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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을지문덕과 살수 전쟁패강 전쟁에 이어, 살수 전쟁과 오열홀 전쟁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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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9  1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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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기원 612년 수 양제의 1차 침공은 수군 10만명의 평양 기습공격으로 시작됐다. 바로  '패강 전쟁'이다. 정보를 입수하고 은밀히 대응전략을 세워 기다리던 수군사령관 고건무 휘하의 고구려 수군이 패강(대동강)에서 군량을 가득 실은 래호아의 수나라 수군과 모든 병선을 섬멸했다. 패강 전쟁에서의 승전으로 고구려는 수나라 침공의 예봉을 꺾었다. 

수나라 육군을 평양으로 유인

한편 육군사령관 을지문덕은 요하에서 군사를 뒤로 물린 후, 수나라 육군의 허실을 탐지하려고 ‘항사자(항복을 청하러 가는 사자)’로 위장하고 찾아가 적진을 살피고 돌아왔다. 우문술은 뒤늦게 그를 생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다시 만나자고 요청했다. 을지문덕은 이때 이미 대동강 싸움에서의 승전보를 들었고 우문술 휘하 수군에 굶은 기색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이미 필승할 것임을 알고 묵살했다.

을지문덕은 수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적의 요새를 만나면 맞붙어 싸우다가 일부러 패하여 달아나곤 했다. 이렇게 해서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패하니 적장 우문술은 크게 기뻐하면서 쉬지 않고 공격해서 살수(청천강)를 건너 평양에 이르렀다.

우문술이 평양에 이르러보니 성 밖이 고요해서 의심스러워 진격하지 못하고 성문을 두드리니, 성 안에서 대답하기를, “우리는 곧 항복하려고 한다. 그래서 토지와 인구 관련 문서와 장부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니, 큰 나라 군사는 성 밖에서 5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우문술은 래호아의 수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평양성을 합공하고자, 성 안으로부터의 거짓 대답을 받아들이고 성 부근에다 진을 치고 머물렀다.
 

평양성 전투와 살수 대첩

5일이 지나고 10여 일이 지나도 성 안에 아무런 동정이 없으므로 우문술이 군사를 지휘해 직접 공격했더니, 성 위에 고구려의 기치가 한꺼번에 사방으로 세워지면서 화살과 돌멩이가 비 오듯 쏟아졌다.

을지문덕이 통역병에게 크게 외치게 했다. “너희 군량선이 모두 바다에 잠겨 먹을 양식의 보급이 끊어졌고, 평양성은 높고 튼튼하여 뛰어넘을 수가 없으니, 이제 너희들은 어찌 하려느냐?” 수나라 군사들이 그제야 래호아의 수군이 패한 줄 알고 마음이 흔들려서 싸울 수 없게 되자 우문술은 전군의 후퇴를 명했다.

을지문덕은 미리 사람을 보내어 모래주머니로 살수의 상류를 막아 놓고 정예병 수만 명을 뽑아 천천히 한가롭게 수나라 군사들의 뒤를 쫓았다. 살수에 이르러 물의 깊고 얕음을 알지 못하여 머뭇머뭇 하였는데, 갑자기 고구려의 승려 7인이 다리를 걷고 강물 속으로 들어서며 “물이 오금에도 차지 않는군.”하였다.

이를 본 수나라 군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다투어 물에 뛰어들었다. 수나라 군사들이 미처 강 중간에도 못 미쳤을 때 상류의 모래주머니를 터놓아 물이 거세게 밀려 내려오게 하고, 을지문덕의 군사들은 갑자기 수군의 배후를 습격하니 수나라 군사들은 칼과 화살에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었다.

남은 자들은 하루 밤낮으로 450리를 달려 압록강을 건너 도망하여 요동성에 이르러 보니, 살아서 돌아온 자는 우문술 등 9개 군의 30만 5천 명 중에 겨우 2천7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요동의 결전 - 오열홀 대첩

수 양제의 어영군과 기타 10여 군의 수십만 명의 수나라 병사들이 오열홀(요동성)과 요동 각지의 성들을 쳤으나 하나도 함락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3월부터 7월까지 무려 4~5개월 동안 고구려인의 화살과 돌에 맞아 죽어서 성 아래의 해골들이 산을 이룰 정도였고, 또 양식을 얻지 못하여 장수와 병졸들은 모두 굶주리고 지쳐 있었다.

그러나 수 양제는 오히려 최후의 요행수를 바라고 모든 군사를 오열홀성 밑으로 집결시켰는데 을지문덕이 기습 총공격으로 대파하였다. 이때 인마의 참살과 무기와 군수물자의 노획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수의 24개 군 수백만 명이 전멸당하고 호분랑장(황제 경호부대의 장수) 위문승이 거느리고 있던 군사 수천 명이 남아 있다가 양제를 호위하여 도주하였다.

요하를 건너 수 백리를 지나면 ‘발착수(渤錯水)’가 있는데, 요동에서 유명한 길이가 2백리나 되는 진수렁으로 일명 ‘요택’이라고도 한다. 후일 당 태종의 조서에 “요택매골(遼澤埋骨)” (요택에다 전사자들의 뼈를 묻었다)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수나라 군사들이 이 곳에서 많이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살수 전쟁과 수나라의 멸망

살수전쟁이란 말하자면 패강(대동강)‧살수(청천강)‧오열홀(요동성)에서의 세 대전을 포함한 것인데, 첫째 공로는 패강에서의 싸움이고, 둘째 공로는 살수에서의 싸움이며, 그 끝맺음을 한 것이 오열홀에서의 싸움으로서, 이 셋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살수전쟁이라 부르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지만, 이미 오랜 동안 계속해서 써 온 명사이므로 그대로 쓰기로 한다.

수나라가 113만 명의 병사를 요동 벌판에 묻은 후에도,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 정월에 수 양제는 패배를 설욕하고자 전국의 군사를 모아 고구려를 2차 침공했으나 빈손으로 도망하고, 다시 3차 침공마저도 실패하고 돌아가, 부하 장수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에게 죽임을 당하고 수나라는 멸망한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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