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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찬란한 봄에 움트는 지성의 씨앗4월 23일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이정선(도쿄대 대학원 문화자원학 전공)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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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9  10: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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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선 씨(일본『言の葉大賞』코토노하대상 수필대회 최우수상 수상자 / 도쿄대학교대학원 문화자원학 전공)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세계인의 독서 증진을 위해 1995년에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해마다 4월이 되면 전 세계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기원국인 스페인을 비롯해 80여 개 국가에서 책의 날을 기념하는 축제를 진행하며, 국내에서도 출판사와 도서관 등을 중심으로 책 보내기 캠페인, 수필 및 편지쓰기 등 관련 행사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본 기념일을 전후하여 독서와 글쓰기 등을 진흥하는 토대가 형성된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필자는 최근 일본에서 개최된 일본어 수필 경연대회에서 우리나라의 낙지볶음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외국어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최대의 난제는 일본어의 문법적 표현 그 자체보다도, 현지에서는 생소한 ‘낙지볶음’이라는 음식이 표상하는 감각과 체험의 기억을 과연 2차원적 활자로 어떻게 심사위원들에게 심어줄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결론적으로 낯선 타국의 음식이, 글자를 매개로 하여 인류의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음을 새삼 체감한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결코 많은 책을 읽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적은 분량의 책을 읽더라도 소가 천천히 되새김질을 하듯 한 글자 한 글자를 저작(咀嚼)하고 전체적인 의미를 음미하며 읽으려 노력했다. 지금도 선명히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방과 후 소년소녀 세계동화전집 50권의 번호와 제목을 외울 정도로 되풀이해서 읽던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일까. 수필 제목이기도 한 ‘낙지를 곱씹듯이’를 관통하는 발상 역시 필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소녀 시절부터 마치 질긴 낙지를 입 안에서 꼭꼭 씹어 삼키듯이, 활자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의미를 머리와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동안, 보석 같은 책들은 내 안에 사유의 나무를 깊이 뿌리내리고 상상력의 싹을 틔운 것이다.

최근 문학 한류가 새로운 화두로 부각되며 우리 문학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해외에 알리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홍보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학에 담긴 우리말과 한글의 소중함을 우리 국민이 스스로 발견하고 인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문화의 척도인 글과 말의 정신을 올바로 구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비옥한 토양 위에 국민들의 문화 리터러시(literacy: 읽고 이해하는 능력)의 배양과 더불어, 일회적이 아닌 독서 생활화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풍요로운 문화융성이 꽃피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 도서관 주간 및 책의 날을 맞이하여 재외공관과 문화원의 주관 하에 아름다운 한글을 한 땀 한 땀 ‘수놓듯’ 손으로 직접 써 보는 문학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또한 국내 문학을 재외동포들에게 소개하고, 이들이 해외에서 한류 전파의 가교 역할을 하도록 장려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 리터러시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전제 하에 비단 문학에 한정하지 않고 평생 교육의 차원에서 제반 정책과 연계하여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싱그러운 새싹이 움트는 봄날, 나를 성장시킬 귀중한 씨앗을 찾아 가까운 도서관 혹은 서점으로 발걸음을 향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무르익은 사유의 결정체들이 살아 숨 쉬는 보물창고에서 우리에게 걸 맞는 지성의 보석을 발견한다는 것은 커다란 희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가만히 귀 기울여 보고 있노라면, 그 중 다정히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벗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권이라도 우리의 내면에 귀중한 싹을 틔우고, 생각의 나무를 굳건히 뿌리내릴 ‘내 생애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문화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나 역시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생명의 소멸과 소생이 교차하는 이 계절, 내 안에서 울창한 나무로 자라날 씨앗을 찾아 설렘 가득히 도서관으로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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