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쿠버’가 맞나 ‘벤쿠우버’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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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쿠버’가 맞나 ‘벤쿠우버’가 맞나
  • 이영주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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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표기 기관마다 달라 혼선…심지어 ‘벤쿠버’도
정보검색 등 문제 많은데도 외래어 표기법 외면


‘Vancouver’ 도시명의 한글 표기가 기관마다 제 각각이어서 혼란이 일고 있다.
서로 다른 지명표기는 특히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한 정보시대에 중대한 장애물임에도 정부기관들의 무감각이 혼선을 방치하고 있다.
현재 언론과 기업, 개인 등이 쓰는 일반적인 표기는 ‘밴쿠버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밴쿠버 주재기관들은 이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표기법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 총영사관은 ‘벤쿠우버'를,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무역관은 ‘뱅쿠버’를 공식명칭으로 쓰고 있다.
총영사관의 공식 명칭은 ‘주 벤쿠우버 대한민국 총영사관’이다. 외교통상부 본부에서 관리하는 영사관 웹 사이트(www.mofat.go.kr)에도 ‘벤쿠우버'라고 표기돼 있다.
그런데 사이트의 각 컨텐츠에 들어가 보면 ‘밴쿠버’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등 한 사이트 안에서 두가지 표기가 혼용된다. 총영사관은 한인단체와 동포 언론사 등에 보내는 공문에서 기관명은 영어로 쓰고 본문에선 '밴쿠버’로 쓴다.
공식명칭은 ‘벤쿠우버’이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밴쿠버’로 쓰고 있는 현실에 밀려 ‘밴쿠버’란 표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총영사관 앞에 걸린 현판에는 밴쿠버란 지명은 아예 없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이라고만 돼 있다.
표정화 외교통상부 북미2과 외무관은 “현재 외교부에서 ‘Vancouver’의 공식 명칭은 ‘벤쿠우버’지만 현실을 고려해 밴쿠버나 벤쿠우버 두 가지를 다 사용해도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코트라 밴쿠버 지사의 경우 무역관이 설립된 1969년 이래 ‘뱅쿠버’를 고수하고 있다.
총영사관이 공식명칭은 ‘벤쿠우버’라도 실제로는 ‘밴쿠버’라 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코트라는 각종 공문이나 광고에서 곧이곧대로 ‘뱅쿠버무역관’을 쓰고 있다.
이민호 코트라 차장은 “본사에서 정한 대로 사용하고 것”이라며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현지 무역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벤쿠버’란 표기도 쓰인다. 한국주재 캐나다 대사관 유학 및 여행 관련 링크에 들어있는 사이트 중 여러 곳에서 ‘벤쿠버’라는 표기가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표기의 혼란은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된 요즘 시대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인터넷상에서 밴쿠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 표기로 검색해야 하는 것이다. 밴쿠버, 뱅쿠버, 벤쿠버, 밴쿠우버 등을 다 두드려봐야 한다.
외교통상부 웹 사이트를 들어가 밴쿠버 관련 정보를 찾아 보면 ‘밴쿠버’와 ‘벤쿠버’로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들 두 표기를 치면 ‘밴쿠바 뱅쿠바 뱅쿠버 벤쿠바 벤쿠버 밴쿠버’ 여러가지 표기가 나열돼 있다.
김필구 인터넷 포탈 사이트 대표는 “용어가 통일돼야 인터넷시대에 정보의 종합성과 신속성, 편리성을 얻을 수 있다”며 “밴쿠버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하나의 용어로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시대의 요청”이라고 강조했다.
한인단체와 동포사회에서 여러 표기를 놓고 “헷갈린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병윤 TV코리아 사장은 “한 도시의 지명을 3-4가지로 표기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총영사관과 한인단체들이 함께 통일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은 “1996년에 정경수라는 분이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이란 책자를 밴쿠버에서 내놓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밴쿠버’라고 칭했다’고 덧붙였다.
유양천 노인회장의 얘기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명은 영어식 원음보다 한국인이 정한 것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코퀴틀람이라는 표기는 한국사람들을 위한 외래어 표기다. 이렇게 그대로 읽으면 알아듣는 캐네디언이 없다. 영어로 말할 때는 ‘트’자를 빼고 말해야 한다. 어차피 원음과는 차이가 있는 우리식 표기일 뿐이다. 밴쿠버에 ‘우’자를 하나 더 넣으면 마치 다른 도시가 또 하나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박진희 한인회장 대행은 “’뱅쿠버’가 영어의 원음에 더 가까운 명칭이지만 공관과 단체들이 한 도시를 서로 다르게 표기하는 것은 동포들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통일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정부와 공관이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종기 밴쿠버 총영사는 “부임초에 이 문제를 이미 제기했고 지시한 적이 있다”며 “많은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획득하는 요즘 지명에 대한 통일성은 더욱 필요하고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기로 일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 총영사는 “그러나 총영사관에서 사용하는 ‘벤쿠우버’라는 명칭이 바뀌기 위해서는 재외공관직제 관련 법률이 개정되어야 수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통상부가 외국지명 표기 변경에 더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반인의 언어관행이 바뀌고 외래어 맞춤법이 바뀌어도 과거의 표기를 굳건히 지키기로 유명하다.
외교부 직제에서 오지리(오스트리아) 구주(유럽) 나성(로스앤젤리스) 상황(샌프란시스코) 같은 ‘고색창연한’ 지명이 바뀐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윤종관 외교통상부 혁신과 외무관은 밴쿠버 표기와 관련해 “시급히 직제 명칭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으나 현지 공관에서 필요성을 제안할 경우 직제 변경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재외공관 직제 법률상 벤쿠우버를 밴쿠버로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며 “직제 변경은 큰 예산이 드는 게 아니고 절차와 기간이 필요한 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코트라 한국 본사의 옥영재 기획실 부장은 “현지 무역관에서 ‘Vancouver’ 표기 변경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 수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며 “그동안 특별한 문제제기가 없었기 때문에 ‘뱅쿠버’로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Vancouver’ 한글 표기는 언제든 외래어 표기법이 정한 ‘밴쿠버’로 통일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기관들의 문제의식과 실행력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이영주 기자, yj@coreamedia.com



2004-06-11 14: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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