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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플로리다 한인회 최창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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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플로리다 한인회 최창건 회장
  • 김민혜 기자
  • 승인 2016.11.2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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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육성해 美 주류사회로 진출시키는 것이 최대 목표”

‘썬 샤인’ 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미국 플로리다 주는 잔잔한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퍼져있어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다. 기후가 좋고 생활비가 저렴한 편이라 정년퇴직한 미국인들도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꼽는다. 따뜻한 열대성기후로 오렌지와 그레이프 후르츠 생산량이 많다. 특히 오렌지 가공품은 거의 전량을 생산하는 지역이라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탬파, 마이애미 등의 도시가 있는 서부 플로리다 지역 최창건 한인회장에게 질문을 건넸다.


플로리다 한인 사회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제27대 서부 플로리다 한인회 최창건 회장.

플로리다 주에는 6~7만 여명의 한인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탬파베이 지역에(세인트 피터즈버그, 클리어워터 포함) 1만 8천여 명, 마이애미 8천 여 명, 올랜도 지역 8천 여 명, 펜사콜라와 포트월턴 비치지역에 4천여 명 잭슨빌지역에 3천여 명이 거주 중입니다. 한국 유학생이 많은 게인즈빌 지역에는 한인 동포들과 합해 약 천 여 명이 살고 있으며, 이외의 한인동포들은 중소도시에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11개 카운티로 구성된 서부플로리다에는 1만 8천여 명의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이민 1세대들은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세탁소, 수선실, 식료품점, 식당, 편의점 등을 운영하는 중소 상공인이 6~70%를 차지합니다.


서부 플로리다 한인회는 어떤 일을 하고있나요?

1960년대에 설립된 서부 플로리다 한인회는 현재 27대 한인회(임기 2년)가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27대 한인회는 2015년 12월 취임식을 시작으로, 설날 잔치, 메모리얼 파크 6·25참전용사 동상 제막식에 감사 석판제작 헌납, 애틀랜타 영사 순회업무 및 선거 등록사업 지원과 홍보, 3·1절 기념식, 아시안 페스티벌 참가, 8·15 광복절행사, 플로리다 한인 연합 체육대회 등을 주최하며 한인 사회의 단합을 이끌었습니다.

▲ 2016 미 대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실시했던 캠페인.

특히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한인 유권자들과 고국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한 달 넘게 홍보활동을 펼치며 한인 유권자들을 규합, 투표를 독려해 300여 명이 우편 투표를 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서부 플로리다 한인회는 차세대를 육성해 미 정치에 주류로 참가하게 하고, 각인시키는 일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면서 비전으로 삼고 노력해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차세대에게 민족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각종 사업을 진행해나가고 있습니다. 

▲ 2016 미국 대통령선거 탬파 한인 합동 우편 투표 행사

회장님의 이민생활이 궁금합니다

저는 1980년 8월 초, 34개월 여 현역 복무를 마치고, 제화 업체에서 근무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유람선 취업을 위해 여권과 비자를 받고 1983년 1월 9일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4년간의 선원생활을 마무리 한 후, 한국에서 갓 이민 온 지금의 부인과 짧은 시간 만남 끝에1987년 12월 19일 단출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3년 넘게 신분문제로 직업다운 직업을 가지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접시닦이, 야간 빌딩 청소, 잡화점원, 생선가게에서의 생선배달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 최창건 회장 가족.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 온 후에는 구두수선 견습공으로 3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이태리 계와 유태인들이 노년으로 서서히 손을 놓을 때였습니다. 아내가 아껴 모아뒀던 약 만 달러로, 오래된 구두수선기계를 사고, 봐왔던 장소에 구두 수선가게를 오픈했습니다. 첫 번째 도전에서는 실패를 맛보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구두 수선과 옷 수선을 병행하며, 생전 보지도 못한 물건을 가져와도 밤을 새며 고쳐줬습니다. 지역에 소문이 나니 멀리서도 찾아오곤 하더군요. 그렇게 생활은 점차 안정됐고, 아이들도 잘 자라줬습니다. 십 수 년을 아끼며 절약하니 저축액도 많이 불어나 더 신이 났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나은 비즈니스를 물색하던 중, 조금 규모가 큰 지금의 세탁소를 11년 전에 인수하게 됐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 모자랐지만 그동안 우리를 지켜 봐왔던 지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줘 가능했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절실함과 의지로 무난히 넘어서, 지금은 적게라도 동포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아이들이 동양인이라고 차별받고, 왕따를 당하거나 실망할 때가 가장 참기 어렵고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자라 플로리다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들은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 공군 학사 장교로 테스트 중이고, 딸은 회계학을 전공하고 법관을 꿈꾸며 로스쿨에 재학 중입니다.


한인사회나 혹은 활동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 한인 단체들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동포 단합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플로리다 지역 민주평통의 경우는 실제적으로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지는 못한다고 보입니다. 또 투표율이 3%도 되지 않는 재외선거의 경우도 성과 대비 예산 투입이 커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두 가지 예산을 차세대 학생 모국방문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큰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봅니다.

[재외동포신문 김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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