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도 웃을 출산 장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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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도 웃을 출산 장려책
  •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승인 2017.03.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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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성에 대한 동경이 심각한 것을 연애라 하고, 연애가 심각하면 결혼을 하며 결혼의 결과는 생식(生殖)이다.” 결혼의 조건은 ‘서로 사랑’이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1930년대 교육 사상가 이만규(1889~1978)의 말이다.

혼인은 당사자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생식은 사랑의 결실이어야 한다는, 그때는 진보였을 이 말을 80여 년이 지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연애하기도 쉽지 않고 결혼은 언감생심이며 생식은 어불성설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결혼대책, 황당하고 모욕적

이런 가운데 국책 연구기관이 내놓은 ‘결혼시장 이탈계층 방지 대책’은 여론에 불을 지폈다. 정국으로 가뜩이나 우울한 젊은 여성들은 어이없고 황당하다 못해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문제가 된 대책은 대략 세 가지이다. 하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여성들을 채용할 때 스펙을 위한 휴학이나 연수, 자격증을 취득한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다. 이는 곧 불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을 막고, 취업 연령을 낮출 수 있어 자연스럽게 혼인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또 하나는 가상공간에서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도록 정보기술을 개발해 대학에 보급하는 방안을 고려해보자고 한다. 즉 배우자를 찾는데 최신 IT기술을 활용해 시간이 덜 드는 방법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배우자를 하향 선택하도록 유도하자고 한다. 즉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들과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들이 결혼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통계를 통해 이 둘을 결합시키자는 발상이다. 소도 웃을 이 ‘대책’은 21세기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을 수행한 연구라는 점에서 분노를 더 자아내고 있다.

‘가축의 짝짓기’와 유사한 취급으로 모욕을 당한 젊은이들은 정부를 향해 항변한다. “정부야 네가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라고 말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이 성차별적 보고서에서 여성의 몸은 생산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고학력‧고소득 여성에게 저출산의 문제를 전가시킨 이런 방식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관료적 사고에 내재한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 대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와 유사한 주제를 다뤘던 600년여 전으로 돌아가 보자.

15세기 조선의 결혼 권장정책

15세기 조선에서도 젊은 여성의 결혼을 강요하는 방안들이 논의되었다. 당시의 ‘결혼시장’에서 배제된 자는 ‘아버지 없이 가난한 여성’이었다. “가난하여 혼인 시기를 놓친 여자에게는 친족 및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해주고, 아무런 이유 없이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법전에 기재된 대로 그 주혼자(主婚者)를 논죄하자”(1435년)는 주장이 조정 회의에서 나왔다.

이 제안이 법령이 되어 『경국대전』에는 “사족의 딸로 나이 30에 가까웠는데 가난하여 시집가지 못한 자는 예조의 계문으로 혼수 비용을 준다”고 하고, “가난하지 않은데 나이 30이상의 딸을 시집보내지 않은 가장을 엄중하게 다룬다”고 했다. 이렇게 국가가 개별 가정의 혼인을 관리하고자 한 뜻은 “남녀가 혼인하여 함께 사는 것이 인간의 대륜(大倫)이니, 시기를 어기면 반드시 화기(和氣)를 상하게 될 것”이라는 그 시대적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생각한 혼인의 조건이 혼인식을 치룰 비용이라는 점은 오히려 애교스럽다. 원녀광부(怨女曠夫), 나이는 많지만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좋은 정치라는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는 짝만 지어주면 될 뿐 누구와 혼인할 것이며, 혼인 이후 가난한 부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알 바 아니다.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면 결혼할 것을

사실 15세기 조선 전기의 여성들에게는 혼인 외의 선택지로 승려의 삶이 있었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처녀들이 절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왕실 여성의 주요 의탁처인 정업원만 남기고 모든 여승방을 철거한다. 그리고 “양가(良家)의 처녀로서 여승이 된 자를 모두 환속시키고 성혼시켜 인륜을 바르게 하라”(1413년)고 한다. 그럼에도 혼인을 거부하고 절로 들어간 여자들에게는 날조와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실행(失行)한 처녀들과 지아비를 저버린 사납고 모진 처(妻)들이 날로 절로 모여들어 머리를 깎고 몸을 의탁하는 자가 너무 많아 그 수를 알 수가 없다”(1473년)고 했다. 승려가 된 여성들은 ‘정절을 잃은 자’ 또는 ‘사납고 모진 여자’로 명명되었다.

혼인과 생식에 관련한 여성을 인식하는 방법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른 것 같지가 않다. 도덕률로 움직인다는 조선에서도 가난한 여성은 혼인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과 혼인을 거부하는 여성마저도 억지로 혼인시키려 한 구상은 거의 비슷하다. 오늘의 젊은이들 또한 결혼을 하고 싶어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능력 있는 여성들은 결혼 후에 부과되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으로 사회적인 경력이 단절될까 봐 결혼을 기피하는 것이다. 이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결혼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주력하기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라는 요구들이 빗발친다. 사람을 ‘삶’으로 보는 게 아니라 출산율이라는 ‘숫자’로 보는 한, 젊은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세종 임금의 출산휴가 제안

세종은 출산한 관비에게 7일의 휴가를 주는 기존의 제도를 고쳐 100일을 더 주라고 명한 바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대신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출산이 임박한데도 일을 하게 되면 몸이 지쳐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더라. 산월에 들면 1달 동안은 일을 빼주는 게 어떨까? 일하지 않으려고 속임수를 쓸 수도 있어. 하지만 속여 봤자 1개월을 더 넘기겠어? 상정소(詳定所)에 명하여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1430년, 세종 12) 출산하는 여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고민할 수는 없을까. 세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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