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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김도라의 미국 시민권 발급 신청서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⑤
이현아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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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7  1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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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첫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한 후 1910년까지 하와이에 온 한인은 7,400여 명이었다. 이중 1,000여 명은 조국으로 되돌아갔고, 남아있는 대다수는 불안한 한국의 정세와 일제 강점 등으로 부득이 정착을 택했다. 동시에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농장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거나 본토로 이주해가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캘리포니아 주변의 농장을 중심으로 새 삶을 시작한 한인들은 1920년대를 거치면서 차츰 미국의 중·동부 지역까지 생활터전을 확대해 나갔다. 미국 본토로 이주한 한인들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하와이, 중가주에서는 노동과 농사를, L.A, 시카고, 뉴욕에서는 채소상과 식당업 등을 하면서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종차별 속에 주로 비숙련 노동자로 종사했지만, 점차 숙련 노동자와 사무직 종사자가 증가하고 직업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리하여 미국 사회 각 방면에서 다양한 직업에 따른 활동으로 미국 사회의 중요한 경제의 한 축을 이루게 됐다.

또한 한인들은 다양한 문화 활동도 펼쳐나갔다. 교회의 성가대, 바자회, 봉사회 등 종교 활동 뿐 아니라 기회가 날 때마다 모여 축제일을 경축하고 친목을 꾀하면서 연극, 무용, 민요대회 등을 개최했다.

한인 사회가 성장하면서 2세대들이 20~30대에 이르게 되자, 이들의 생활 방식은 부모 세대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민 1세대가 교회와 각종 단체를 중심으로 친목과 고국의 독립운동에 주력했다면, 2세대는 친교 모임을 통해 화합을 다지고, 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연극 활동, 음악밴드 조직, 회보 발간 등 다양한 문예 활동을 이어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점차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갔다.

한인 이민자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에 비해 하와이 땅에 늦게 발을 들여놓았지만 이들보다 먼저 한인학교를 세울 만큼 뜨거운 교육열을 자랑했다. 한인들은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한글 교육에도 힘썼다.

   
      ▲『국문과본』                                                             ▲김도라의 미국 시민권 발급 신청서, 1953년

1908년 중앙서관에서 발행한 『국문과본』은 하와이 한인학교에서 사용한 국어 교과서다. 표지에 연필로 쓴 이름인 ‘리세영’은 1905년 하와이로 간 이민자로 실제로 이 책으로 하와이에서 국어를 공부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뜨거운 교육열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한인 2세, 3세들은 사회분야 곳곳으로 진출해, 이후 미국 내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기틀을 마련했다.

첫 이민자들이 하와이로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난 1952년, 드디어 한국인이 미국 내에서 시민권을 얻고 부동산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가한 이민법이 통과됐다. 한인들은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시민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미국 시민권 발급 신청서’를 작성해 신청함으로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전시된 김도라의 미국 시민권 발급 신청서는 김도라의 아들인 재미교포 김호선이 기증한 유물이다. 이 신청서에는 생년월일, 출생지, 현 거주지, 가족관계 등이 기록돼 있다.

이민법 통과로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열린 가운데 1965년에는 새로운 이민법인 「하트-셀러법」이 발표돼 미국 이민의 길이 크게 확대됐다. 땀과 눈물로 채워진 100여 년의 이민역사를 일궈온 미주지역 한인들은 이제 미국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한 축으로서 다른 민족과의 유대를 넓히고 더 큰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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