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특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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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특별 인터뷰
  • 오룡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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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 한인사회에 전하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
 
“생각 다르더라도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김선일씨 피살사건 안타깝기 짝이 없어
생명존중은 태아에서부터…한해 150만명 낙태 심각한 문제


“훌륭하게 가꿔온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동포사회, 캐나다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 나가기 바랍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의 ‘큰어른’ 김수환 추기경. 30년 넘게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민주화 지도자로, 시대정신의 사표로 행동하고 발언해온 그가 밴쿠버 한인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미주지역 사제서품식 참석차 미국·캐나다를 방문중인 김 추기경(사진)과 단독인터뷰 기회를 어렵사리 얻었다. 6월30일 오후 1시 성 김대건 천주교회 사제관에서 기자와 마주앉은 그는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생명존중 의식을 강조했다.
공식일정없이 휴식을 위해 밴쿠버에 들린 김 추기경은 7월3일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를 거쳐 로스앤젤리스를 방문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김선일씨 피살사건이 나라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이런 극악한 폭력과 테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미국 여행 중에 김선일씨가 납치돼 생명의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TV에서 그모습을 보고 안타까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랬듯이 생명을 구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었는데…
도중에 소식이 엇갈려 나오기도 했지요. 희망적인 전망이 보인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시간에 그 분이 이미 사망했다는 걸 알고 얼마나 허탈하던지요. 누구나 다 마찬가지 마음이었겠지요. 관계당국에서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런 상태에서 생명을 잃었다는 게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멀리서나마 유족들께 조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겠지요.”


-이번 사건도 크게 보면 생명을 경시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한국사회에 자살이 사회병리 현상으로 만연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또한 생명존중 의식이 새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명존중은 교회내 운동도 있고 사회적 운동도 있습니다. 나도 작년 12월에 대학로에서 어깨띠 메고 거리를 누비면서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하는 캠페인에 참여했어요. 그만큼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얘기예요.
성경에 보면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이뤄도 생명을 잃으면 소용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생명은 물론 육신의 목숨만이 아닌 영원한 생명, 영혼의 문제까지 포함한 것이지요. 생명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어야 해요.
생명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의식과 교육이 사회로 이어지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경제발전을 위해 산아제한을 해왔어요. 1년에 150만명의 어린 생명을 낙태로 희생시켜 왔지요.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예요. 인구비율로 따지면 미국보다 더 많은 숫자예요.
한국인의 생명경시 풍조가 여기서부터 연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생명존중은 본질적으로 태중의 생명, 태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해요.”


-방향을 좀 바꿔 한국 밖의 동포문제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신자들을 둘러보시면서 한국인의 역량과 에너지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동포사회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뉴욕, LA 같은 미주 여러 곳을 지나다 보면 ‘우리는 한인회장을 못 뽑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곤 했어요. 같은 민족 안에서 대립과 갈등이 많았다는 거지요. 우리 민족이 여러 장점이 있는 반면 부족한 점도 있어요.
남의 의견을 잘 듣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데 약한 것이지요. 시행착오일 수도 있고, 마음이 덜 열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문제는 그동안 그런 다툼을 통해 얻은 것이 없다는 데 있어요. 요즘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협력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생기고 화합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과 종교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종교는 교민사회를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형제애와 사랑으로 하나되는 신앙공동체를 이루면 남보다 앞서 희생하고 용서와 화해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지요. 신앙인이 그런 마음을 갖고 앞장서야지요.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실을,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합을,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가져오는 역할을 종교인이 우선적으로 감당해야지요. 동포사회를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로 이끌어가는 데 교회가 큰 견인차가 됐으면 합니다.
성직자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해요. 자신만의 진리와 믿음이 유일하다고 믿고 근본주의적 독선에 사로잡히면 그 진리와 믿음은 인간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맙니다. 계층과 인종과 세대를 초월해 모든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게 종교인의 역할입니다.”


-밴쿠버는 6년만에 방문하셨는데, 그동안 한인사회와 교회에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동포들에게 희망이 될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어제 저녁 신자들과 만나 얘기를 들었어요. 성 김대건 교회가 주임신부님과 신자 분들의 노력으로 6년전에 비해 신자수가 두 배 이상 늘었고 5 에이커나 되는 훌륭한 성당건물을 지은 것을 보니 기쁩니다. 학교 건축 등 미래 플랜까지 갖고 있는 희망적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동포사회 전체로 확대 발전돼 나가기를 바랍니다.
교민사회가 서로 다투는 것 같이 보이지만 크게 보면 발전해 나간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두뇌가 우수한 민족이라고 해요.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그런 연구결과가 나왔더라고. 그런데 그 우수한 두뇌가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거든. 좋은 방향으로 쓰면 오늘날 세계 무역 12위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정도로 위대한 능력이 되지요. 그러나 그것이 꾀가 되어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남을 해치는 데 쓰일 위험성도 있는 거예요.
한반도 자체가 작은 땅인데 거기서 우리는 전쟁과 분단까지 겪었어요. 많은 난민이 나오고 자원은 없는 그런 상태에서 오늘날 이런 경제·사회 발전을 이룬 것을 보면 엄청난 업적이라 아니 할 수 없지요.
우리에겐 저력이 있어요. 이런 능력을 미주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게 해야지요. 세계 각지의 동포들이 본국과 힘을 합해 경제협력을 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82세인 김 추기졍은 “어려운 여건에서 수고가 많다”며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했다. 정신과 근력은 나이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정정해 보였다.
그래도 건강이 염려돼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십니까”를 마지막 질문으로 삼았다. 그는 “이번 여행이 좀 힘들었는데 밴쿠버에 와서 피로가 다 풀렸다”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성 김대건 교회 부근 숲을 산책하면서 여독을 풀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혜화동 사제관 뒷편 산책로를 하루 다섯번 가량 오가며 1만보를 걷는 게 건강법이라고 한다.

오룡 기자 / roh@hotmail.com

2004-07-02 14: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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