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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경영] 공공개념 부재로 피곤한 한국인"한국인의 품격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신성대 동문선 대표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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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2  1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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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성대 동문선 대표

사소함이 노출하는 공공개념 부재

한국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인지 아닌지는 에스컬레이터 타는 걸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 그는 분명 이제 막 입국한 사람이다. ‘이상한 나라 꼬레아’ 체험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한민국 디스카운트는 이런 시시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현재와 같은 형태의 에스컬레이터가 처음 등장을 하였고, 우리나라에는 1941년 서울 종로의 화신백화점에 최초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1979년 12월 17일 소공동 롯데백화점이 오픈 했을 적에는 시민들이 아이쇼핑 겸 에스컬레이터 타기 위해 몰려갔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에스컬레이터는 백화점이나 공항과 같은 특정한 건물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에스컬레이터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가까이 온 것은 지하철 역사에서였다. 1982년 12월 최초로 2호선 역삼역에 설치된 이래 지금은 거의 모든 역사에 에스컬레이터가 보급되었으며,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거의가 폭이 좁은 1인용 한 줄짜리 에스컬레이터였다. 백화점에선 에스컬레이터걸들이 지키고 서서 한 계단 걸러 한 명씩 타도록 안내하며, 위험하니 절대 걷지 말고 난간을 꼭 잡고 서서 가라고 주의를 주었었다. 그럼에도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넘어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었다.

한 줄이냐 두 줄이냐?

논란은 지하철에 본격적으로 2인용 두 줄짜리가 보급되면서부터 생겨났다. 출퇴근에 쫓기는 젊은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면서부터 두 줄짜리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을 비집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정주의 편의주의적인 인심 좋은 한국인들은 “그럴 수도 있지!” 라며 급한 사람들이 걸어가도록 아예 한 쪽 줄을 비워주었다. 양보는 미덕! 내친 김에 2002년부터는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운동까지 벌였다.  

그러자 사고율도 높아가고 서서 가는 사람들의 불편과 피해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참다못해 2007년부터 서울 지하철을 중심으로 두 줄 서기 캠페인이 진행됐었다. 하지만 이미 습관화된 한 줄 서기가 쉽사리 고쳐질 리 만무, 결국 논란만 일으키다가 2015년 두 줄 서기 운동이 폐지되고 말았다.

현재는 방임상태. 걸어가야겠으니 비켜달라는 사람과 두 줄을 고집하는 이용객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시시비비까지 벌이고 있다. 국민안전처와 승강기안전관리원에서는 시민들의 눈치만 보며 ‘걷거나 뛰지 말고 서서 이용합시다’라는 권고만 되뇌이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방끈이 긴 민족이 이 따위 시시한 일 하나도 결말 못 내고 있으니, 아무튼 참 피곤한 민족이다. 중국에서도 멋도 모르고 한국을 따라하다가 지금 한국처럼 한 줄서기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한다.

신사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든 엘리베이터든 만든 목적이 있을 것이다. 공장용이 아닌 다음에야 작업의 능률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닐 터. 백화점이나 공항에서 먼저 도입한 건 상류층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다. 당연히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이기의 사용법은 당연히 ‘매너’란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에스컬레이터 줄서기 논란에서는 바로 이 ‘매너’란 잣대가 빠져있다. 고객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면 당연히 이용자들도 그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그러니까 논쟁의 원 핵심 주제가 ‘제3의 불특정 상대방(들)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든 자신의 사소한(때로는 중대하다 할지라도) 이익을 위해 다른 불특정인들을 불편(때로는 위험)하게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에스컬레이터 승객들을 밀치고 추격전을 벌여야 할 만큼 공공의 이익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사진 지하철공사 제공)

사소한 묵인이 적폐가 되고, 폭발한다

한 줄 서기 때문에 동행인이 나란히 서질 못하고 아래 위에 따로 서야 한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특히 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이라면 당연히 부모의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 추월하려는 사람 때문에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무거운 가방을 옮기거나 선 위치를 바꾸는 건 위험천만이다. 이런 빨리빨리 습관이 무리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거나 다이빙 승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다음, 다음 전철…의 수많은 시민들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불이익)를 보거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이런 사소한 정도의 묵인이 쌓이면 적폐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우연한 시기에 태양계 행성처럼 직렬로 연결될 때는 그 각 요소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고로 증폭될 수 있다. 대부분의 대형 사고가 그렇듯 <세월호> 침몰도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무리한 구조 변경, 과적, 항로 변경, 당직자의 미숙, 심한 조류, 선장의 부도덕, 미숙한 대처… 등등. 하필 그날, 그때, 그 배, 그 학생들, 그리고 이상한 신앙을 가진 선원들, … 그 원인들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정상작동하거나, 그 여럿의 우연 아닌 우연 중 단 하나만이라도 어긋났더라면 그날도 다른 날들처럼 무사하게 그냥 지나갔을 것을!

‘빨리빨리’는 하인문화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사소한 방임이나 방기, 혹은 이기심이 불특정 개인 혹은 다수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시킬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 존중심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지 못하면 이런 한 맺히는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가서 줄일 만큼의 시간(그래본들 수십 초, 수 분)이 모자라 지각하거나 이번 전차를 놓칠 것 같으면 그냥 지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고작 그 정도의 시시한 이익을 위해 불특정 다수인을 밀쳐 한쪽으로 몰아 서게 하는 것이나, 콜콜한 인정사정으로 안전을 양보하는 것이나 모두 정상적인 시민정신이 못된다. 한국인들의 디테일하지 못한 이런 대충대충 습관은 언제든 또 <세월호>같은 사건을 불러올 수 있다. 그리하여 그 모든 참사에는 꼭 인재(人災)라는 한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다.

뉴욕 등 외국 대도시 공원에는 경보나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다. 그런 곳을 산책할 때에는 사뭇 한국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좁고 외진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끼리는 눈방긋 미소를 살짝 교환하는가 하면, 조깅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다른 사람을 추월할 때에는 영화에서처럼 살짝 돌아보면서 계면쩍은 미소나 제스처를 던지고 간다. 마치 추월하게 되어 미안해죽겠다는 듯이! 반대로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추월할 때면 오히려 고개를 더 빳빳이 세우고 속도를 높여 ‘쌩!’하니 지나간다.

각자의 디테일이 품격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건, 전철 안에서건, 계단에서건 남을 추월해서 지나가는 건 무례를 넘어 사고를 유발할 위험한 행동이자 타인에 대한 공격적 행위이다. 에스컬레이터는 계단이 아니다. 한 줄이든 두 줄이든 서서 이용하는 것이 맞다. 아무렴 이 나라에서 시시비비가 딱히 결론 나던 적이 있던가? 심지어 시민들을 상대로 선호도 조사까지 벌리기도 했다. 그게 선호도(습관)으로 판단할 일이던가?

공공의 규칙은 정해진 대로, 바뀌면 바뀐 대로 따르면 그만이다. 더 이상 괜한 논쟁 말고 선진국 시민들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 어차피 에스컬레이터 문화가 그 쪽이 더 오래이니 말이다. 바쁜 사람 이해해주는 것이 에티켓? 인정사정은 공(公)이 아니라 사(私)다. 양보라고 다 미덕이 아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존중’이다. 존중이 싫으면 이용하지 마라! 짐작컨대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사람은 그 근본이 천민일 가능성이 높다.

잔인한 4월, 더욱 잔인한 대선의 계절이다. 후보들마다 각기 저만이 대한민국을 바꿀, 대한민국을 구제할 적임자라고 외쳐대지만, 어차피 국민들은 같잖은 헛소리인 줄 다 안다. 매너의 ‘매’자도 아는 후보가 안 보인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미련으로 그나마 ‘덜 미운 놈 찍기’에 고민할 뿐이다. 세상을 어떤 지도자 한 명이 바꾸던 시대는 한참 지났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세상이다. 시민 스스로 사소한 것부터 고치고 다듬어나가는 ‘주인장의식’ 없이는 누구를 뽑아도 세상 안 변한다. 각자의 디테일이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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