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10시간 동안 치료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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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10시간 동안 치료받지 못했다”
  • 코리아미디어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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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 관광버스 사고 피해자, 도움 외면한 영사관 강력 비난

 

캘거리 관광버스 사고 피해자, 도움 외면한 영사관 강력 비난
총영사관 현장조사·보호조치 전무 … 파악한 내용도 사실과 달라


밴쿠버 총영사관이 7월1일 캘거리에서 일어난 한국인 단체관광객 교통사고에 대해 현장수습은커녕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아 ‘직무유기’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 국민이 여행중 관할지역에서 대형사고를 당했는데도 직원 한 명 현장에 내보내지 않고 전화로 여행사쪽의 허위보고만 받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들은 한국 영사관에 연락해줄 것을 여려 차례 요청했으나 묵살된 채 큰 고통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는 특히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재외공관의 자국민 보호 문제가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는 가운데 터져 영사관의 안이한 근무자세와 무능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됐다.


◇ 사고경위 = 캐나다 데이 휴일인 7월1일 오후 2시께 캘거리 시내 남서쪽 6-7번가 교차지점 건널목에서 한국인 관광객 19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경전철(Light Rail Transit) 열차와 충돌했다. 관광객은 부산지역의 노·장년층으로 2박3일간의 밴쿠버 관광을 마치고 캘거리에 도착해 인근 서라벌 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는 길이었다.
열차와 부딪힌 버스는 전면 유리창이 부서지는 등 크게 찌그러졌으나 다행히 전복되지 않아 더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사고 직후 캘거리 의료당국은 대형 재난사고 경보인 ‘레벨 2’를 발령했고 버스에 탔던 전원이 4개 병원으로 분산 후송됐다.


◇ 피해상황 = 송지문(70)씨 등 4명이 갈비뼈와 손목이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었다. 중상자들은 풋힐 (Foot Hills) 병원에 후송됐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이날 자정까지 10시간 동안 아무 치료도 받지 못했다. 송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캐나다에서 동물 취급을 받았다. 신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밤 12시까지 있었다. 피가 나고 뼈가 부러진 환자들이 응급처지라도 받기를 원했지만 언어소통이 안 되는 우리를 아무도 치료해 주지 않았다.”
이날 자정이 넘어 병원쪽이 겨우 미국의 한인동포 통역사를 찾아와 전화로 통역을 해가며 부상이 심한 환자 순으로 엑스레이 촬영과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병원쪽은 3일 새벽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요구했고 환자들은 “피해자인 우리가 치료비를 낼 수 없다”고 항의했다. 이후 캘거리 현지 관광가이드인 안옥일씨가 병원에 찾아와 병원비를 지불하고 환자들을 데리고 나왔다. 안씨는 중상자 4명과 다치지 않은 가족 등 8명을 차에 태우고 밴프 인근 캔모어 숙소로 갔다.
손가락 5개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이상부씨의 남편 장성천(70)씨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도 너무했다. 아파서 정신없는 환자를 무리하게 캔모어까지 데리고 가는 걸 보니 너무나 한심하고 화가 났다. 영사관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현지에 영사관이 없다면서 막무가내였다.
송씨는 “현지 신문과 방송에서 큰 사건으로 보도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누구도 우리를 성의껏 도와주지 않았다”며 “이역땅에서 불의의 사고로 다친 우리를 대한민국 영사관도, 한국사람 누구도 찾아와 도와주질 않아 참담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언어소통의 도움과 간단한 위로전화라도 있었다면 지금처럼 캐나다에 대한 기억이 분노로만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상자인 이광자씨는 “2일 오전 캔무어 숙소로 찾아온 보험회사 직원이 보상을 받으려면 국제변호사를 개인적으로 선임해 법적 절차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해 더욱 난감했다”고 말했다.
캔모어 숙소에 모인 일행은 이상부씨 등 중상자와 가족 8명은 한국으로 돌아 가고 나머지 11명은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사람들은 3일 캘거리 공항 근처에서 1박을 한 뒤 밴쿠버와 오사카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갈비뼈 4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홍옥자씨는 병세가 악화돼 남편 오원수씨와 함께 남아 3일 새벽 록키뷰 병원에 입원했다. 한국으로 돌아간 이상부씨 등 6명은 오사카-한국 항공편을 자비로 부담해 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급귀국한 이상부씨 비롯 3명은 부산 영도 해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다. 장성천씨는 “몸이 좀 나아지면 외교통상부를 찾아가 해외여행중인 국민 보호를 외면한 재외공관의 문제를 따지겠다”고 말했다.


◇ 총영사관의 대처 = 총영사관은 하루 뒤인 2일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사고발생을 알았다. 이 사고는 전국지인 <글로브 앤 메일>과 지역신문 <캘거리 선>등에 크게 보도됐다.
밴쿠버 총영사관의 한성진 영사는“2일자 신문기사와 토론토 한인방송인 <얼TV>의 확인전화를 통해 사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캘거리 RCMP에서도 총영사관에 사고소식을 알려줬다. 총영사관은 그러나 직원을 파견하거나 병원·경찰 등에 전화를 걸어 직접 상황파악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황영만 캘거리 한인회장에게 전화를 해 사고상황과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영사는 이에 대해 “캘거리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예산도 부족하고 해서 직접 현장에 가는 대신 캘거리 한인회장에게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 회장은 “잘 수습됐다”는 여행사쪽에 말만 듣고 병원 등 현장에 나가보지 않았다. 황 회장은 “영사관의 연락을 받고 환자를 찾아가려 했는데 현지여행사인 로얄관광 대표가 환자들이 치료를 잘 받았고 보상문제도 잘 처리됐으며 한국행 여객기 1등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해 영사관에 그대로 전해주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밴쿠버 총영사관은 취재에 나선 한인언론 등에 “사고가 잘 수습돼 한국으로 귀국한 환자를 제외한 11명이 일정대로 여행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의 확인 결과 피해자들은 사고처리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으로 후송된 환자들은 한국말 통역자와 영사관 연락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여행사측에 묵살당했다. 영사관이 사고발생 사실을 안 뒤에도 고령의 피해자들은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 채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송지문씨는“누구 한 사람 나타나지 않고 10여시간 동안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은 8명의 환자와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여행사쪽의 말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부상이 심해 위급한 상태였던 홍옥자씨와 남편 오원수씨, 한국에서 온 관광가이드 강정옥씨는 다시 병원에 입원해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은 6일 퇴원해 8일 현재 호텔에서 휴양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재외국민 보호 위한 제도적 장치 시급"

◇ 동포사회 반응 = 한인사회에선 이번 사고가 큰 인명손실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나 총영사관의‘부실대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영철 한인청소년센터 대표는 “유학생과 방문자 등 사고가 있을 때마다 적절한 대우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왔다”며 “ 이제는 외교정책적인 차원에서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고도 개인 차원의 관광이지만 현지 언론에서 크게 보도된 사건이고 중상자가 발생한 사태이므로 영사관에서 현장에 가서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형필 부총영사는 “영사관은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통역업무를 지원하는 것이 주업무가 아니다”며 “이번 사고는 현지 여행사와 한국과 다른 캐나다 의료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위급한 상황에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영사관을 찾게 되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공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 며 “본국에서 오는 손님접대는 잘 하는 영사관이 출장비가 없어 현장에 나가지 못했다는 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종기 밴쿠버 총영사는 “이번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봤지만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유학생과 여행자 등 재외국민에게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영주 기자 / yj@coreamedia.com

2004-07-10 01: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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