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참여'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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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참여'공간을
  • 한국일보
  • 승인 2003.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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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마리 로랑생(1883~1956)은 일찍이 “버려진 여자, 떠도는 여자, 죽은 여자들 보다도 ‘잊혀진 여자’가 가장 불쌍하다”고 노래했다.

우리 재외동포가 그런 ‘잊혀진 여자’인양 느껴진다. 참여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막을 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청사진 가운데 재외동포 정책에 관한 특별한 내용이 없다.

재외동포는 대부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에 거주하고, 자산 1억달러 이상의 기업인들이 속출하는 등 탄탄한 재력과 기반을 축적해 가고 있다.

새정부 정책 '배려' 안 보여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는 최근 ‘재외 한국 동포와 세계 경제’라는 학술회의 연구보고서에서 총 1,0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되는 600만 해외 동포의 자본이 한국경제와 미, 일 등 동포주재국, 나아가 세계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면서 장래 활용가치가 더욱 높다고 지적했다. 재외동포의 규모는 현재로도 우리 인구의 8분의1, 우리 국민 총소득의 5분의1이 넘는다.

버그스텐 IIE연구소장은 “앞으로 남북통일은 불가피하며 향후 20~30년 내 한국 경제가 일본을 능가할 것”이라며 한국은 이를 위해 막대한 재외동포들의 역량을 결집해 동북아 및 동아시아 지역경제 협력체제 구축에 힘쓸 것을 조언했다.

중국의 고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ㆍ 개방 이후 파탄 직전의 중국 시장을 외국자본들이 외면할 때 5,500만 화교와 6,000억 달러로 평가되는 화교자본을 유치했고,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는 세계 화상(華商)네트워크를 조직ㆍ 활용했다. 이는 오늘날 양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필자가 중국 근무 시 화교정책에 감탄하고 우리정부의 교포정책을 개탄했던 점이다.

우리 동포들도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의 신발산업, 대구의 섬유산업, 새마을 공장사업 등 모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동포정책 부재로 대부분 실패해 모국과 등을 돌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동포 기업인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 첨단기술과 함께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노조파업 등으로 인해 3년 만에 손을 들고 돌아간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모국 생각에 재투자를 하고 있으나 각종 규제 및 세금으로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한다. 이들이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우리나라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지난해 한상(韓商) 네트워크를 창설해 재외동포의 역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상 비즈니스 센터와 사무국도 곧 설치된다. 10월에는 서울에서 수천명의 동포기업인들이 한데 모이는 제 2차 한상대회와 세계 한상 박람회도 개최된다.

600만의 경제력 활용해야

70년대 파산 직전의 중국경제를 화교가 앞장서서 일구었고, 90년대 파산한 멕시코 경제를 멕시코출신 미국이민자들이 나서서 일으켰다. 또한 2,000만명의 인도출신 각국 이민자들이 매년 150억 달러를 본국에 송금하는 디아스포라(이산ㆍ 이민)의 시대를 맞아 우리 재외 동포들은 먼 바다로 나간 성숙한 연어처럼 이제 황금의 알을 품고 산란을 위해 본능적으로 다시 모천(母川)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주체에 국민뿐만 아니라 600만 재외동포들도 포함되고, 동북아 중심국가를 건설할 자원은 국내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동포의 인적 물적자원을 이용해야 한다.”세계도처에서 모인 가장 성공한 기업가들이 금년 1월 중순 미국의 팜 스프링스에서 ‘세계한상’ 제 2차 CEO 포럼을 개최하여 하루종일 벌인 열띤 논쟁의 한 토막이다. 이들은 평생 번돈을 75%의 상속세 등으로 현지에 다 바치기 전에 어지간하면 본국에 투자하고 싶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노 당선자에게 드리는 간곡한 건의와 함께 동북아 중심국 건설 결의문을 채택했다.

‘잊혀진 여인’들은 그래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
20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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