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바보의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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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바보의 집착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9.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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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바보는 ‘바라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의 줄임말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바보에 대해서는 여러 어원이 있지만 ‘보’가 사람을 나타낸다는 점에는 의견이 대부분 일치한다. 먹보, 울보, 뚱뚱보, 잠보 등 다양한 보들이 있다. 바보는 머리가 안 좋은 사람에게만 쓰는 표현이 아니다.

바보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폭넓게 쓰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연인 사이에도 ‘바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연인끼리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빴다면 계속 사귀기 힘든 사람들이다. 주로 헤어지게 된다.

바보는 어원적으로 ‘밥+보’라는 입장이 있다. 예전에는 먹는 욕심이 지나치게 많으면 바보라고 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먹는 욕심이 많아지면 바보가 되는 것도 같다. 배가 불러 죽겠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먹으면 바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주변에 굶는 사람이 있는데도 제 배만 채운다면 바보가 아닐 수 없다. 음식에 대한 허황된 집착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요즘 우리가 자주 들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바보는 ‘아들 바보, 딸 바보’이다. 그 중에서도 딸 바보가 급속히 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딸 바보’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소개할 때 ‘딸 바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화를 내기는커녕 벙실거리며 웃는다. 진짜 바보처럼 말이다. 나는 딸 바보, 아들 바보라는 말에서 사랑도 느끼지만 집착도 느낀다. 바보는 잘못하면 집착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점점 자식이 하나 또는 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딸’이 하나밖에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딸만 있거나, 두 아이 중 하나가 딸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딸을 예뻐하고 딸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해 주려 한다. 모든 정성과 사랑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랑이 집착으로 바뀌고, 딸을 내 속에 가두기도 한다. 세상의 거친 들판에서 맞설 힘마저 빼앗기도 한다. 물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한편 딸의 생각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딸의 입장에서 아빠의 관심과 사랑 또는 집착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딸도 아빠의 사랑이 좋을 것이다. 평생의 좋은 추억이 되고, 두고두고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 나를 너무나도 아껴주신 분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종종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압박감이나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딸에 애정이 기울일수록 자식이 조금만 부모의 뜻에서 벗어나면 금방 서운해 하고, 쏟은 정을 아쉬워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고, 오히려 어려운 관계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게 ‘바보’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세상을 더 귀하게 보는 눈을 가짐으로써 딸, 아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홀로 설 힘을 가질 수 있다. 집착의 바보가 아니라 나누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 바란다. 마치 딸 바보가 가정적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가족에서도 아내와 남편 중심이 아닌 자식 중심의 삶으로 변화하게 된다. 가족 관계가 자식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을 때 많은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 

자식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더 사랑하시라. 대신 내 아이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의 아이들도 돌아보시라. 가능하다면 내 딸, 아들과 같이 주변에 사랑을 나누면 더 이상 집착의 바보는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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