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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한국국제학교 건립기금 기탁한 귀화 한국인 김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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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한국국제학교 건립기금 기탁한 귀화 한국인 김강산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7.02.0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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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출신 귀화 한국인, 경북 경산에서 중장비 수출상 (주)오션산업 대표

▲ 파키스탄 출신 귀화 한국인 김강산 대표
지난 12월 초, 키 180센티를 훌쩍 넘는 건장한 체구의 한 외국인 남성이 캄보디아 한인회 사무실을 찾아왔다. 분명 캄보디아인은 아니었다.

“안녕하심니꺼. 지는 김강산이라 합니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유창한 한국어 인사말에 한인회 사무국 직원들은 잠시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자마자 흰 봉투부터 꺼내 김현식 한인회장에게 전달했다. 그 안에는 미화 3천불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한국국제학교를 연다는 소문을 듣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돈 봉투를 받아 든 김 회장도 놀라고 사무국 직원들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본명은 '찌마 패설', 한국 이름은 김강산(36세)으로 파키스탄 출신 귀화 한국인이다. 그는 현재 경상북도 경산에서 중장비를 수출하는 (주)오션산업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파키스탄의 주도인 펀잡주에서도 3번째로 큰 도시인 구주란왈라시 외곽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인구 1,000명의 마을에서 벼, 밀, 사탕수수 농장과 쌀 도매업, 무역업으로 꽤나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친척들 중에는 국회의원과 시장도 있는 명망가 집안이다.

3남 3녀 가운데 맏이인 김 대표는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한 만능운동선수였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운동은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축구는 고등학교와 대학 대표였고, 전통레슬링인 카바디 선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키 183cm에 몸무게 101kg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김 대표는 우리의 민속씨름과 비슷한 시 단위 카바디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설립한 중고 중장비와 건설기계 수입 회사에서 무역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국 거래처 여직원이었던 지금의 한국인 부인과 국경을 넘은 사랑이 싹텄다. 한국인으로 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03년 부인의 이름을 딴 무역회사를 한국에 설립했고, 그 다음해에는 파키스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년 후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동생과 저트 브라들스를 설립, 수출품목을 건설장비에서 석산장비까지 넓혔다. 박리다매를 원칙으로 한 김 대표의 사업은 성장세를 거듭했고, 드디어 2010년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14년 외국인이 개인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그 이듬해 1월 (주)오션산업을 설립했다.

김 대표를 포함해 직원 3명이 주로 크락셔, 천공드릴, 덤퍼 등 중고 석산기계를 두바이 사우디 요르단 등 중동에 수출한다. 러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수출지역을 확대해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최근 내친 김에 동남아 캄보디아까지 진출했다.

독실한 이슬람교인이기도 한 김강산 씨는 ‘항상 남에게 베풀며 살라’는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 매년 다문화가정과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에 쌀과 라면, 생필품 등을 전달하는 등 다방면에서 봉사활동을 실천해왔다. 베품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며 경상북도 내 23개 시군을 돌면서 선행 릴레이를 펼쳤다. 경산시는 물론, 경주·상주·고령·칠곡·성주·청도 등 경북도내 시·군지역을 돌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학업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자 천백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나눔 문화 확산에도 기여했다.

이밖에도 제47회 대구·경북 무역의 날 ‘100만 달러 수출탑’ 수상을 비롯해 2014년도 무역의 날 ‘5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건실한 사업가로 성장, 지역경제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또한, 자신과 같은 다문화가정들에 대한 지원과 지역의 독거노인 등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웃을 위한 기부활동에도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지난 2015년 경북 고령에서 열린 '2015 경북도민의 날 기념행사'에서 '자랑스러운 도민상'을 받았다.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다문화가정으로서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금은 경상북도를 넘어 전국을 돌며 선행을 펼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 한인회를 방문한 귀화 한국인 김강산 오션산업 대표.(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김 대표가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사업으로 번 돈으로 합동결혼식 외에도 마약퇴치사업, 도로 개설, 관정 개발, 명절 생필품 기부를 지원하는 것을 줄곧 봐왔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주변 사람들 몰래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는 기부 규모도 늘리고, 지역사회에도 알리기로 했다.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더 많은 기부를 하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대답은 솔직하면서도 명료했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도 있지만, 다문화와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씻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편으로 무슬림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무슬림하면 테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외국인도 한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 진짜 무슬림은 생명을 사랑하는 평화주의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진짜 무슬림은 ‘말 한 마디도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무슬림은 또,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죠. 저도 하루에 5번,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남을 도우라는 코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말 대사관에서 열린 한인회 정기총회에서 김 대표는 뜨거운 축하 박수 속에 김현식 한인회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이제는 적지 않은 교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우리와 같은 한국 사람으로 친근하게 여긴다. 바쁜 사업에도 불구하고 종종 한인회를 찾는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오늘도 그가 먼저 기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시지예, 잘 계셨능교?” 그의 경상도 사투리가 친숙하다 못해 이제는 정겹기까지 하다.

최근 김 대표와 또 다른 자리를 마련했다. 딱딱할 수도 있는 인터뷰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좋았고 그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한 시간 동안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눴다. 하지만, 그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물론 듣기에 따라선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느낌은 한마디로 심쿵(?)했다. 어쩌면 몸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온 사람의 진실이 담긴 말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러한 작은 노력들로 인해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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