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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우리말로 깨닫다] 중생(衆生)을 죽이다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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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6  10: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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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우리말을 보면 풀, 나무, 꽃이라는 말은 있지만 이를 아우르는 말은 없다. 즉, 식물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는 뜻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새, 물고기 등의 말이 있을 뿐 이를 아우르는 표현은 없다. 짐승이라는 표현을 이용해서 길짐승, 날짐승으로 나누기도 한다. 굳이 말하자면 짐승이 상위 개념의 어휘라고 할 수 있다.

짐승은 순 우리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자어이다. 짐승은 한자어 중생(衆生)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 해당하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부처께 구원받을 생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도 중생이고, 동물도 중생이다. 보통 ‘생명을 가진’이라고 표현할 때는 식물은 빠지는 경향이 있다. 꽃이나 나무를 중생이라고는 안 하는 듯하다.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할 때도 식물은 제외된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들은 야채를 먹으면서 별다른 죄책감이 없다. 식물도 동물과 같다고 생각했다면 세상에 먹을 게 없었을 수도 있겠다.

살생은 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육식까지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좀 다른 문제이다. 살생을 금지하는 종교에서도 육식을 하는 예들은 많다. 승려들도 종교에 따라서는 육식이 허용된다. 직접 살생을 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안 되지만 보시로 받은 고기는 먹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보시를 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간절한 마음으로 육식을 대접하였다면 그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중생이라고 하면 사람을 떠올리게 되고, 짐승이라고 하면 동물을 떠올리게 된다. 중생과 짐승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짐승은 육식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중생을 육식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생을 죽이고, 먹는다고 하면 끔찍하다는 느낌이 더 들 것이다. 우리는 짐승과 중생은 본래 같은 것임을 잊고 산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중생은 물론이요, 짐승을 죽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육식을 하고는 있지만 직접 닭 한 마리 잡으라고 하면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소나 돼지는 어떨까? 어릴 때 닭 모가지를 비트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며칠 동안 가위에 눌릴 정도였다. ‘죽이다’는 말조차 무서워서 ‘잡다’라고 표현하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짐승을 잡는 전문적인 직업도 있었다. ‘백정’이 이런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없었다면 육식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백정이 소를 잡을 때도 하늘에 기도를 하고 잡았다고 한다. 두려웠을 것이다. 생명을 죽인다는 것, 불꽃을 꺼뜨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한 영혼을 다른 세계로 보내주는 일이다. 많은 종교에서 동물을 죽일 때 기도를 하거나 특별한 의식을 하는 것은 이런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식을 해야 한다면, 동물을 기르고 죽이는 일에도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어도 무시무시한 ‘살처분(殺處分)’이 한반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벌써 2,500만 마리 이상이 죽어나갔다. 조류독감의 확산 때문에 겁이 나서 병에 걸리지 않은 닭이나 오리 메추리까지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방법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충분히 그 마음에 동의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마음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2,500만 마리가 넘게 죽었는데도 어쩔 수 없다고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인간을 위해서 대량으로 사육되고, 알을 낳는 기계로 만들어지고, 밤새 밝은 불빛 아래서 시달렸던 짐승들이 아닌가? 위령제라도 지내야 한다. 더 미안해야 한다. 모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중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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