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자에게 고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원로들의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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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자에게 고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원로들의 서한
  • 고려일보
  • 승인 2003.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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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협력의 승승 가도를 달려가던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지난해 11월 북조선의 핵개발 계획 시인으로 인하여 제동이 걸리고 북조선과 주변국의 관계 그리고 세계정세가 일순간에 악화일로를 치닫게 되었다. 특히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선언 등 북조선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한치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에 카자흐스탄 고려인사회 원로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학사태가 조기에 종결되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중단없이 지속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들의 염원을 모아 다음과 같은 서한을 작성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자에게 고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원로들의 서한

우리는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중아시아지역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조선사람들입니다. 국적은 물론 옛 쏘련공민 – 카자흐스탄 공민이지만 단군의 후손인 우리 조상들의 피를 물려받은 한민족인 것만큼 조상땅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크고작은 사변, 사건을 우리 자신의 일로 간주하면서 좋은 일이 일어나면 진심으로 기뻐하고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가슴아프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우리들 중에는 조상땅이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해 만주와 러시아 원동땅으로 망명하여 반일독립운동을 전개한 이동휘, 최재형, 황운정, 계봉우 열사 등 애국선열들의 직계 후손, 일제의 탄압과 착취, 천대를 참다 못해 정든 고향산천을 등지고 떠나와 타국타향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으면서도 조선사람이라는 민족 자부심을 한시도 잊지 않은 분들의 후손들이 있으며 한반도 북반부, 남반부에 친척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한반도 남북 7천만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외래 세력에 의해 분단된 조선땅이 하루속히 통일되어 풍족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생활하면서 강대국이라고 자랑하는 세계 여러나라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 스포츠등 평화로운 경쟁만 하면서 살아갈 것을 어찌 원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도 지난 20세기 말기에, 50여년간 상극적인 사상, 이념 때문에 서로 불신임과 대결, 적대시의 태도로 살아오던 남북간의 냉전상태가 풀리기 시작하여 드디어 2000년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을 때 우리는 너무도 감개무량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을 머금으며 두 지도자들이 화해의 상징으로 굳은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후 3년이 지나도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조선 답방은 없었으나 다른 여러 문제들에서는 남북화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 이를 잘 입증하지 않았습니까. 서로 다른 체제와 관습을 지녔지만 합심해서 수차례에 걸친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복원과 동해선 연결작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고 남한 주민들의 금강산 관광은 갈수록 활기를 띠고 있으며 남북간 경제협력 역시 탄탄한 기반 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비정기적이긴 하지만 남북간 항공기 교환 운항이 이뤄지고 있으며 멀잖아 개성공단도 조성될 전망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경의선 복원과 동해선 연결작업 과정에서 군사적 접촉과 협력도 여러 차례 있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 2002 아시아게임에 북조선 선수단이 참가한 사실, 남북 예술인들의 교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남북간의 이같은 화해와 협력은 일차적으로 남북 주민들의 의지에서 비록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재외동포들을 포함한 한민족 전체의 뜻이 합쳐져 이루어졌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을 북조선에서 내보내고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영변 핵프로그램을 재개함으로 인하여 국제정세가 다시 악화되고 따라서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일방적 조치는 한반도뿐 아니라 주변국들의 평화유지에도 위험이 되며 만일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핵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어느 나라들보다도 우선 한반도 우리 조상땅, 우리 민족이 비할 바 없이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피해를 막기 위한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성들을 다 죽인 다음 승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조성된 이상과 같은 날카로운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카자흐스탄 공화국 외무성도 성명을 발표했는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 것은 한반도와 아시아지역에서 세계 안정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구쏘련의 핵 유산을 자발적으로 거절하고 핵무기 비확산 위업에 큰 기여를 한 카자흐스탄은 북조선 지도부가 국제적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호소하며 전체 유관측들과 대화의 방법으로 북조선 안전문제를 비롯한 기타 문제 해결책을 찾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외무성의 이 성명을 적극 지지합니다.
우리 민족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사회와 대결하는 자세를 갖는 것은 민족화합 측면에서도,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북한당국이 핵개발 계획을 폐기하도록 용단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2003년 새해를 맞이하여 신년축하를 드리며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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