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optotronics 매니저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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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optotronics 매니저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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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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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만에 캐나다 의료장비업체 메니저로 정착

제이슨의 이민 성공기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문은 활짝 열립니다"

김진수 1970년생. 연세대학교 의용공학과 졸업.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대학원 석사. 인하대 부속병원 근무. 1999년 미국 시카고에 의료장비 연수교육 차 방문했다가 이민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함. 더 큰 대륙에서 일하겠다는 열망으로 2001년 10월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결행. 2002년 5월 레이저장비업체 Northern optotronics에 입사, 서부지역 매니저로 일하고 있음. 현재 다섯살 난 딸과 캐나다에서 만든(?) 한살바기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밴쿠버 코퀴틀람에 정착, 오손도손 살고 있음.



그해 가을, 대륙에 첫발을 딛다.

2001년 10월 20일, 두살 난 딸아이를 들쳐업고 아내와 함께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돈 없이 젊음과 용기만 두 손에 쥐고 대륙 정벌에 나섰던 것. 한 달 후 바로 일식집 헬퍼(시간당 6불)로 일을 시작했다. 차없이 다니다 보니 너무 힘들어 2주만에 그만두고 다시 캐네디언 자동차부품회사에 취직했다. 인터뷰는 물론 6장에 걸친 산수와 영어시험을 치루고 다음해 1월부터 이 회사의 어셈블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8시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이었다. 결국 두 달만에 그만두고 다시 샌드위치숍에 취직했다. 주중엔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말엔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ESL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손에서 놓지않았다. 밤이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이력서를 보냈다. 하루에 10통 이상의 이력서를 보냈으니 줄잡아 500통의 이력서를 보낸 것 같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곳이 캐나다의용공학협회(Canada Biomedical Engineering Society). 주소를 적어들고 직접 찾아나섰다. 이력서, 업무설명서, 자격증, 성적증명서, 상장, 교수님과 상사의 추천서, 해외연수 수료증, 심지어 인하대병원에서 일하던 모습의 사진들까지 편집된 자신의 파일을 잊지 않고 챙겨들었다.

아동병원(Hospital For Sick Children ) 안에 있는 협회의 부회장을 만나서 파일을 보여주며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원에는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바로 옆병원인 여성병원(Woman’s College Hospital)에 가보라고 했다. 그 병원의 의용공학과(Biomedical Part)의 매니저가 자신의 아들이라며 손수 전화를 걸어주었다. 당장 그 병원에 찾아가 매니저를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나니 다시 연락을 주겠다 했다. 2주 후 실무자와의 면접일정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면접에선 실무적인 것을 많이 불어봤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떨어졌구나’ 싶어 다니던 공장이나 열심히 다녀야겠다 했다. 그래도 연락을 기다렸건만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공장이 쉬는 날 다시 그 병원에 찾아갔다. 실무자를 만나 ‘왜 연락이 없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매니저의 결정이라 자신은 모르겠다’고 했다. 두번이나 찾아가 무턱대고 사무실에 앉아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았다. 영어가 서툰 사람도 있었고 업무도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자원봉사과(‘Volunteer Part)에서 전화가 갈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다시 전화가 왔고 그는 담당자와 1시간 이상의 긴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끝낸 뒤 담당자가 말했다.

“See you next week.”

Northern optotronics와의 만남

확답을 듣고 공장을 그만두었다. 병원에서 자원 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렸다. 하지만 병원 메니저들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영어가 잘 안되는 그에게 취업의 문턱은 높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한 달만에 직원 교육 차 방문한 지금 회사의 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김진수가 짦은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하자 드물게도 직접 명함을 건네주었다. 교육이 끝나고난 뒤 사장에게 E-Mail을 보냈다. ‘교육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꼭 함께 일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과 이력서를 첨부파일로 보냈다. 며칠 후 ‘인터뷰를 하자’는 전화가 왔다. 꼼꼼히 준비한 파일을 가지고 인터뷰에 응했지만 부족한 영어 때문인지 사장의 표정은 그리 탐탁치 않았다. 월급을 다 주고 쓰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신규이민자 채용시의 보조(HRDC)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조건은 21세 이하에만 해당되었다. 사장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외쳤다.

“일을 시켜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장은 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늘부터 당장 일을 시작하세요.”

그리곤 레이져 장비를 가르키며 해체할 것을 지시했다. 그 다음 날은 다시 하루종일 조립하기… 그렇게 두주 동안이나 장비들을 해체하고 조립하기를 반복했다. 영어가 잘 안되는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사장한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자신이 한 일을 보고서로 만들어 사장의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것이 인상 깊었는지 사장은 그를 직접 데리고 다니며 교육을 시켰다. 하다못해 식당에서의 에티켓이나 자기 소개에 이르기까지생활 예절까지 가르쳐주었다.

“제이슨, 기분 나쁘게 듣지말게. 자네가 김치를 먹은 날엔 마늘 냄새가 나. 그건 영업에 지장을 주니 주말에만 김치를 먹는 게 어때?”
그는 김진수에게 세세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 보스턴에서의 해외 연수

사장의 신임을 받아 김진수는 가족과 함께 보스턴으로 2주간의 해외연수의 행운을 잡기도 했다. 미국 내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 밀도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선생한테 알리기 위해 질문을 많이했다. 교육 후에는 테스트가 있었다. 첫번째 시험은 잘 치뤘지만 두번째 시험이 문제였다. 3-4개의 문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들 나가고 오후 6시가 지나도록 끝까지 남아 문제와 씨름했다. 금요일 오후 어서 퇴근하고 싶은 시험관은 다가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김진수는 모르는 문제 3-4개를 손가락으로 짚자, 시험관은 슬며시 힌트를 주었다. 김진수의 버티기 한판승이었다.

“남들은 시험 일찍 끝내고 다 나오는데 아내만 혼자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어요. 오전 11시에 체크아웃해서 7시까지 기다렸으니까요.”

80점 미만이면 시험에서 탈락하고 수료증을 못 받으면 회사에서 해고 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오기로 버티어 간신히 80점에 턱걸이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는 캐나다 각지로 출장을 다녔다. 달랑 병원 주소만 하나 가지고 혼자서 캐나다 도처로 돌아다니는 일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병원의 레이저 장비들을 체크하고 수리하는 것이 바로 그의 임무였다. 밴쿠버, 켈거리 지역으로 출장을 자주왔다.

서부 지역 매니저로 발령받다
서부지역을 맡아 가족과 함께 밴쿠버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사장의 제안에 OK, 김진수 가족은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사를 오게 된다. 시간당 6달러였던 급여도 6개월마다 올라 연봉 5만불 이상이 되었다. 그의 능력이 업계에 알려지자 경쟁회사로부터 연봉 6만5천달러에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경쟁사는 업계의 1위 기업. 그는 당연히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회사로부터 바로 토론토행 비행기표가 날아왔다. 사장은 그를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다, 원하는게 뭐냐.’
“한국인 정서상 저를 키워준 회사를 돈 몇 푼 때문에 저버릴 수가 없더라구요. 동종업계 1위의 기업이라 욕심이 나긴 했는데…결국 연봉 6만불 선에서 타협을 했습니다.”
그에게 밴쿠버는 야속하기만 했다. 이사 오던 첫날 차도둑한테 털려 이사짐과 분류해 따로 차로 실어오던 온갖 귀중품을 모두 잃어버린 것. 2만5천불짜리 공구함(Tool Case), 랩탑컴퓨터, 보석은 물론 여권, 영주권, 아기 출생증명서에 이르기까지 온갖 귀중품을 다 잃어버렸다. 또 한 번은 교통사고로 톡특히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그때마다 회사에서 모두 처리해주었어요. 큰 사고만 쳐서 해고당하는 줄 알았어요.”
이제 그의 꿈은 경영자로의 비상. 이를 위해 오는 학기부터는 SFU의 야간 MBA 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회사에서 중추역할을 하는 경영자가 되어 제 능력을 한번 더 검증 받고 싶습니다.”
그의 당찬 또다른 포부다.

이명우 기자 / mwlee@coreamedia.com




김진수가 권하는 성공적인 취업전략 4가지

1. 무조건 직접 가라. 팩스, E-Mail만 믿지말라. 프린트한 이력서를 직접 들고 찾아가라. 가서 보면 영어 못하는사람들도 일 잘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회사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다. 담당자 얼굴도 한번 보고 자신의 적극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가되 월, 금요일을 되도록 피한다. 월요일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쌓여 있는 경우가 많고 금요일은 주말이라 빨리 일을 끝내고 가려고들 한다. 화, 수, 목 오전 중에 찾아가라.

2. 자원봉사자로 시작해라. 누가 영어도 안되는 사람을 5-6만불이나 주고 쓰겠는가. 이력서 돌리며 자원봉사자(Volunteer)로 시작해라. 공짜로 일하기도 쉽지 않다. 자원봉사자(Volunteer)로 열심히 일하다보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3. 자기 경력 파일을 만들어라. 영어가 잘 안 되므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리기가 힘들다. 자신을 제대로 알리는 파일을 만들어 직접 보여주면서 자신을 알려라.

4. 뭘 하든 그날 자신이 한 일을 보고서로 만들어라.자원봉사를 하든 적은 봉급의 일을 하든 그날 자신이 일한 것을 매일 보고서로 만들어 올려라. 이민자는 영어가 잘 안된다. 매니저나 슈퍼바이저한테 말이 잘 안통하므로 자신이 한 일을 알릴 수가 없다. 자신이 일한 것을 요약해 일일보고서를 만들어 부서장에게 올려라. 100% 감동할 것을 확신한다. 그렇게 매일 보고서를 쓰다보면 영어 실력도 는다.


2004-07-09 22: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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