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89년만에 열린 '조명하 의사 학술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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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89년만에 열린 '조명하 의사 학술좌담회'
  • 편집국
  • 승인 2017.05.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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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한 게 죄인가요? 이제 한이 풀렸으면..."

▲ 개막식 후 기념 촬영. 뒷줄 우측에서 네번째 양창수 대표, 세번째 조의사 장손자 조경환 선생 그리고 한국과 대만측 발표자와 토론자들

일제 강점기 어느 독립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고 단독으로 거사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조명하 의사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 일본의 거물을 제거하거나 척살한 4의사로 불린다.

1928년 5월14일 오전 9시50분 24살의 조명하는 지금의 타이중시 중구 자유로 2단2호(합작금고) 앞 커브길에서 당시 무개차를 타고 타이중 기차역으로 향하던 일본의 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며 육군대장인 구니노미아 구니히코(久邇宮邦彥)를 기다렸다가 척살하고 같은 해 10월 10일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순국한 민족 영웅이다.

구니노미아는 조명하 의사가 던진 독검에 목덜미와 어깨를 스치는 찰과상을 입었지만 독이 온 몸에 퍼져 계속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거사 8개월이 지나, 1929년 1월 사망했다.
 
조명하(1905-1928)의사. 지난 5월 6일부터 14일까지 대만에서 거행된 조명하 의사 관련 일련의 행사에 주목하며 이 행사들의 중심에 있었던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양학부 중문영역 김상호 교수로부터 관련소식을 전달받았다.

5월 6일 대만대학교 문과대 국제강연실에서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대표 양창수), 대만대학 역사학과와 대만문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조명하 연구 좌담회’를 개최했다. 조명하의사 기념사업회(회장 남기형)와 타이베이 한인회(회장 임병옥)의 후원이 있었다.

이날 개막식에서 양창수 대표는 “오늘 한국과 대만의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명하 의사와 조 의사의 의거를 재조명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며, 나아가 오늘 좌담회가 한국과 대만간 학술, 문화 분야에서의 교류 방안에 대해서도 의논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발언한 대만대 문과대 천뤄쉐이(陳弱水) 학장은 “최초로 대만과 한국의 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조명하 의사를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개막식에 특별 발언을 위해 멀리 호주에서 참석한 조명하 의사의 장손인 조경환 선생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죄를 진 것도 아닌데 그동안 우리 유족들은 영혼이 맑지 않은 일부 공무원과 일부 사람들의 눈치를 봐왔으며 특히 나의 아버지 조혁래(92세)옹은 평생을 乙로 살아왔다. 심지어 친일파의 자손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탓에 판검사나 국회의원도 되었지만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건물 관리인이나 청소부 등 사회의 약자층으로 살고 있다는 말이 있다. 오늘 이 자리는 거사 후 89년만에 이뤄진 정말이지 뜻깊은 자리다. 오늘의 자리가 있기까지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와 오로지 집념 하나로 추진해온 김상호 교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제1세션은 ‘조명하 의거의 국제적 의미’란 소주제로 김상호 교수의 사회로 대만사범대 대만사대학원 쉬페이센(許佩賢) 교수가 ‘1920년대 대만 사회와 교육 현황 -- 조명하의 대만 경험은 무엇인가?’라는 논제로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한국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오대록 연구원과 원광대학 김영신 교수 그리고 대만대학 역사과 천췌이렌(陳翠蓮) 교수가 나섰다.

제2세션도 김상호 교수의 사회로 “조명하 의사 역사 유적의 한국 대만의 협력 모색”이란 소주제에 맞춰 한국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주용 선임연구원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대만중앙연구원 대만사연구소 장롱즈(張隆志) 교수와 대만대학 대만문학대학원 황메이어(黃美娥) 교수, 그리고 김상호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좌담회 1, 2세션 사회를 맡았던 김교수는 “대만 학자들이 조명하 의사에 대해 거의 연구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특별히 새로운 주장이 나오진 않았지만 한국과 대만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와 같은 좌담회를 개최한 것만으로도 대만학계에 조의사를 알리는 아주 의미있는 학술회의였다. 이는 대만내에서 항일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함과 동시에 조명하 의사라는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대화와 경험을 교환하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거사 9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정식으로 조명하 국제학술회의가 성사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조명하 의사 연구좌담회 장면

이날 좌담회 중간에 조명하 의사 기념사업회 조영환 사무국장은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한국국회방송에서 제작한 조명하 영상 자료를 참석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행사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이번 좌담회 총괄준비를 위해 무대 뒤에서 조용히 진두지휘한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박기준 부대표의 안배 하에 조의사 사적지를 탐방했다.

타이베이 고등법원, 구 타이베이 형무소 자리를 김주용 박사의 유니크한 해설로 들었는데 이에 감동한 대만중앙연구원의 장롱즈 교수와 대만대학 황메이어 교수는 자신들이 타이베이시 문헌위원회 위원이기에 다음 회의가 있을 때 구 타이베이 형무소 자리에 조명하 의사 해설판 설치 건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조명하 의사 동상이 있는 타이베이 한국학교에 가서는 박경진 교장의 안내로 순국선열 조의사에 대한 묵념을 마치고 학교 시설을 둘러봤다.

5월 7일 조의사 장손인 조경환 선생과 기념사업회 조영환 사무국장, 타이베이 한국학교 박경진 교장은 김상호 교수와 함께 조의사 거사 현장인 타이중으로 이동해 조의사 사적지인 부귀원과 거사 현장, 타이중 경찰서, 구 타이중 형무소 자리를 돌아봤다.

당일 저녁엔 타이중시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며 거사 현장에 조명하 의거 해설판 설치 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하였다. 타이중시정부에서는 빠르면 올해 내로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시정부 예산을 들여 해설판을 설치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타이중 거사현장에서 오른쪽부터 김교수, 조경환 장손자, 조영환 사무국장, 박경진 교장, 김건수 타이중 한인회장
 
거사 89주년인 5월 14일, 타이베이 한국학교와 타이중 거사 현장에서 동시에 기념식을 거행했다.
 
박경진 교장의 조명하 의사 소개와 동상 앞에서의 묵념 등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조명하 의사를 기리는 계기를 마련한 것과 동시에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시간이 됐다. 

▲ 타이베이 한국학교 의거 89주년 기념식 장면

89년전 순국하신 조의사의 대만 타이중의거는 말그대로 성공한 의거였다.

여기서 조의사의 24년 짧은 생애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오로지 조국의 광복만을 생각하며 거사를 결심했기에 갓 태어난 아들도 보지않고 떠난 조명하 의사. “나는 평생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유독자 조혁래 옹.

독립운동 한 게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젠 그만 나라에서 그 후손들이나 선양사업을 도와야 할 때다. 그동안 중국으로 편중됐던 보훈사업도 이제는 대만 등 다른 지역으로도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1988년 서울대공원에 세워진 조의사 동상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대한의 젊은이여 조국을 굳게 지켜라/ 조국을 잃으면 자유와 정의 평화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나라 없는 백성은 오직 노예와 굴욕과 방황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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