패에서 새겨봐야 한다. 그리고 일관성 있는 전술 전략이 없는 도전은 실패만 있을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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