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사건을 통해 본 정부의 영사업무,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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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사건을 통해 본 정부의 영사업무, 무엇이 문제인가
  • 이구홍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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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홍/해외교포문제연구소장

김선일씨의 참혹한 살해 사건으로 외교통상부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라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이 중국 당국에 의해 처형됐던 사건을 두고 통보를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실랑이를 벌이다가 망신살을 당하는가 하면, 국군포로 전용일(72)씨 사건에서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의아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최근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한 탈북자에게 “국가에 누를 끼치지 말고 당신의 일은 당신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대사관 직원의 솔직한 심정(?)이 국내 TV에 묻어나기도 했다.
나는 직업상 지난 40여년간을 외교통상부 인사들과 접촉해 왔다. 과장에서 장관까지 오르는 인사도 여럿 봤다.
이 과정에서 나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외교통상부의 영사(領事)업무에 대한 속내는 한마디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교민보호나 해외에서 자국민 보호는 외교관이 할 일이 아니라 그것은 동(洞)서기나 할일이라는 인식인 것 같다. 어젠가 어느 대사가 부하직원(외교관)에게 “근무성적이 좋지 않으면 영사부로 내쫒겠다”고 호통쳤다는 일화에서도 외교통상부의, 아니 한국 외교관들의 영사업무에 대한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내가 경험한 우리 정부의 영사업무의 무성의한 단면을 실례로 들어보자.
1981년 재일 동포사회에서는 권익․인권차원에서 ‘지문날인거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재일동포 지식인 사회에서는 일본에서의 지문날인제도는 미국에서의 흑인노예제도와 다를바 없다면서 지문날인을 거부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들 지문날인 거부자를 3여년동안 법정에 세워 사법부의 심판을 받게 했다.
이에 일본의 양심적인 변호사들은 동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료변론에 나섰다. 또한 이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재일 독일인, 프랑스인들까지 덩달아 지문거부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정작 이 지문거부의 주동인물 한종석씨의 재판정엔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는 그림자조차 없었다. 반면 재일 독일인, 프랑스인들이 어쩌다 재판정에 서게 되면 그들 조국의 대사관 영사들이 어김없이 재판정에 나타나 시종일관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해외에서의 모국은, 조국은, 정부는 허상이 아니라 실체여야 한다. 그러기에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저마다 대사관, 영사관이 자국민 보호처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해외공관은 무엇에 쫒기는지 영사업무와는 담을 쌓고 있어 교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Ⅱ.

1996년 우리 정부는 ‘교민의 현지화’로 표방되는 신 교민정책을 발표했다. 국무총리의 이름으로 국회연설을 통해서였다. 교민의 현지화란 무엇인가. ‘교민 거주국에서 존경받는 시민이 되라’는 거다. 이 구호는 언뜻 보기에는 한국의 교민시책 뿐만아니라 전세계 소수민족 정책의 교과서로 삼아도 좋을 성 싶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당시 내놓은 이 정책의 전후 사정과 의미를 되새겨보면 외교통상부의 고질병인 ‘불가근 불가원’에서 출발했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아니라면 ‘교민업무는 현지 공관을 통해서만 접수받겠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자기중심적인 발상이 끼여들 수 있겠는가.
오늘날, 재미 600만 유대인 사회는 미국 속에 또 하나의 충직한 이스라엘을 건설해 놓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재미 유대사회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우리정부가, 추구해왔던 ‘교민의 현지화’정책이다.
재미 유대인사회는 말한다.
“재미유대인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유대인의 미국화이다. 한번 미국사회에 동화되면 그 유대인을 유대인 사회로 되돌려 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언제 민족적 차원에서 해외동포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놓고 고뇌하고 번민하면서 토론의 장을 제대로 가져 본적이 있는가. 국무총리가 발표한 이 정책은 실은 1993년 7월 이미 외교통상부에서 내놓은 ‘새로운 재외국민정책방안’ 속에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지금껏 명목만 충족된다면 영사업무에서 내심 한발 빼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재외동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국 정부에 교민전담기구인 ‘교민청’ 설치를 요망해왔다. 대통령도 나서서 적극 검토해보라는 지시도 여러번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마다 극력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외교통상부였다. 산하기관이 생기고 여기에 자기 부처의 정체된 인사문제가 해결될 절호의 찬스를 왜 외교통상부는 마다하고 나서는 것일까.
그 해답은 하나라고 생각된다. “교민청은 영사업무를 전담하는 기구다. 외교관인 우리가 왜 동서기 역할쯤을 하는 교민청으로 전출돼야 하나” 라는 것일 것이다.
이처럼 영사업무를 경원시하는 집단인 외교통상부에 정부조직법상 영사업무가 그곳에 설치되어 있다. 외교통상부 본부에 영사교민국이 있고 각공관에 영사부 혹은 영사담당자가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기회만 있다면, 연줄만 있다면,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안달복달이다. 그러니 외교통상부 내 교민․영사 담당전문가 하나 제대로 없는게 현실이 아닌가. 외교통상부에서 영사교민담당을 지낸 그 수많은 인사 중에서 이 분야의 논문 한편 쓴 인사가 있단 말인가.
금번 김선일씨 사건은 너무 가슴이 쓰리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언젠가는 터지고야 말 필연성이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대사, 공사가 부임지가 정해지면 그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소상히 파악하고 현지 교민들의 실상을 먼저 알아보려는 노력은 뒷전으로 한 채 현지에 골프장이 어디에 있는가, 교민들 중에서 누가 골프장 안내를 잘할까 하는 따위가 관심의 대상이라면 그 외교관은 이미 외교관일수 없는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차제에 대수술을 해야만 할 것이다. 외교통상부에 대외통상업무를 맡긴 것도 가당찮다. 외교관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증대 따위 등에는 별 관심을 두는 성 싶지 않다.
우리 외교의 특징은 그동안 강대국 중심주의의, 집권자의 구미에 맞추는 외교가 전부였다면 틀린 말일까.
이런 외교패턴은 현지 중심의 외교를 펼치기 보다는 본국 훈령중심의 치닥거리 외교가 굳어지게 했던 것이다. 이 결과 우리 외교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김선일씨 사건 후 우리 언론들이 일제히 ‘시스템’문제를 거론해왔지만 이 같은 외교패턴으로는 어느 시스템인들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겠는가.
김선일씨 사건에서 보듯이 김씨 사건의 전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라크 대사관측은 “모든 질문은 본부에다 물어보라”하고 말문을 닫지 않았던가. 이는 우리 외교의 고질병인 훈령외교․비밀외교의 본보기이다. 화재 현장에 나와 있는 소방서 책임자에게 화재 발생시간이 언제며 현재 인명피해상황은 어떤가고 물었어도 “본부에 물어보라”고만 했을까.
외교통상부의 개혁은 밑바닥부터 출발해야 한다. 외교통상부는 그동안 개혁을 외치고 쇄신의 나팔을 수없이 불어댔지만 근본문제에 이르면 왠지 한발 빼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외교통상부의 역할은 재외국민, 재외동포 보호업무가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이는 누구나 익히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국민 보호에 무성의한 한국을, 국제사회가 어떤 시각으로 볼까. ‘한국인 경시 현상’만 가중될 것이다.
아무튼, 한국 외교가 지금처럼, 강대국 중심주의 훈령․비밀주의가 중심에 있다면, 이로 인한 외교관들의 무력감, 보신주의, 출세지향주의가 정치권 줄다리기로 악순환 될 것이며, 이로 인한 ‘제2의 김선일 사건’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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