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 독립유공자 고 호근덕 선생 건국포장 전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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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 독립유공자 고 호근덕 선생 건국포장 전수식
  • 서정필 기자
  • 승인 2017.04.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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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수여 결정 후 6년만에...생전 임시정부에 자금지원

▲ 쿠바한인 故 호근덕 선생 건국포장 전수식 (사진 김재기 교수)
쿠바 한인 고 호근덕(1889~1975) 선생 건국포장 전수식이 4월11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렸다. 선생에 대한 건국포장 수여가 결정되어 발표된 것은 지난 2011년이었지만 그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전수가 이뤄지지 못하다가 가족과 연락이 닿아 6년만에 전수식이 열린 것이다.

호근덕 선생은 188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05년 멕시코 메리다 애네캔 농장으로 노동이민 갔다가 1921년 다시 쿠바 마탄자스로 재이주한 한인 디아스포라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쿠바 한인 애국지사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 온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김재기 교수(광주학생독립운동연구회장)가 뉴욕에 연구년 교수로 체류하던 2016년 5월과 7월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운동 참가자들을 찾기 위해 쿠바를 방문하여 면담하는 과정에서 호 선생 후손을 만났고 그 덕분에 이번 전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번 쿠바 한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 전수는 두 번째로 작년 12월 20일에 이승준 선생의 후손들에게 첫 번째로 전수된 바 있다

▲ 쿠바한인 故 호근덕 선생 가족 (사진 김재기 교수)

고 호근덕 선생은 1911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멕시코 타바스코 지방회 회원, 1917년 멕시코 메리다 지방회원을 거쳐 1921년 쿠바 마탄사스 지방회 구제원, 재무, 1924년 칼데나 지방회 법무, 1925년 지방회 서기, 학무, 인구세 수봉위원, 1926년 부회장, 인구세 수봉위원 등으로 일했다.  1927년부터 마탄사스 지방회 회원과 1928년 지방회 구제원, 1930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대회 및 후원금, 1932년 학무, 재무, 1933년 민성국어학교 서기, 재무, 1934년 평의원, 재정조사위원, 민성국어학교 교장, 간사를 역임했다.

1936년 다시 민성국어학교 서기, 재무를 맡고, 1937년 학교 교장이 되었다가, 1941년 재무, 1942년 특연금 수전위원으로 두루 활동하면서 1945년까지 독립금 114원 86전(현재 가치 약 3천만원)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최근 한국보훈학회 논문집에 발표된 김재기 교수의 ‘쿠바한인디아스포라의 독립운동 재조명과 정부의 서훈문제’는 연구에 의하면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21 분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서훈이 발표되었으나 세 분(임천택, 이승준, 호근덕)만이 후손들에게 전수되었다고 조사됐다.

쿠바 한인 21명에 대한 자료는 국가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에 서훈자 14,651명 중 미전수자 5479명을 국가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것이다. 아직도 쿠바 한인 18분의 후손들이 누구인지 몰라 귀중한 서훈 전수가 안 되고 있다고 논문은 밝혔다.

최근 김재기 교수는 김세원 선생(2011년 건국포장)에 대한 후손을 찾는 과정에서 이재희(건국포장)와 이승택(대통령표창)이 사위 인 것을 밝혀냈고 또한 이재희 선생의 부친이 이세창(건국포장)인 것을 알아 내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여 한 가족 4명의 서훈이 전수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뿐만 아니라 광주학생독립운동에도 적극 후원하신 분들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제 국가보훈처 등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후손들을 찾아내 서훈을 전달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 이라며 “한인 후손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쿠바인으로 살아가는 1000여명의 쿠바 한인 후손들과 다양한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할 필요가 있고 미국과 쿠바 수교가 이뤄진 만큼 이제 한국과 쿠바의 수교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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