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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칼럼] 한국 풍류 정신문화의 신명…⑤신명의 탈 영토성
나채근 영문학박사  |  ck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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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3  14: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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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시한부 생명을 지닌 아버지가 아들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부정(父情)이 가슴을 저며 온다.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아들의 홀로서기를 위해 매정하게 이별하는 아버지이지만, 기가 죽어 슬픈 모습을 한 아들이 한번쯤은 뒤 돌아보아 주기를 그리고 안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아들은 아빠가 무서워 끝내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영원히 떠나간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서 실컷 울고 나면 카타르시스의 효과로 순간의 평화와 안정을 경험한다. 감정의 선을 절대적 지점으로 밀고 나가면 기존의 경계와 막을 초월하면서 새롭게 생성되는 느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소리에 심취해가고 고수가 가락에 몰입해가고, 강강수월래에서 춤동작과 리듬의 속도가 증가해 갈수록, 사람들은 기존의 인식적 느낌과 영역을 초월하며 새로운 차원의 느낌인 신명을 경험하게 된다. 신명이란 흥이나 신바람으로도 불리는데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느낌과 정서가 자생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외부의 자극이란 촉매에 의해 새로운 에너지로 합성되어 바깥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신명은 동양철학의 기(氣)에 해당된다. 기는 외부대상의 형상인 모양과 색깔에 관계없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변이해 간다. 기는 예술품들인 음악·미술·건축, 자연물들인 산·강·호수, 혹은 과거·현재·미래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멈추거나 고정되어 한 지층이나 형식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생성을 거듭하며 탈지층화, 탈 형식화 되어 간다. 이는 물이 주변의 여건에 따라 불연속적이고 미분 불가능한 지점인 0°와 100°를 기점으로 고체나 기체로 존재론적 차원을 달리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이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단백질이나 핵산이 불가분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형성해 가는 것과 동일하다. 우리의 몸 안에는 세포를 형성하며 각종 장기, 신경계, 순환계, 소화계 등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있다. 동시에 세포핵 내에는 유전정보를 지닌 DNA와 그 DNA를 복사하는 mRNA와 복사된 단백질과 일치되는 아미노산을 운반한 tRNA에 의해 리보솜에서 새로운 단백질이 형성된다. 이렇게 단백질과 핵산은 동일 지층이 아닌 서로 다른 지층에 속하면서도 각각 탈지층화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내부 환경을 이루며 인체라는 통일체를 구성하고 있다. 

신명도 그런 것이다. 이청준의 『선학동나그네』에서, 소리꾼 여인의 오장이 끓어오르는 듯 한 소리에 포구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학은 비상학이 되어 서서히 날개를 펴고 현현한다. 바닷물이 차오르고 선학이 노니는 과거의 선학동이 되었던 것이다. 물이 없는 포구로 재 영토화 되었다가 소리꾼 여인의 신명을 다한 소리로 인해 탈영토화해간 선학동에서 비상학이 현현한 것은 정성과 바람을 다한 신명의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감화되어 기존의 인식과 느낌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다. 

신명은 흐름(flow)과 같은 것이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장소로 탈지층화해가는 노마드적 속성을 지니고 신바람이 되어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생성되어 간다. 초가지붕의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팔작지붕의 오르막길을 거쳐 흐르고, 붓 끝 한 획으로 피어난 난초 잎을 넘어 현묘한 선율을 자아내는 거문고의 현을 따라 흐르고 있다. 이것이 민족의 집단적 정서이며 정신적 에너지였던 한국 풍류정신문화를 구성해 온 신명이 지닌 탈영토적 속성(deterritorialization)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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